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마을을 찾아가는 여행 74

오래된 것들을 보존하여 아름다움이 빛나는 마을을 찾아가는 여행의 발길을 우리 국내로 돌려 몇 군데 가볼까 한다. 한국의 오래된 아름다운 마을로서 대표적인 곳은 단연 한옥마을일 것이다. 경주 양동(良洞)마을과 안동 하회(河回)마을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한옥마을이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전주 한옥마을을 비롯해서 서울의 북촌 등도 한옥마을로 이름나 있지만 다소 상업적이고 퓨전(fusion)한 면이 없지 않다.

경주 양동마을이나 안동 하회마을은 원형 그대로의 전통적인 한옥마을로 남아 있다. 1500년대 중후반에 지어진 한옥들이다. 양동은 한옥 50여동을 비롯해 초가집을 포함해 160여 동의 가옥이 보존되어 있고, 하회는 한옥 60여동을 포함해 130여동 규모이다.

그런데 두 마을 모두 불특정 다수의 일반인들이 생활하던 주거지나 상가거리가 아니라 집성촌이라는 점이 약간 아쉽다. 양동마을은 월성 손씨와 여강 이씨의 집성촌이며, 하회는 풍산 류씨의 집성촌이다. 대표적인 사람들이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 1491~1553년)과 서애(西涯) 류성룡(柳成龍, 1542~1607)이다. 가문의 친인척 관계에 따라 마을이 이루어졌다. 물론 집성촌이기 때문에 건물이 더 잘 보존되어 왔을 뿐만 아니라 공동체 문화가 뚜렷이 살아 있다는 점은 특징이기도 하다. 예를 들면 하회마을의 경우 풍산 류씨 선비들이 여름 뱃놀이와 함께 즐기던 ‘하회선유(船遊)줄불놀이’와 일반 서민들이 설날에 마을의 서낭신에게 지내던 제사로부터 유래된 ‘하회별신(別神)굿탈놀이’가 지금까지 공동체 문화로서 맥을 잇고 있다.

경북 안동 하회마을(유네스코 문화유산)

집성촌의 특징을 띠는 또 한 가지 문화는 각자 자기 가문의 독자적인 학풍을 잇는 서원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하회마을의 경우 약 5km 떨어진 곳에 류성룡을 비롯한 풍산 류씨의 학풍을 기리는 병산서원이 있다. 낙동강 강가에 세워진 병산서원은 서원 자체가 단순하고 심플한 구조인데 선비들의 토론 장소인 만대루(晩對樓)는 단순 여백미의 극치를 이룬다. 만대루라는 한자가 독특해서 찾아보았더니 두보(杜甫)의 시 ‘백제성루’(白帝城樓)의 한 구절인 “취병의만대”(翠屛宜晩對)에서 따왔다고 한다. 이 구절의 해석을 찾아보았더니, 어떤 곳에서는 “푸르른 절벽은 오후 ‘늦게야’ 대할만 하다”라고 해석하는 반면 다른 곳에서는 “푸르른 절벽은 오후 ‘늦게까지 오래도록’ 대할 만하다”는 해석이 달랐는데, 그 다음 구절인 “백곡회심유”(白谷會深遊)가 “흰 바위 골짜기는 그윽이 오랫동안 즐기기 좋다”고 해석되는 점을 고려하면 후자의 해석이 맞는 듯하다. 즉 만대루는 ‘학문이나 자연 그리고 사람을 오랫동안 그윽이 대할만 한 곳’이라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인 듯하다. 양동마을도 7km 정도 떨어진 곳에 옥산서원이 있다. 이언적의 학문을 기리는 단아한 곳이다. 하회나 양동 모두 마을과 함께 서원도 둘러보는 것이 좋다. 그래야 여행이 완결된다. 그리고 두 마을 모두 한옥 숙박을 제공하므로 느긋이 즐겨보는 것도 좋다. 하회는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가, 그리고 양동은 찰스 황태자가 방문한 곳이다. 영국인답다.

경주 양동마을(유네스코 문화유산)

하회나 양동만큼 규모 있고 정돈된 곳은 아니지만 그 이외에도 전통 한옥마을은 꽤 있다. 아산의 외암마을이나 성주 한개마을, 봉화 닭실마을, 함양 개평한옥마을도 가볼만 하다. ‘한옥마을’이나 ‘전통마을’을 키워드로 하는 책을 한 권 갖춰 놓고, 여행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 지역의 한옥마을을 포함시키면 여행이 좀 더 알차게 된다.

지방자치단체에서 마을에 배정되는 예산 중 적지 않은 돈이 마을회관을 신축하거나 개축하는 돈이다. 한옥마을을 여행하던 중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마을회관은 가능하면 한옥으로 짓는 것이 어떨까. 마을회관은 주로 마을의 노인들이 시간을 보내는 곳이며, 동네잔치가 벌어지는 곳이다. 마을공동체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 오랜 역사를 담을 그릇은 거기에 걸맞은 향취가 있어야 한다.

콘크리트 사각형의 국적 없는 건물이 아니라, 작은 정원이라도 가진 아담한 한옥으로 지어진 마을회관이 마을마다 자리 잡고 있는 모습을 상상해보자. 그 풍취만으로도 공동체의 정이 살아나고 정체성이 보존되며, 경관의 중심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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