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마을을 찾아가는 여행 79

오부세와 이다를 오가면서도 막상 그 거점인 나가노시(長野市)는 눈여겨보지 않았다. 대도시라서 별로 매력이 없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나가노 일대는 1998년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동계올림픽이 열린 곳으로 유명하다. 대부분 지역이 그만큼 눈이 많은 산간지역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나가노시의 매력을 발견한 것은 오부세에서 이다로 옮기는 사이 하루를 머물며 나가노의 유명한 절 젠코지(善光寺)를 보러가면서였다. 백제로부터 불교가 전승될 당시 제작된 일광삼존아미타여래(一光三尊阿弥陀如来)라는 불상을 본존으로 모신 절로 유명하다. 일본 최고(最古)의 불상이라고 한다. 그 불상이 영험하여 에도시대에는 ‘일생에 한 번은 젠코지에 참배하라’(一生に一度は善光寺詣り)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나가노역에서 젠코지에 이르기까지 약 2㎞ 직선으로 난 길이 나가노츄오토리(長野中央通り)다. 나가노역에 신칸센이 연결되는 등 교통이 활발해지자 일생에 한번은 참배해야 한다는 젠코지를 찾는 사람들은 더욱 많아졌다. 그러나 사람이 많아지고 대로가 정비되어 교통이 좋아지자 오히려 츄오토리는 쇠락해져가는 기이한 현상이 발생했다. 나가노역은 많아진 사람들로 무질서하게 혼잡해지고, 젠코지 바로 아래의 사하촌 거리는 많은 사람들로 붐볐지만, 오히려 그 중간의 대부분의 구간은 사람들이 차를 타고 곧바로 통과해 버렸기 때문이었다. 예전에는 2㎞의 참배길을 걸어서 참배했었다.

나가노시는 쇠락해가는 츄오토리를 살려내야 했다. 츄오토리는 나가노시의 동맥이었기 때문에 츄오토리의 활성화는 숙명적 과제였다. 나가노시는 츄오토리 전체를 ‘걷기 좋은 거리’(歩いて楽しめる通り)로 만들기로 했다. 트랜싯 몰(Transit mall), 트래픽 셀(traffic cell) 같은 교통방식을 동원하여 가로계획을 세우기로 했다. 가능한 대중교통을 제외한 자동차교통을 제한하고 보행자 중심의 거리로 전환하는 방식이다. 사람들을 걷게 해야 츄오토리 전체가 모두 살아난다.

나가노 츄오거리의 사하촌 초입 부분. 절기가 가까워왔음을 알리는 석등이 설치돼 있다.

다시 살아난 츄오토리 2㎞의 거리는 상당히 흥미로웠다. 나가노시가 꾀를 부린 현명한 설계에 속으로부터 웃음이 새어나왔다. 2㎞는 단계적으로 설계되었다. 우선 나가노역전 구간은 상가가 밀집해 있으므로 사람들은 상가를 구경하는 것만으로 눈요기를 하며 걷는다. 그러다가 역전구간을 벗어나면 사람들은 혼잡한 구간을 벗어난 한가함을 즐기려 하기 때문에 보행자도로만 조금 넓히고 별달리 흥밋거리는 두지 않았다. 그러다가 약 200~300m를 지나서 사람들이 다소 심심해질 무렵부터 보행자도로가 조금 더 넓어지고 공중전화박스나 조각품 같은 스트리트 퍼니쳐들이 심심찮게 나타난다. 더 걸어 올라가 사람들이 다소 지쳐갈 무렵부터는 본격적으로 스트리트 퍼니쳐가 많아지고 군데군데 벤치가 나타난다. 쉬어가라는 뜻이다. 

쉬면서 걷다보면 이젠 차도의 바닥도 석재로 바뀌어 자동차가 위험하지 않게 되고 보행자 구간이 더 넓어져 본격적인 보차혼용구간이 시작된다. 조금 더 올라가면 차도의 바닥은 더 울퉁불퉁한 석재로 거칠어지고 보행자 구간이 확연히 넓어지면서 비로소 젠코지의 분위기를 살리는 석등이 군데군데 설치되어 나타난다. 거의 다 왔으니 힘을 내라는 뜻이다. 더 올라가면 시야에 사하촌의 기념품 상가들이 들어오고 발길을 앞으로 재촉한다. 이제 저기 앞에 일주문이 보인다. 사하촌이 본격적으로 펼쳐지고 멀리 대웅전도 보인다. 다 왔다. 2㎞의 구간을 힘든 줄 모르게 걷게 한 것이다. 나도 절의 본존 계단을 오를 때쯤에야 비로소 다리가 꽤 아프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나가노 츄오거리의 중간 부분. 곳곳에 스트리트 퍼니쳐와 휴식공간들이 설치돼 있다.

츄오거리가 걷기 좋은 거리가 되자 츄오거리 전체에 평균적으로 상가가 살아났다. 역전은 혼잡한 상가, 중간부분은 쉬기 좋은 카페나 간이음식점, 사하촌은 불교용품이나 기념품점. 골고루 상가가 살아난 것이다.

도시계획학계에서도 자동차가 달리기 좋은 넓은 차도는 인간을 위해서도 경제를 위해서도 옳은 계획이 아니라는 반성이 시작된 지 오래다. 사람을 위한 거리가 아님은 물론이거니와 상가도 살아나지 못한다. 자동차는 빠른 속도로 통과해버리고 걷는 사람을 쫓아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어울려 걷고 웃고 떠들고 쉬는 모습보다 더 아름다운 모습이 있을까. 공공의 공간에서 볼 수 있는 최고의 아름다움이다. 나가노시는 현명한 꾀로 도시도 살리고 사람도 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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