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복재> 영춘 이복재 경기도향토문화연구소 연구위원

건지산은 고려 태조 왕건(王建)이 강원도 문막에 있는 건등산(建登山)에 올라 멀리보이나 유난히도 동그라 눈에 띄는 산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저 산이 무슨 산이냐고 물었다는 데서 붙여진 이름이란 이야기도 있고, 옛날 어느 장수가 큰 장마로 떠내려 오는 산을 손가락으로 건져 놓은 산이어서 이렇게 불렀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으나 이름의 유래는 분명치 않다. 다만 ‘가리킬 지’자를 쓰는 것으로 보아 전자 쪽에 무게가 더 실릴 뿐이며 택당은 왜 동계기에 이 산을 빼낼 건(搴)에 지초 지(芝)자를 써서 ‘搴芝山’이라 썼는지는 알 길이 없다.

택당은 건지산과 부근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계류를 따라 위로 5.6리쯤 올라가면,/봉우리하나가 둥글게 솟아 있는데,/토박이들은 이것을 건지산(搴芝山)이라고 부른다. / 산 밑에 암지(巖址)가 있는데,/위는 평평하고 아래는 단애(斷崖)이며/그 앞으로는 계류를 띠처럼 두르고 있다. / 계류 북쪽으로 창벽(蒼壁)이 우뚝 솟구쳤는데/마치 그림을 보는 것처럼 완상(玩賞)할만 하다. / 산의 서쪽으로 계류가 서화현(西華峴)에서 흘러나오는데,/그 계곡이 깊고 그윽하기만 하다. / 옛날에는 여기에 괘궁원(掛弓院)이 있었으니,/이는 서화현이 험준해서 도적을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글속에 나오는 산 밑의 암지(巖址)와 북쪽의 창벽(蒼壁)은 거의 그대로인데 암지와 창벽 사이에 둑을 막아 논을 만들어 암지아래에서 북쪽의 창벽이 바로 올려다 보이지 않는다. 다만 창벽위로 단풍나무를 비롯한 잡목이 우거져 있으며 특히 가을의 단풍은 구경할 만하다.

서화현(西化峴)은 지금의 양동면 단석리와 여주군 북내면 서원리의 경계가 되는 고개로서 당시에는 서원리〔서홰(서화와 원골)〕까지가 양동면 땅이었다가 1895년(고종 32) 지방 관제 개정에 의해 여주군에 편입되었다. 쌍학2리 활거리에서 3.6㎞정도의 거리이다. 괘궁원(掛弓院)이 있었다는 사실만은 새롭다.

다음으로 재4경은 송석정(松石亭)이다.

송석정(松石亭)은 현재 양동면 단석2리의 한 마을 지명으로 사용되고 있어서 필자를 한동안 혼동에 빠뜨린 곳이다. 왜냐하면 지금의 송석정(松石亭)마을은 동계(석곡천)와 서화현사이에 있는 마을로 동계와는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그 이름으로 인해 정자(亭子)로 알고 헤맬 뻔 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동계기에서 송석정과 주변을 자세히 묘사한 기록은 정자가 아닌 것을 먼저 확인할 수 있었고, 결국 그곳을 찾게 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지만 송석정을 찾은 기쁨과 현재의 송석정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허탈감이 교차하고 말았다.

동계기의 송석정에 관한 내용부터 살펴보자.

“바위섬하나가 계류 한복판에 놓여 있다. / 그 위에 고송(古松)이 우뚝 높이서서는 바위를 감싸고서 뿌리를 감고 있는데,/바람과 물에도 뽑히지 않고/산불에도 끄떡없다. / 물이 그 좌우를 휘돌아 흘러가는데,/그 위에 술잔을 띄우고 수계(修禊)하며 마실 만하다. / 그 이름을 송석정(松石亭)이라고 하였으니,/이는 ‘차가운 물속 바위위의 한그루 소나무(寒流石上一株松)’라는 당(唐)나라 사람의 시구를 취한 것이다.”

송석정은 시냇물 한복판에 있는 바위섬이고 그 위에 오래 된 소나무가 우뚝 서있는데 뿌리가 바위를 감싸고 있다. 시냇물 가운데 있으니 말미산에 산불이 나도 끄떡없고 뿌리가 높고 튼튼한 바위를 감싸고 있으니 폭우가 내려 물이 아무리 많이 나가거나 바람이 아무리 세차게 불어도 뽑히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더구나 시냇물이 바위섬 좌우를 흘러 그 위에다 술잔을 띄우고 수계(修禊)하며 마시고 놀만하다고도 하였다. 거기에다 송석정이란 물속 바위위의 한 그루 소나무라는 어느 당나라 사람의 시구에서 따왔다는 설명까지 덧붙이고 있다.

여기서 수계(修禊)란 옛날 중국 주(周)나라 때부터 음력 3월 초순, 정확히는 지지(地支) 중 ‘사(巳)’의 날에 해당되는 때에 수계(修禊)라는 것을 행하는 풍습이 있었다. 수계(修禊)란 본래는 물가에 가서 액을 쫓고 복을 비는 일종의 제사를 가리키는 말이었으나, 위진남북조 시대부터 이것이 물가에 가서 술 마시고 노는 풍습으로 변질되었고 수계(修禊)를 행하는 날짜도 음력 3월 3일로 고정되었다고 한다.

송석정은 동계8경의 제1경인 조적대에서 석곡천 시냇물을 따라 건지산 쪽으로 약500m쯤 올라간 곳 논 가운데 있다. 늙은 소나무가 우뚝서있었을 법한 자리에는 제법 큰 아카시아나무가 한 그루 자라고 있고 바위섬은 상단의 3m정도만 모습을 드러내놓고 있어 이것이 그 아름답던 송석정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으니 안타깝기만 하다.

지금으로부터 50여년전만해도 석곡천의 본래 물흐르는 방향을 인위적으로 돌려놓아 송석정으로 직접 물이 흐르지는 않았지만 이 바위의 모습이 거의 드러나 있었고 주위에는 사람이 사는 집도 한 채 있었다. 지금은 높이가 높이가 5~6m는 되는 둑을 쌓고 흙을 메워 경지정리까지 한 논이 되었으니 송석정의 전체높이는 10m는 족히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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