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마을을 찾아가는 여행 76

우리나라에도 근대문화유산의 보존을 통해 아름다운 경관을 만든 거리가 많이 늘어났다. 부산이나 군산, 목포, 인천 등 개항지들이다. 그중에서도 부산이 으뜸이다. 부산은 근대문화유산을 랜드마크로 연결해 도심상가를 활성화시키는 성과를 거두었다.

부산의 근대문화유산거리는 일단 부산근대역사관에서 시작한다. 일제강점기인 1929년 지어진 동양척식주식회사(東洋拓殖株式會社) 부산지점 건물이다. 동양척식주식회사는 일본이 한국의 토지를 강제로 편입시키는 수탈의 첨병이었다. 우리 근대문화유산의 대부분이 일본이 식민지 지배를 위해 짓고 사용했던 건물이라는 점에서 근대문화유산을 둘러볼 때마다 기분이 씁쓸하지만 건물 자체야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싶어 잊고 만다. 한국전쟁 당시에는 미국대사관으로도 사용되다가 그 이후로 2000년경 부산근대역사관으로 개관하기 전까지 미문화원으로 사용됐다. 미문화원 시기에는 반미학생운동의 대상으로 점거 방화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참으로 건물 자체가 근현대역사를 온전히 품고 있는 곳이다.

걷기 아름다운 부산 광복동 거리

근대문화유산에 해당하는 건물들이 왜 아름다운 경관의 랜드마크가 될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현대화의 과정 속에서 효율과 속도가 중심이 되다보니 거리 대부분의 건물들이 철골시멘트콘크리트로 만든 사각형 건물들로 가득 찼다. 미적인 고려는 뒤로 밀려난 것이다. 반면에 근대에 지어진 건물들은 석조나 목조, 붉은 벽돌 등 다양한 재료로 멋을 충분히 고려하여 지어졌다. 이제 그런 건물들이 낭만적인 거리의 운치를 품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든 일본이든 근대건축물들이 보존된 곳이 아름다운 경관의 대표적인 사례가 되는 것은 그 때문이리라.

부산의 근대문화유산은 중앙동의 ‘40계단’으로 이어진다. 40계단은 피난민이 넘쳐나던 한국전쟁 당시 중앙동 도심에서 영주동 판자집촌으로 이어지는 길목이었다. 부산여객터미널이나 부산역을 사용하기 위한 길목이기도 해서 사람들의 왕래가 넘쳐났다. 피난길에서 헤어진 이산가족을 찾는 주무대이기도 했단다. 한국전쟁 당시의 서러움과 고난이 함축된 곳이다.

피난의 역사는 영도다리로도 이어진다. 이산가족을 찾으려면 40계단 아니면 영도다리에서 찾는다는 말이 있었다. 전쟁 당시 임시정부청사로 사용되던 건물은 현재 동아대학교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 건물 또한 일제시대 경남도청으로 지어진 근대문화유산이다.

부산근대역사관

그런데 부산은 근대문화유산을 보존하면서 중앙동과 광복동 일대의 거리경관개선사업을 함께 추진했다. 2000년대 들어서 부산은 해운대 쪽이 신시가지로 개발되면서 구도심인 광복동 일대가 점점 기력을 잃어갔다. 많은 대도시들이 그렇듯 그냥 놔두면 구도심은 낙후된 어두운 공간이 되어버린다. 그러나 부산시는 광복로를 그냥 방치하지 않기로 했다. 보행자 위주의 걷기 좋은 거리, 걸으면서 볼거리가 있는 아름다운 거리를 만들기 위해 ‘광복로의 광복’이라는 제목으로 거리설계 공모전을 개최했다. 국내외의 전문가들이 다양한 계획을 접수했다.

다듬어진 결론은 차로를 줄이고 보행자 거리를 확대하며, 보행자 거리의 곳곳에 작은 공원과 문화예술적인 스트리트 퍼니처를 설치하고, 아름다운 간판 개선사업을 진행한다는 등등의 내용이었다. 추진 주체는 부산시 뿐만 아니라 광복로 상가주민협의회와 전문가가 3개의 축을 이루어 나갔다. 부산 광복로 일원의 대규모 가로경관개선사업인 ‘광복로의 광복’이 추진된 것이다.

광복로는 다시 살아났다. 걷기 좋은 아름다운 거리로 탈바꿈했다. 부산에서 어린 시절 학교를 다닌 나로서는 예전에 광복로가 누렸던 영화를 안다. 그런데 최근에 여행해본 광복동은 보행자중심거리가 되면서 오히려 옛날보다 더 활기차다는 느낌을 받았다. 광복로의 경관은 중앙동으로도 이어졌다. ‘40계단 문화테마거리’라고 이름 붙여진 거리는 광복동의 발길을 중앙동까지 잇게 한다.

목포나 군산이나 인천도 일제시대 건축된 근대문화유산을 더러 보존하고 있긴 하지만, 부산은 근대문화유산과 거리경관개선사업을 함께 연결해 부산의 구도심을 살리고 여행객의 발길을 끌었다는 점에서 탁월해 보인다. 의외로 부산은 여행하기에 참 멋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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