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복재> 영춘 이복재 경기도향토문화연구소 연구위원

택당은 쏘다지기 아래가 누대의 위치로도 적격이라고 했지만 누대가 있었다는 이야기나 지었던 흔적도 없다. 지금은 석벽의 건너편에 2010년경 흙을 높이 매립하여 주변 지형의 변화가 약간 있고, 하류 쪽에 새로운 교량이 건설되는 등 주변의 모습이 달라졌다. 특히 겨울철에는 양수기로 물을 끌어올려 인공빙벽을 만들어 빙벽등반장으로 활용한다. 우리나라 인공빙벽으로는 제일 높다는 100m코스를 운영하고 있으니 조봉석벽의 높이가 대략 들어난 셈이다. 서 있는 각도가 90도를 넘어 곧 넘어질 것 같아 위협적인 데다 까마득하게 올려다 보여 감히 오르려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조봉석벽, 과학과 문명이 발달한 21세기이기 때문에 가능한 새로운 변신이라 할 수 있겠다.

동계8경중 제7경은 승담(僧潭)으로 ‘깊은 중 못’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거기에서 또 방향을 바꿔 몇 리 쯤 가노라면 승담(僧潭)이 나타나고 이 부근의 못 중에서는 가장 넓은 곳인데, /물가의 언덕이 조금은 평평하여/정사(亭舍)를 용납할만하다.”

다른 팔경에 비해 설명이 짧다. 그럼에도 위치를 확인하는데 가장 많은 노력이 필요했던 곳이다. 조봉석벽에서 몇 리를 내려가면서 보면 못의 형태를 띤 곳이 여러 군데이고 못은 물굽이와 바위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어서 모양이 서로 비슷하다. 못의 크기도 가장 넓다고 썼는데 이 부근은 하천과 들이 다른 곳보다 넓은 지형을 이뤄 논이 많은 편이고 하천을 따라 중앙선 폐철로가 놓여 있어 지형이 바뀐 곳도 많다.

그래서 원문대로 정자나 집을 지을만한 평평한 언덕이 있는 곳을 찾자니 그마저도 어려웠다. 8경중의 마지막인 구암(鳩巖)과 동계기의 끝부분 등을 연계시켜 찾아보았다. 승담에서 구암까지의 거리는 1리쯤 된다고 적혀있으니 구암을 우선 찾기로 했고 찾은 구암에서 거꾸로 1리쯤의 거리에 있는 못을 찾는 방법을 썼다.

이런 방법으로 찾은 곳은 조봉석벽에서 남쪽으로 약1㎞(2.5리)거리이고 아래쪽에 보를 막아서인지 못의 크기도 가장 넓은 곳이다. 이곳이 승담임을 확신하는 가장 큰 이유는 본문의 ‘가용정사〔可容亭舍;정사(亭舍)를 용납할만하다.〕’라는 대목 때문이다. 정자야 바위나 벼랑위에 지어도 무방하겠으나 집(舍)은 아니지 않는가? 집을 지을 만한 평평한 터가 있는지를 확인해보기로 했다. 이곳 외에는 집터가 될 만한 곳이 없었다. 이곳은 중앙선 폐철로가 지나가 토막이 나긴했으나 철도를 빼고 연결해 보니 집 몇 채는 들어설만한 터가 나올 만큼 널찍했다.

산 쪽으로부터 승담 쪽으로 돌출된 바위가 물과 어울려 꽤나 아름다웠을 것으로 짐작이 가지만 지금은 폐철로가 된 예의 중앙선철도가 그 바위를 뚫고 두 개의 터널이 생겨 경치에 상처를 내놓은 점이 못내 아쉽다. 풀리지 않는 의문이 하나 생긴다. 택당은 왜 이곳을 승담(僧潭)이라는 이름을 붙였을까. ‘僧’의 다른 뜻은 중 말고도 ‘마음이 편안한 모양’이기도 하니 ‘마음을 편하게 하는 모양의 깊은 못’이란 의미로 이런 이름을 붙인 것은 아닐는지 모르겠다.

동계8경의 마지막 8경은 구암(鳩巖)으로 ‘승담에서 1리쯤에 있고 시내〔川〕의 동쪽에 있다’며 아래와 같이 적고 있다.

“여기에서 발길을 돌려 1리쯤 가다보면 구암(鳩巖)이 나타나는데,/바로 시내의 동쪽에 있다. / 석봉(石峯)이 일천척의 높이로 우뚝 서 있는데,/그 한쪽 면이 움푹 패어져있는 가운데/아래로 깊은 못 속에 꽂혀있다. / 이속에다 오색빛깔의 새들이 둥지를 틀고 새끼들을 기르고 있으니,/사람들로서는 그 속을 도저히 엿볼 수가 없다. / 그 못의 서쪽으로는 백사장(白沙場)과 청송(靑松)이 있고/그 사이에 꽃나무들이 뒤섞여 있는데,/나란히 앉아서 조망하기에 괜찮은 곳이다.”

정말 찾아 놓고도 확신을 갖지 못한 곳이 마지막 8경이다. 짐작이 가는 곳에 대한 확신을 갖기 위하여 힘든 등산까지 했을 정도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은 부근이 거의 다 돌과 바위로 이루어진 지형이고 산이 곧추 섰고 절벽도 높아 동계8경 중 원형을 가장 잘 유지하고 있는 곳임에도 동계기의 내용과 부합되지 않아 보이는 부분이 한 군데 있어서다.

“석봉(石峯)이 일천척의 높이로 우뚝 서 있는데, 그 한쪽 면이 움푹 패어져 있는 가운데 아래로 깊은 못 속에 꽂혀있다”는 것과 “이속에다 오색빛깔의 새들이 둥지를 틀고 새끼들을 기르고 있으니, 사람들로서는 그 속을 도저히 엿볼 수가 없다”는 대목을 나름대로 요약해 보면 첫째, 돌로 이루어진 봉우리의 높이는 천척(1000자, 약300m)에 달하고 둘째, 그 한 면은 움푹 패어져 있으며, 셋째, 깊은 못과 붙어있다는 것이 아닌가.

이 세 가지 설명을 중 두 번째와 세 번째 설명을 충족시키는 곳을 찾긴 하였으나 모두를 충족시켜 글의 내용과 합치하는 곳은 쉽게 확인할 수 없었다. 승담에서 1리쯤 거리에 비둘기머리를 닮은 바위가 있고 시내의 동쪽이라는 것과 한 면이 움푹 파였고 깊은 못과 붙어있다는 점이 동계기 내용과 일치하는 것 같지만 천척높이의 석봉만은 확신하기가 어려웠다. 비둘기머리를 닮은 바위주변은 바위로 이루어진 봉우리들이 몇 개 우뚝 서 있는데다가 높이도 서로 비슷해 보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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