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종덕 정의당 양평군위원회 노동국장

며칠 전 양평군과 산하기관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정규직으로 전환된다는 언론보도를 접했다. 양평군은 “지난 7월20일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 발표 후 양평군정규직전환심의위원회를 구성해 11월까지 총 4차례에 걸쳐 심의위원회를 개최, 상시·지속적 업무에 종사하는 비정규직 노동자 200여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92명을 심의 보류 중”이라고 밝혔다.

우리사회는 1997년 IMF사태이후 비정규직 노동자가 급증했다. 노동자간 격차도 심화됐다. 그래서 상시·지속적 업무에 종사하는 노동자라도 정규직으로 채용하자는 취지에서 2007년 7월1일 비정규직법(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에 관한 법률)을 도입했다. 그런데 10여년이 흐른 지금에서야 정규직 전환이라니, 늦어도 한참 늦었다. 정규직으로 바뀌는 노동자들의 처우나 고용상태가 현재보다 나빠지는 건 아닐 테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문재인 대통령은 10월24일 노동계 대표를 청와대로 초청했다. 이 자리에 자동차 휠을 만드는 H노조 위원장도 초대장을 받았다. 지난 7월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나서, 사내하청 비정규 노동자 200여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한 모범사례 자격이었다. 그러나 실상은 달랐다. 하청기업 비정규 노동자들은 원청의 정규직 노동자들과 별도의 구분 없이 같은 장소에서, 같은 일을 했다. 원청기업이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직접 업무지시를 했고 관리도 했다. 명백한 불법파견이었다. 노조가 결성되고 나서 불법파견 문제를 지적하며 개선을 요구하자, 시끄러워질 것을 예상한 회사가 어쩔 수 없이 사내하청 비정규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한 것이다. 불법을 그만둔 것이다. 아직도 불법파견을 자행하고 있는 회사에 비하면 낫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모범이라 말할 수 있을까?

상시·지속적 업무에 종사하는 노동자라도 정규직으로 채용하자고 법률을 제정해놓고, 정부와 공기업이 따르지 않았다. 비정규법의 입법취지를 살리고 실효성을 높여야 할 정부가 제 역할을 다하지 않았다. 양평군도 상시적, 지속적인 일자리는 정규직으로 채용하자는 지극히 상식적인 의무를 10여 년 동안 외면해온 것이다. 지방정부의 소임을 저버린 것이다.

그래서 이번 양평군의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은 자성과 반성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고용과 소득에 대한 차별과 격차를 해소하고 보다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기 위한 가치와 철학에서 출발해야 한다. 중앙정부가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예산을 세워준 것이 전부라면, “비정규직의 고용안정 및 처우 개선은 공공기관이 앞장서서 마중물 역할”을 해야 한다는 양평군의 주장은 어불성설이다. 그저 일회적인 쇼에 불과하다. 지방선거를 앞둔 선심성 행정에 머물 뿐이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은 단순히 고용의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비정규직법 도입이후 새로운 직종, 용어가 생겨났다. 바로 ‘무기계약직’이다. “계약기간의 정함이 없는 계약직”이라니 앞뒤가 맞지 않는다. 정규직과 같이 근로계약 기간의 정함이 없지만 정규직과 같은 대우를 해줄 수 없다는 것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정규직으로 전환되기를 바라는 것은 고용안정뿐만 아니라 정규직과 같은 처우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무기계약직’이라는 용어로 노동조건의 차별을 정당화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단순히 고용의 차별을 해소하는데 머물러서는 안 된다. 소득에 대한 차별과 격차도 해소하는 방향으로 가야한다.

필자는 언제나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지해 왔다. 비정규직의 고용안정과 차별해소의 주체는 바로 비정규직 노동자이기 때문이다. 권리는 누군가가 은혜적·시혜적으로 베푸는 것이 아니다. 자신들의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고 바로 잡겠다는 의지와 행동, 실천이 따라야 한다. 시민사회와 뜻있는 정당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실천에 진정한 연대로 화답해야 한다. 시민사회는 “진정한 연대란 우산을 씌어주는 게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것”이라는 신영복 선생님의 가르침을 잊지 말아야 한다.

‘비정규직 해법’은 비정규직 노동자의 행동과 실천, 시민사회의 진정한 연대가 상호 결합할 때 가능하다. 그래야 제대로 바꿀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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