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병년 작가
더불어 민주당 안민석 의원이 ‘최순실 은닉재산 몰수 특별법’과 월남전 참전전투 수당 미지급금을 월남참전 전우들에게 되돌려 주는 문제를 제기하며 다시 주목받게 된 책이 <프레이저보고서>다. 이 책은 1978년 10월31일 미국 하원이 발간한 보고서로 박정희 신화의 민낯을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프레이저 보고서>를 지난 2014년 완역한 김병년 작가를 옥천면 소재 자택에서 만나 인터뷰했다.
▶ 양평에 언제 이주했나… “5년 전 옥천면에 사는 친척의 소개로 토지를 구입했다. 2년 전 집을 지었고 완전 이주한 것은 지난 1월이다. 도시는 시간과 공간 자체가 협소하고 사람을 들볶는 곳이어서 늘 시골을 동경해왔다. 이화여대 앞에서 천연발효 빵집을 오랫동안 운영하던 아내가 서울생활이 지겹다고 해 이주를 결심했다. 도시는 건물과 건물 사이 눈 돌릴 곳이 마땅치 않고 수용소에 갇힌듯한데 시골은 공간이 열려있어 참 좋다. 해가 지면 졸음이 밀려오고 해가 뜨면 저절로 몸이 일어나진다. 시간이 살아있는 느낌이다. 7, 8월의 작렬하는 빛과 열기는 태양을 확연히 느끼게 하고, 감각 자체가 살아나게 한다.”
▶ 작가가 된 계기가 궁금하다… “1980년대를 겪으며 학생운동에 참여했는데 운이 좋은지 소위 ‘관제수’가 없었다.(웃음) 사회운동을 하다 1995년경 사회개혁에 관한 시론서를 구상 중에 요즘 세상에 누가 이런 걸 읽겠나 싶은 생각이 들어 소설 시놉시스를 써서 유명 출판기획자에게 보여줬다. 기획자가 계약금 1000만원에 파격적인 조건의 출판 제안을 해왔다. 그렇게 해서 2달 만에 내놓은 책이 <L의 비망록>이다. 박정희가 내가 죽으면 나라가 망할 거라는 생각에 대통령을 수호하는 비밀조직을 결성했는데 그 조직의 수장인 L이 과거를 회상하는 회고록 형식의 소설이었다. 초판은 제법 잘 나갔는데 출판 2주후 노태우 비자금 사건이 터지면서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래도 출판사가 손해는 안 봤다고 들었다.”
▶ 주변 반응은 어땠나… “워낙 생각이 많아 한번 시작하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는데 사회운동을 할 때는 그런 성격이 장애요인이었다. 상상하는 것 자체를 즐기고 추론하는 걸 좋아한다. 그런 성격 때문에 장편소설을 금방 투닥투닥 써낼 수 있었던 것 같다.”
▶ 요즘 <프레이저 보고서>에 대한 관심이 높은데 완역은 언제부터 계획했나… “2012년 12월 대통령선거에서 박근혜가 당선된 것이 계기가 됐다. 사람들이 아버지인 박정희의 후광을 보고 대통령을 뽑진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최소한 유권자 수준이 그 정도는 아닐 거라고 믿었는데 충격이었다. 잘못된 인식 때문이라는 생각에 박정희를 가장 객관적으로 드러내는 정보보고서인 <프레이저 보고서>를 완역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1980년대부터 보고서 내용이 알려지긴 했지만 발췌본이었다. 프레이지 보고서 원본은 구글을 통해 미국 대학도서관에서 온라인으로 다운받았다. 연구자들은 450쪽이 넘는 보고서를 한 번에 다운받을 수 있지만 일반인들은 한 장씩만 다운받을 수 있다. 랜(LAN)선이 안 깔려 있어 다운받다보면 자주 멈추기도 했다. 그렇게 한 장씩 다운받는데 일주일이 걸렸다. 그걸 책으로 제본해서 초벌 번역을 시작했다. 2013년 4월 번역을 시작해 10월쯤 작업이 끝났다. 그걸 다시 다듬어 이듬해인 2014년 2월에 출판했다.”
▶ 많은 자료들이 나왔지만 박정희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들은 믿지 않는다… “프레이저 보고서는 공식보고서 외에 내용을 뒷받침하는 부록이 11권이고 백 데이터가 수십 권일 정도로 정확한 근거를 갖고 쓴 보고서다. 박정희 정권의 부정부패와 이대론 안 되겠다는 미국정부의 고민이 담겨있다. 보수 세력이 그런 박정희를 1990년대 이후 무덤에서 다시 끌어냈다. 그들은 민주화세력과 산업화세력의 대립이란 프레임으로 진실을 왜곡하고 있다. 민주화세력과 산업화세력은 분리될 수 없다. 1970~80년대 산업화세력인 노동자와 농민, 그들의 자식이 바로 민주화세력이다. 산업화는 재벌과 군사독재세력이 한 게 아니다. 프레이저 보고서에도 괄목할만한 경제성장에 대해 ‘수많은 성공 요인들 중에서 교육받은 근면하고 훈련된 한국 사람들 자신’을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들고 있다. 박정희 신화는 보수 세력이 자신들을 그 틀 속에 집어넣어 면죄부를 받으려는 전략이다.”
▶ 최순실 사태 이후 박정희의 숨겨진 재산을 찾아 환수하자는 목소리도 있는데… “프레이저 보고서에 의하면 박정희가 재산을 일군 방법은 4가지다. 1970년대 기업대출은 정부 승인을 받아야했는데 대출금의 20%를 뇌물로 받았다. 조세제도나 자산평가, 영업세 등을 조작해 구조적으로 사유화했다. 차관이나 원조금의 10~15% 정도를 원천징수한 것은 86년 경제기획원의 ‘외채백서’에도 나와 있다. 정부발주 공사 대금의 5%를 선금으로 받았다. 100억짜리 공사를 낙찰 받으면 5억을 어음으로 받는 식이다. 집권 내내 돈이 되는 곳은 어디든 빨대를 꽂았다. 이런 내용이 공식보고서에 다 나온다. 이 돈은 스위스, 바하마, 일본 등의 비밀계좌로 입금됐다. 모두 국민들의 돈이다. 반드시 환수해야 한다.”
▶ 프레이저 보고서를 번역하며 느낀 점은… “정상적인 교육을 받고 민주주의 의식을 갖고 있던 엘리트 출신 미국 관료들의 눈에 비친 1945~1978년 한국사회는 부정, 부패, 사기집단이 권력을 잡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이승만, 박정희 정권 이후에도 윤리의식의 부재, 도덕적 무감각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걸 정상으로 여기는 사회, 피곤한 일이다. 정당하지 않아도 잘 먹고 잘 살고 싶다는 욕망이 부동산투기를 투자로 포장하고, 그런 자기욕망의 결과로 이명박,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것 아닌가.”
▶ 요즘은 구상 중인 작품은… “요즘 북핵문제를 보며 통일문제를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이렇게 휘둘려서는 남북분단이 고착화될 것 같다. 자료수집 중이다.”
김병년 작가 (알라딘 제공)
연세대학교를 졸업했다. 노동운동을 했다. 저서 <L의 비망록> <국가를 위하여> 2012년 광주항쟁과 팔레스타인 인티파다를 소재로 한 장편소설 <미래는 남은 자들의 유서이다>를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