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마을을 찾아가는 여행 78

도쿄의 메구로구(目黒区)에는 흥미로운 지명을 가진 지역이 있다. 세타가야구(世田谷区)와의 경계선에 있는 지유가오카(自由が丘)다. 우리말로 ‘자유의 언덕’쯤 된다. 처음엔 일본의 근대화과정에서 뭔가 민주화운동이나 시위가 벌어졌던 곳인가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것과는 상관이 없다. 이 지역은 본래 도쿄시에 편입되기 전까지는 조용한 전원농촌이었다. 구혼부츠(九品仏)라는 9개의 불상을 모신 죠신지(浄真寺)라는 절이 있어 구혼부츠지역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최종적으로 지유가오카라고 불리게 된 것은 지역 학교의 이름으로부터 유래된다.

도쿄외곽지역으로 편입된 후 테즈카키시에(手塚岸衛)라는 자유주의 철학자가 이 지역에 지유가오카고등학교(自由ヶ丘学園高等学校)를 설립했다. 그의 철학대로 민주와 자유의 철학을 가진 인재들을 키워내기 위함이었다. 건학의 이념은 ‘들풀과 같이 강인하게, 인간을 위한 교육’이었다.

지유가오카(自由が丘) 보행자도로.

몇 번의 행정구역 변경과정에서 지역명이 바뀌어오다가 결국 1965년경 학교의 이름을 빌려 마을 이름도 지유가오카로 안착됐다. 이 지역에는 문화예술인들이 많이 거주했었는데, 그들이 앞장서서 주민들의 뜻을 모아 이름을 결정했다. 자유가 피어나는 마을이 된 것이다.

그로부터 10년 후인 1974년 지역의 남쪽 부분을 흐르던 구혼부츠카와(九品佛川)가 복개되는 일이 발생했다. 도쿄시는 광역하수로계획을 세우면서 홍수 등의 위험이 있는 하천들을 복개해 하수로로 사용하기로 결정했는데 구혼부츠카와도 포함된 것이다. 개천이 지하로 숨게 되면서 윗부분 지상의 공간이 생겼다. 폭 13m 길이 1.5㎞ 정도의 공간이었다. 이럴 때 대부분 그 공간은 차도로 사용되기가 십상이다. 그런데 지유가오카는 지역의 이름답게 달랐다.

문화예술인들이 앞장서서 현재의 아름답고 유명한 녹지공원 겸 보행자도로가 된 것이다. 지유가오카 보행자도로의 정식이름은 구혼부츠료쿠도(九品仏川緑道)다. 도로중앙의 약 6m 공간을 벤치와 나무가 어우러진 휴식공간으로 만들고 양쪽으로 각 3m 남짓의 도로가 보행자 및 비상차량 통행로다. 50년 넘는 벚나무들이 늘어서서 봄에는 꽃잔치를 벌이고 여름에는 그늘을 만들며 가을에는 낙엽을 떨군다.

마침 내가 찾았을 때는 늦지 않은 봄이었다. 구혼부츠료쿠도의 입구를 들어서서 1㎞가 넘는 보행자거리의 직선구간을 멀리 바라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감탄이 일었다. 벚꽃이 찬란한 보행자거리, 보행자공원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야말로 ‘소풍’을 나와 있었다. 도시 한복판, 상업중심지에 소풍이라니. 가족끼리, 친구들끼리 간단한 먹거리와 마실거리를 놓고 수다와 웃음. 옆에 유모차에는 갓난아이들이 따뜻한 봄날을 즐기며 평화롭게 잠들어 있다. 개중에는 혼자 독서삼매경에 빠진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사람이 많지만 싫지 않은, 자유와 행복의 공간이었다. 유럽에서도 보기 힘든 도시보행공간이다.

지유가오카(自由が丘) 보행자도로.

거리 연변은 상점가다. 비싸진 않지만 품격 있는 의류가게와 카페, 깔끔한 음식점들이다. 1982년에는 파리의 유명한 패션잡지인 마리끌레르(Marie claire)의 일본판이 처음 출판돼 도쿄시는 출판을 기념하는 거리를 만들기로 했는데, 구혼부츠료쿠도의 일부 구간을 지정했다. 마리클레르토리(マリ・クレール通り)라 불린다. 자유로운 분위기 넘쳐나는 거리가 되다 보니 각각의 상가 건축물도 개성 있고 품격 있다.

거리의 입구에는 지유가오카 지역이 변해온 마을의 변천사가 사진으로 전시돼 있었다. 지유가오카마을만들기위원회(自由が丘街並み形成委員会) 활동의 역사이기도 했다. 옛 전원마을에서부터 이제는 도쿄시민이 가장 살고 싶어 하는 으뜸가는 주거지가 되었다. 지유가오카 마을만들기의 지침과 목표는 ‘지유가오카다운 주거환경(自由が丘らしい住環境)과 지유가오카다운 상업공간(自由が丘らしい商業空間)’의 계승이다. ‘지유가오카다운’이라는 그들만의 개념이 그들에게는 공유돼 있는 것이다.

거리의 끝까지 왕복해서 걷다가 나도 겨우 비어 있는 벤치에 앉아 하늘을 보며 큰 숨을 들이켰다. 자유로운 공기였다. 도쿄여행을 가면 꼭 지유가오카의 자유의 공기를 만나보길 권한다.

 

저작권자 © 양평시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