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복재 영춘 경기도향토문화연구소 연구위원

시조(始祖)가 난 곳을 본관(本貫) 또는 관향(貫鄕)이라고 한다. 처음 만나는 사람과 통성명(通姓名)할 때 서로의 성씨와 본관 등을 묻고 답하는 것이 통상적인 예의며 절차였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근래에 들어와 관향 또는 본관이 어디냐고 물으면 묻는 의미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관(貫)ㆍ관적(貫籍)ㆍ본(本)ㆍ본향(本鄕)ㆍ선향(先鄕)ㆍ성향(姓鄕)ㆍ향관(鄕貫) 등도 비슷한 의미로 쓰이는 말이다. 쉽게 말하면 필자는 전주이씨(全州李氏)인데, 이 중 성씨인 ‘이씨’ 앞에 붙인 ‘전주’라는 지(역)명이 바로 본관 또는 관향이 되는 것이다. 그러면 왜 전주가 전주이씨의 본관이 됐을까. 시조(始祖)가 되는 신라 때 사공(司功)을 지낸 이한(李翰)이 전라북도 전주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본관이 양평인 사람도 있다. 통계청의 ‘KOSIS국가통계포털(http://kosis.kr)’에 의하면 양평을 본관으로 한 성씨로 ‘양평김씨(楊平金氏)’가 있으며, 2015년 현재 전국에는 19인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있다. 양평김씨의 시조 김의간(金義杆)은 신라 종성(宗姓 ; 왕실의 성씨. 임금의 부계 혈족)으로 전하나 사적(事蹟)이 없어 세계(世系)를 고증할 수 없다. 그는 사정(司正)을 지냈으며, 후손들이 관향(貫鄕)을 양평(楊平)으로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양평(楊平)은 1908년에 예의 양근(楊根)과 지평(砥平)이 통합해 새로 생긴 지명이므로 지명의 착오로 인한 것일 수도 있지만 확인할 길은 없다. 양평으로의 통합이전의 명칭인 양근과 지평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도 있다. 먼저 양근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로는 양근 함씨(楊根 咸氏)와 양근 김씨(楊根 金氏)가 있다.

양근 함씨의 시조는 함혁(咸赫)이다. 삼한시대에 옥천면 용문산에 석성인 함왕성〔咸王城 ; 함공성(咸公城) 또는 양근성(楊根城)〕을 쌓고 웅거한 촌장으로 함왕(咸王)이라 불리었다. 그래서 후손들이 양근을 본관으로 삼았다. 함신(咸信)은 신라 원성왕 때 명주군왕 김주원(강릉김씨 시조)의 종사관이 돼 명주에서 살았다. 중시조인 함규(咸規, ?~945)는 태조 왕건을 옹립, 후삼국을 통일해 고려를 세우는데 공을 세워 익찬개국공신(翊贊開國功臣)에 책록됐으며, 광평시랑평장사(廣平侍郞平章事)를 역임했다. 함규는 왕건이 왕씨 성을 사사해 왕규(王規)로도 알려져 있다. 두 딸은 태조의 제15비(妃) 광주원부인(廣州院夫人)과 광주원군(廣州院君)을 낳은 제16비 소광주원부인(小廣州院夫人)이 돼 왕실의 외척으로서 강력한 지방세력을 기반으로 막강한 정치권력을 장악했다.

함규의 5세손인 함유일(咸有一, 1106∼1185)은 1135년(인종 13)서경 반란을 평정할 때 서리(胥吏)로 종군해 공로가 있었으므로, 발탁돼 선군기사(選軍記事)가 됐다. 청빈했으며 공무에 충실했다. 추밀원사(樞密院使) 왕충(王冲)의 천거로 내시(內侍)로 들어와 군주(軍廚: 禁軍의 식사담당)를 담당해 업무를 잘 수행했다. 뒤에 보성의 수령이 돼서도 치적이 있었다. 명종 때 병부낭중(兵部郎中)ㆍ상서좌승(尙書左丞)을 거쳐 공부상서로 퇴관했다. 일찍이 의종 때는 교로도감(橋路都監)이 돼, 도성 안의 무당과 음사(淫祠: 귀신을 모신 집)가 많아 민심을 현혹시키므로 음사는 모두 불 지르고 무당은 교외로 내쫓아 미신을 배척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조선 개국 당시 함씨 가문은 형제가 길을 달리한다. 함부림(咸傅霖)은 개국공신에 올라 형조판서를 지냈다. 그의 아우 함부설(咸傅說)(說 자는 열 자라고도 함)은 고려 말에 예부상서, 홍문관 박사 등을 지냈으나 조선조에는 동참을 거부한다. 이들 형제의 후손들은 본관도 달리하고 있다. 함부림계는 강릉, 함부설계는 양근을 쓰고 있는 것이다. 함부림의 현손(玄孫 ; 손자의 손자) 함헌(咸軒) 등은 모두 강릉함씨로 관적(貫籍)했다. 함부림의 아들 함우치는 세조 때 관찰사를 지냈고, 성종 때 좌참찬에 이르렀다.

중시조 함규(咸規)의 5세손인 함유일의 아들 함순(咸淳)은 문장과 덕행이 뛰어나 강좌칠현(江左七賢)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함왕 함규가 중시조가 된 양근 함씨와 관계된 유적과 유물은 함왕성 이외에도 사나사 입구 길가 개울에 함씨부족의 시조인 성주 함왕이 태어났다는 전설이 깃든 함왕혈(咸王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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