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마을을 찾아가는 여행 75

파리를 가보지는 못했지만, 파리 12구역에는 유명한 고가공원이 있다. 프롬나드 플랑테(Promenade plantée, 가로수 산책길) 또는 쿨레 베르트(Coulée verte, 초록 오솔길)라 불리는 공원은 폐선된 고가철도 위에 지어진 4km의 고가 공원이다. 1859년에 건설되어 운행되었던 도심철도가 폐선되자 1993년 철도부지 위에 지어졌다.

파리의 고가공원을 모티브 삼아 지어진 유명한 고가공원이 뉴욕에도 있다. 하이라인 파크(High Line Park)이라 불리는 공원은 뉴욕의 도심을 관통하는 2km 가량의 고가공원이다. 1930년대 중반에 도심개발을 위해 맨해튼을 관통하는 화물철도인 웨스트사이드 라인이 건설되어 운행되었지만 육상교통이 활발해지면서 용도가 사라졌고 폐선된 철도는 잡초가 우거진 흉물이 되어갔다. 당연히 철거가 예상되었지만, 비영리 민간단체인 하이라인 친구들(Friends of the High Line)이 결성되어 고가철도를 도심공원으로 만들자는 제안을 확대시켰고 뉴욕시가 그 제안을 받아들여 오늘날의 아름다운 공원으로 탄생되었다. 꽃과 나무, 물과 돌, 다양한 벤치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공원은 도심의 명물이 되었고, 공원을 걷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죽어 있던 철길 주변의 상가들이 오히려 활발해졌다.

뉴욕 하이라인 파크(High Line Park). 위키백과의 사진을 따왔다.

드디어 우리도 서울역의 앞과 뒤를 잇던 서울역 고가도로의 통행이 폐지되면서 아름다운 도시 고가공원이 탄생했다. 철거를 택하는 대신 아름다운 도시공원으로 바뀌자 만리동 상가 일대는 차가 통행할 때보다 오히려 활성화되고 있다. 그런데 서울역 고가공원보다 더 아름다운 도시공원이 있다. 폐선된 경의선 철도노선을 이용한 경의선 숲길이다.

경의선은 1905년 일본이 러일전쟁을 위해 건설한, 용산구의 서울역과 북한 신의주 청년역을 잇는 철도 노선이다. 경의선 본선은 용산역에서 공덕과 홍대입구 등을 지나 수색으로 빠져나가는 노선이었으며, 1919년 별도로 가좌에서 갈라져 연대앞을 지나 서울역으로 가는 선로가 추가로 건설되었다. 한때 교외선이라는 이름으로 서울역에서 문산까지 낭만열차로 운행되기도 했지만 현재는 경의중앙선이라는 이름으로 문산에서 용산역을 거쳐 우리 양평의 지평역까지 운행된다.

그런데 경의중앙선이 2014년 개통되면서 용산역에서 가좌역 사이의 구간을 지하화했고, 그 구간의 본래의 철도는 지상에 남았다. 서울시는 그 철도의 이용방법을 시민들 및 전문가들과 다양하게 논의하였고, 숙의 끝에 숲길 공원으로 조성하는 결론에 이르렀다. 용산역에서 가좌역까지 총 6km가 넘는 구간 중에 2km 정도는 공덕역 서강대역 등의 역사(驛舍)가 차지하는 구간이고 나머지 4km가 넘는 구간이 숲길이다.

숲길 공원이라 하더라도 어떻게 조성하느냐에 따라 그 느낌이 다를 수 있다. 인위적으로 조성하는 공간은 자칫하면 우리의 생체리듬과 어긋날 수도 있다. 최대한 자연이 살아가는 그대로의 모습과 닮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경의선 숲길은 100점이다. 아니 120점이다. 일본 도쿄 세타가와구(世田谷区)의 기타자와가와녹도(北沢川綠道)에서 느꼈던 환희를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연남동 구간에 흐르는 물길은 갈대류와 어울려 자연스런 생태를 띠고, 나무의 수종도 상당히 다양하다. 산책길도 시멘트로부터 목조, 석조에 이르기까지 다양해서 걷는 사람들이 지루하지 않다. 전체적인 느낌이 이미 수십 년 오래전부터 자연스럽게 조성된 산책길 같다. 편하다. 여유롭다.

내가 학교를 다닌 동네여서 연남동과 서강대 앞쪽의 옛날 모습을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다. 철길을 옆에 둔 동네가 거의 그러하듯이 스러져가는 집들이나 빼곡한 다세대주택 등이 시커멓게 모여 있고, 상가들이라고 해봐야 허름한 소주집이나 기사식당이 고작이었다. 그런데 연남동 구간에는 벌써 고상한 까페와 베이커리, 브런치 식당이 상당히 자리 잡았고, 특히 휴일에는 젊은이들이 넘쳐난다. 연남동을 시발로 그 상권은 확대되어 가고 있는 중이다.

연남동 구간의 경의선 숲길. 동교동 삼거리에서 시작된다. 꼭 한번 가볼만 한 곳이다.

일부 보도나 풍문에 의하면 땅값이 70배가 띈 곳도 있단다. 그것도 매물이 없단다. 그야말로 천지개벽이다. 어둠과 소음에 묻혔던 동네가 밝고 활발한 동네로 바뀌어가고 있는 것이다. 사람인지라 질투 나는 부러움이 슬그머니 솟았다. 옛것의 낭만을 지키면서 새롭게 가꾸면 사람이 찾아온다. 사람을 위한 공간이 생기고 거기에 사람들이 모이면 그것이 바로 아름다움이고 혜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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