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희 서울시립대 도시행정학과 교수

도시에서 나무의 존재는 너무나 소중하다. 하지만 우리는 그 가치를 잘 모른다. 많은 선진국에서 나무와 숲을 가족처럼 잘 보호한다. 나무실명제를 실시해 함부로 벨 수 없는 도시도 있다. 자기 집안에 있는 나무도 정부허가 없이 자르면 감옥에도 갈 수 있고, 엄청난 벌금을 내야 한다. 도시개발을 하거나 아파트 재건축을 해도 해당 지역에서 자라는 나무를 함부로 벨 수 없음은 물론이다.

얼마 전 점심을 먹고 캠퍼스 산책을 하다가 학생회관 앞에 있던 다섯 그루의 아름드리 플라타너스 나무가 싹둑 잘려 나간 모습을 발견했다. 삼십 년은 족히 넘는 큰 나무로 여름에 뜨거운 뙤약볕을 막아주고 녹색의 캠퍼스에 일조하던 식구 같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니 너무 허전했다. 나무가 생명체라 그런 것도 아니고 도시에서 우리 인간에게 정말 이롭고 소중하기에 그랬다. 눈으로 보는 아름다움과 편안함도 그렇지만, 엄청난 양의 산소를 뿜어주고 지구 온난화의 주범인 이산화탄소를 흡수해 오염된 공기를 정화하는 기능도 소중하다. 이렇게 자란 나무는 언젠가는 가구나 건축재로 사용될 뿐만 아니라 언젠가 불이라는 생명의 에너지를 우리 인간에게 선사해 준다. 마지막으로 썩어도 거름이 되어 토지를 비옥하게 해주는 자원이 된다.

몇 년 전 5월에 열리는 학생들 축제 때의 일이다. 애틀랜타 올림픽 마라톤에서 은메달을 딴 졸업생이 함께 달리는 마라톤이 열렸다. 필자도 학생들과 함께 참여를 했다. 교내 광장에서 출발한 참가자 대열에 섞여 대학 정문 밖으로 나와 대로를 달리니 갑자기 매연 때문에 숨이 콱 막혔다. 이대로 달리면 호흡기에 문제가 생길 것 같은 생각이 덜컥 들었다. 그 이후 운전을 하면서도 창문을 거의 안 열고 캠퍼스에 도착한 뒤에 문을 열어 환기를 한다. 캠퍼스의 많은 나무들이 공기를 정화시켜주기 때문에 캠퍼스 내부 공기는 아주 쾌적하다.

서울에 있는 재건축단지에는 심은 지 삼십년이 넘은 아름드리 세콰이어 삼나무들이 드높이 솟아있다. 그러나 이 나무들은 재건축사업과 함께 뿌리 채 뽑히고 토막토막 잘려 어디론가 사라진다. 필자의 이웃에는 5천 세대에 달하는 거대한 주공아파트 단지가 있다. 특이하게도 조경수로 계수나무가 심어져 있고 40십년 가까이 멋진 아름드리 거목으로 자라났다. 계수나무는 하트형으로 자라 아름답거니와 달나라에서 자란다는 보기 드문 동화속의 나무이기도 하다. 구청장과 식사할 기회가 있어 재건축할 때에 나무들을 베지 말고 살리는 방법을 찾아보시라 건의를 했다. 그분은 근처 공원으로 옮겨 심는 방안을 강구해 보겠다고 답했다. 꼭 그리됐으면 좋겠다고 화답을 했지만, 모르겠다. 이유는 나무 한그루 옮겨 심는 비용이 수십만 원이나 한다는 현실적 고민 때문이다.

이제 우리나라는 3만 달러를 바라보는 선진국이다. 나무의 가치를 깨달아야한다. 제도와 정책도 바뀌어야한다. 나무를 옮길 것이 아니라 그대로 그곳에 자랄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면 어떨까? 새로 건물이 들어서도 있는 나무가 그 자리에 있으면 얼마나 운치가 있을 것이며 주민들에게 주는 혜택도 클 것이다. 4월에 서울을 방문했던 필자의 박사 동기생은 서울시내 가로수의 가지치기한 앙상한 모습을 보면서 너무 잔인하다(Cruel)고 표현을 했다. “자네가 사는 도시에서는 봄에 가로수 관리를 어떻게 하는가?”를 물었더니 “전지를 못 한다”고 답했다. 도시정부가 조례로 전지를 금지시켰다고 했다. 왜 그런가를 되물었더니 나무권리(Tree Rights)를 옹호하는 시민단체의 활동이 그런 결과를 낳았다고 했다. 인간의 인권(Human Rights)처럼 나무도 살아갈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참 어이없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 이해도 갔다. 물론 사람의 이해관계와 충돌하는 경우 전지를 할 수 있다고 했다. 우리나라의 도시개발은 표현이 심할지 모르나 무자비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개발을 목적으로 멀쩡한 산을 잘라내고 수십 년 자란 나무도 사정없이 베어 버린다. 자본의 논리일 수도 있고 인식의 차이일 수도 있다. 선진국으로 성장한 대한민국도 한 번쯤은 도시개발 방법에 대하여 심각하게 고민해 보아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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