최근희 서울시립대 도시행정학과 교수

생태도시인 양평에 야생동식물 보호구역을 만들자는 제안을 해본다. 보호구역은 클 수도 작을 수도 있지만 인간의 출입을 엄격하게 금지해 야생동식물이 마음 놓고 살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 현재 양평에 유사한 장소가 없는 것은 아니나, 대부분 인공물이 많이 들어간 인공의 공간이다. 그곳에 사람들이 방문해 관찰 등 학습과 여가를 즐긴다. 이런 공간도 필요하나, 완전하게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는 야생동식물보호구역을 만들자는 것이다.

양평군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자연습지나 생태가 잘 보존된 곳이 많이 남아 있다. 강하면의 양자산 중턱에도 동네사람들 몇 만 아는 오래된 습지가 남아있다. 용문산 자락에도 야생동식물이 안주할 공간은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이런 시설은 야생동물과 인간의 접촉을 줄여서 야생동물로 인한 농작물 피해도 줄이고 야생동식물도 마음 놓고 살아가게 된다. 친환경생태도시의 모습이다.

전체 국토면적이 한반도의 40배나 되는 미국은 국립공원도 많지만 곳곳에 수많은 야생 동식물 피난처(wildlife refuges)가 만들어져 있다. 도시지역에도 많은데, 전 국토의 5%가 도시용으로 이용되는 나라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그래서 도시에도 많은 야생동식물이 살아간다. 인간이 동식물에게 약간의 양보를 하면 그들은 놀라울 정도로 잘 적응한다.

양평군청 옆 한강에는 떠드렁섬(양근섬)이 있다. 자연 상태의 버려진 땅이나 마찬가지의 작은 섬이었다. 누군가 농사를 짓기도 했었다. 어린 시절 그 곳에 친구들이랑 밤낚시를 갔던 추억이 있다. 필자가 양평군 도시계획위원회 위원일 때 떠드렁섬 개발계획안이 안건으로 올라왔다. 육지에서 다리를 놓고, 그 안에 농구장과 테니스장 등을 건설한다 했다. 양평으로 귀촌한 모 대학 명예교수가 필자와 함께 강하게 반대의견을 피력했다. 양평이 친환경 생태도시를 표방하고 있는데, 떠드렁섬에 인공시설을 설치하는 것은 생태도시라는 양평의 가치를 훼손하는 일이니 철회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간의 간섭 없이 각종 철새 등이 마음 놓고 살아갈 수 있는 피난처 역할을 할 수 있는 작은 섬에 인공시설물을 설치하는 것은 재고가 필요하다는 의견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희망은 실현되지 않았다. 지금은 주차장까지 만들어진 사람만을 위한 섬으로 바뀌었다.

서울 여의도와 마포 사이 서강대교 바로 위쪽에는 밤섬이 있다. 원래 62가구의 주민들이 살던 작은 밤톨 모양의 섬이었다. 1968년 시작된 여의도 개발사업에 걸림돌이 된다 해서 살던 주민을 모두 내쫒고 다이너마이트로 폭파시켜 없애버렸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모래와 흙이 강바닥 암반위에 쌓여 섬이 다시 생겨났다. 그곳에 억새, 갯버들 등 친수식물이 자생하면서 울창한 숲이 만들어졌다. 1990년대에 들어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도심 속의 ‘철새도래지’로 부각돼 1999년 8월10일 서울시가 ‘생태계보전지역’으로 지정해 특별히 보호한다. 밤섬은 각종 동식물의 삶의 낙원이자 삭막한 콘크리트 숲속에 사는 서울시민들에게 가치를 따지기 어려울 정도의 생태적 보물이 돼버렸다. 수백 가지의 철새와 양서류, 물고기의 서식지로 변한 밤섬에는 시청의 허가 없이는 누구도 발을 들일 수 없는 야생동물 천국이자 서울의 자랑이다.

떠드렁섬 개발을 하겠다는 군청의 논리는 섬에 체육시설을 설치해 시민 편익을 도모한다는 것이니 나무랄 일은 아니었지만, 장소가 문제였던 것이다. 양근대교 건너편 한강 둔치에 이미 많은 체육시설이 있고, 새로운 시설을 설치할 충분한 공간이 있지 않은가? 양평읍이 있는 쪽은 제방을 쌓아 삭막한 편인데, 생태계가 잘 보전된 떠드렁섬을 자연그대로 두자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었다. 현재 이 섬에는 각종 체육시설물들이 지어졌고, 그곳에서 안식하던 각종 조류 등 생물들은 거의 다른 곳으로 떠나버렸을 것이다.

자연에 대한 인간의 간섭은 무서운 것이다. 인간의 간섭으로 자연은 상처입고 망가지며 고스란히 우리 인간에게 되돌아온다. 양평을 야생동식물이 인간과 조화롭게 살아가는 진정한 생태도시로 만들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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