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마을을 찾아가는 여행 72

전통적 건조물군 보존지구로 지정된 곳은 아니지만 도시 전체가 하나의 오래된 이야기를 품고 있는 작품 같은 도시를 찾아가 보려 한다. 카나가와현(神奈川県)의 카마쿠라(鎌倉市)이다. 일본 역사에서 한때 교토와 비등했을 만큼의 중요성을 가진 곳이다. 미나모토 요리토모(源頼朝)가 일본 최초의 막부인 카마쿠라바쿠후(鎌倉幕府)를 개설하고 150년가량 도읍으로 삼았다. 도쿄에서 불과 한 시간이면 닿을 수 있는 곳에 오래된 거리와 아름다운 바다와 섬의 낭만이 함께 어우러져 도시 전체가 하나의 작품처럼 숨어 있다.

카마쿠라는 카마쿠라 막부가 심혈을 기울인 계획도시로서 쓰루가오카하치만구(鶴岡八幡宮)라는 궁궐을 중심으로 대규모 도시계획으로 이루어져 있다. 도시 전체가 카마쿠라로쿠오오지(鎌倉六大路)라고 불리는 6개의 대로로 이루어져 있는데, 하치만구 바로 앞 거리인 와카미야오오지(若宮大路)는 일본의 아름다운 길 백선(日本の道100選) 중에서도 으뜸으로 꼽히고 있다. 하치만구를 참배하는 오래된 참도(参道)로서 이미 11세기 초에 약 1.8㎞ 대로가 왕복 6차선의 넓이로 건설된 데다가 현재는 도로의 중앙에 중앙분리대 겸 보도를 넓게 설치하여 독특한 분위기의 커뮤니티 도로로 역할하고 있다. 걷는 것 자체로 재미나는 길의 전형이다. 그리고 그 대로의 이면 골목도로에는 왁자지껄한 공예품과 먹거리 가게들이 여행객들로 붐빈다.

카마쿠라(鎌倉市) 쓰루가오카하치만구(鶴岡八幡宮) 앞의 와카미야오오지(若宮大路)

와카미야 오오지의 중심부를 벗어나 바다 쪽을 향해 직진으로 나아가면 카마쿠라의 역사만큼 오래되어 보이는 고목 가로수들이 즐비한 거리를 만난다. 도로 전체의 폭은 왕복 6차선은 되어 보일 정도로 넓지만 고목들이 사방으로 넓게 내뻗어 지상으로 튀어 오른 뿌리들로 인하여 하는 수 없이 넓은 도로의 대부분은 인도가 되었고, 차도는 왕복 2차선밖에 안 된다. 도심을 걷고 있지만 마치 천연식물원 같다.

카마쿠라의 매력은 오래된 거리와 함께 달리는 노면전차에도 있다. 때로는 오래된 거리 위로, 때로는 닥지닥지 붙은 주택가 사이로, 때로는 확 트인 바다를 보며 철컹철컹 다니는 노면전차가 주 교통수단이다. 에노시마덴샤(江ノ島電鉄), 줄여서 에노덴(江ノ電)이라고 부르는 카마쿠라의 노면전차는 그 자체로 이름난 관광상품이다. 카마쿠라 시민들에게 일상적인 휴양이고 놀이터인 아름답고 긴 가마쿠라 해변을 가로지른다. 에노덴의 종점엔 아름다운 섬 에노시마(江ノ島)가 있다. 하나의 작은 동산처럼 생긴 에노시마는 해안 사구에 의해 자연스럽게 육지와 연결된 섬인데, 탁 트인 바다 전망과 더불어 볼거리, 먹거리가 풍부한 각종 가게들이 좁은 등산로 주변에 닥지닥지 붙어 있다. 에노시마는 도쿄시민들에게도 유명한 데이트 코스다.

카마쿠라 도로의 인도. 오래된 나무뿌리들이 얽혀 거리가 마치 천연식물 공원같은 느낌을 준다.

카마쿠라의 매력은 오래된 도시 또는 아름다운 경관의 명성만으로도 또 부족하다. 카마쿠라는 일본 현대화 과정에서 도시 전체가 약칭 ‘고도보존법’(古都における歴史的風土の保存に関する特別措置法)으로 보존과 개발이 균형을 이룸으로써 수많은 문학가들이 카마쿠라로 이주해왔다. 출판사들이 많은 도쿄에서 멀지 않고, 역사와 전통과 경관이 살아있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수많은 작가로 인해 소위 카마쿠라분시(鎌倉文士)라는 문파가 생겨날 정도였다. 카마쿠라에 거주하는 문인들을 총칭하는 말이다.

카마쿠라는 영화의 배경으로도 유명하다. 그 유명한 애니매이션 ‘슬램덩크’(Slam Dunk)는 가마쿠라 고등학교 농구부가 실제 배경이다. 에노덴이 철컹거리며 지나고 철도건널목의 차단기가 올라가면 가마쿠라해변 백사장으로 달려 나가 훈련하던 장면들이 고스란히 떠오른다.

몇 년 전에 우리나라에도 개봉되었던 고레에다 히로카즈(是枝裕和) 감독의 영화 ‘바닷마을다이어리’(海街diary)도 가마쿠라가 배경이다. 일찍이 가족을 버린 아버지와 떨어져 성장한 세 자매가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혼자가 된 배다른 동생을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훈훈한 영화다. 네 명의 자매가 카마쿠라의 해변을 거닐며 가족이 되어가는 모습은 개별화되어 가는 현대사회의 휴머니티를 되돌아보게 한다.

카마쿠라는 굳이 만들지 않아도 풍부한 스토리가 넘쳐나는 도시다. 오래된 것들의 중후함, 푸른 바다와 맑은 하늘, 품격 있는 문화적 분위기. 카마쿠라에서 보낸 이틀은, 비록 사람이 인공적으로 만든 도시라고 하더라도 이 정도라면 자연이 주는 푸근함에 못지않다는 느낌을 갖게 하는 드문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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