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초입 단풍구경, 30분 산행이면 충분

소리산은 계곡과 산 초입에 단풍나무가 분포돼있어 짧은 산행으로도 가을 단풍을 만끽할 수 있다.

이제 전국적인 단풍행렬은 동쪽에서 남쪽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중부지방 단풍여행은 끝났지만 양평의 산들은 울긋불긋 여전히 가을 정취를 뿜어내고 계곡은 단풍 절정이다. 지난달 29일 단월면 소리산을 찾아 깊어가는 양평의 가을을 만끽했다.

단월면 가장 북쪽에 위치한 소리산은 강원도 홍천군과 접경을 이루고 있다. 큰 산은 아니지만 깍아지른 절벽과 맑은 계곡이 어우러져 예로부터 ‘경기도의 소금강’이라 불릴 만큼 경치가 빼어나다. 산음자연휴양림 입구를 지나쳐 산길로 들어서자 낙엽들이 이리저리 휩쓸려 도로를 구른다. 가벼워진 몸으로 겨우 매달려있던 나뭇잎들도 거세진 바람에 더 이상 버티지 못하겠는지 끝없이 길 위에 떨어진다. 순간 너무 뒤늦게 단풍구경에 나선 게 아닌가 걱정이 앞섰다.

소리산 등산로 들머리는 산 남쪽, 북쪽, 동북쪽 등 세 곳에 있다. 절벽으로 이뤄진 서쪽의 등산로는 사고가 잦아 폐쇄됐다. 가장 일반적인 코스가 소리산 남쪽의 인이피계곡에서 수리바위를 거쳐 정상에 이르는 1시간20분 코스다. ‘소리산소금강’식당 앞 갓길에 주차를 하고 계곡으로 들어섰다. 여름철 인파들로 북적이던 긴 계곡은 맑은 물소리만 가득하다. 돌다리를 건너가니 바로 산으로 오르는 길이 보인다. 여기서부터 소리산 정상까지 1523m다.

산길로 들어서자마자 단풍나무 행렬이다. 절정에 이른 붉은 단풍이 등산을 시작하기도 전에 사진 셔터부터 누르게 만든다. 단풍을 배경으로 독사진 한 컷, 둘이 함께 한 컷, 다리 위에서 한 컷. 춘천에서 왔다는 여성 둘은 단풍사진 찍기에 산을 오르는 일은 잠시 잊은 듯하다. 철지나 온 게 아닌가 염려하던 마음이 사라지며 여유롭게 단풍구경에 젖어든다. 기상청은 냉해가 없는 한 올해 단풍색이 상당히 고울 것으로 예상했는데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선명하고 맑은 붉음에 촉촉함까지 더 했다. 계곡의 물소리와 고운 단풍이 눈과 귀를 가득 채워준다. 이런 호강이 500m쯤 이어진다. 습기를 머금은 돌에 쌓인 나뭇잎 때문에 길이 미끄러워 조심하며 30분 정도 오르니 새로운 광경이 펼쳐진다.

수리바위에서 내려다본 석산1리와 도로변 모습에서 수리처럼 우뚝한 산세를 확인할 수 있다.

산허리부터 단풍은 자취를 감추고 참나무·소나무길이 이어진다. 한때 우거졌던 나무숲은 나뭇잎을 떨구고 앙상한 가지로 한층 거세진 바람과 맞서고 있다. 잎 세장이 한꺼번에 바람개비 돌 듯 떨어지기도 하고, 비행하듯 천천히 내려 안기도 한다. 뚝뚝 멋대가리 없이 급하게 떨어지기도 한다. 떨어진 나뭇잎 사이로 도토리 껍질이 간간히 보인다. 산짐승들의 겨울채비가 어지간히 끝난 모양이다. 낙엽구경을 하며 오르다보니 절벽 끝에 ‘소리바위’ 보인다.

소리산(小里山)이란 이름은 산 형세가 수리를 닮아 붙여진 수리산에서 변한 것으로, 예전엔 수리가 많이 살았다는 얘기도 전해온다. 수리(독수리류·진정수리류·물수리)는 나무나 벼랑 위에 둥지를 트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절벽과 바위가 많은 형세를 보면 근거 없는 말은 아닌 듯하다. 조금 아찔하긴 하지만 벼랑 끝 툭 튀어나온 ‘수리바위’에서 내려다보는 석산1리와 도로변 모습에서 수리처럼 우뚝한 산세를 확인할 수 있다. 탁 트인 전망이 정상보다 한 수 위다.

올해 단풍은 여느 해보다 색이 곱다.

이곳 수리바위 입구에서 정상 600m 지점 ‘바람굴’까지는 광풍과의 대면이다. 끝없이 불어대는 바람이 마른 나뭇잎을 때리는 소리에 단풍산을 올랐던 기억은 벌써 저 멀리 달아나버렸다. 바람과 맞서며 오르다보면 작은 구덩이에 세워진 ‘바람굴’ 안내판이 보인다. 설명에는 ‘연중 이굴에서 바람이 끊이지 않으며 겨울에는 손이 뜨거울 정도로 온풍이 나오며 여름에는 손이 얼 정도로 차가운 바람이 나오는 신비의 바람굴’이라고 적혀있고 그림도 그려져 있다. 호기심에 구덩이만한 작은 굴에 손을 넣어보니 습기만 훅 끼쳐올 뿐 온기도 냉기도 느껴지지 않는다. 역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는 사실여부를 확인하려 들면 안 된다. 그냥 믿어야지.

철 울타리에 매달린 산악회들의 리본이 보이면 소리산 정상이 코앞이다. 여기서부터 정상까지 250m는 가파른 바위지대로 이뤄져있다. 암벽등반까지는 아니어도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 초입부터 순조로운 단풍구경을 허락했던 소리산은 역시 쉬운 산은 없다는 사실을 되새기게 해준다. 소리산 정상에는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기념사진을 찍을 포인트다.

하산길은 개인 차량을 이용한 경우 되돌아가는 것 이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지만 그게 아니라면 들고개마을로 짧은 하산을 선택해도 된다. 20분가량 가파른 절벽길이 이어져 로프를 잡고 안전에 유의하며 내려가야 하지만 이후로는 완만한 시골길이다. 소리산참숯마을까지 50분 정도면 충분하다. 이 길로 하산해 찜질방에 몸을 누이니 온몸이 노근한 게 가을 끝자락에 서 있음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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