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마을을 찾아가는 여행 66

성종규 서종주민자치위원회 위원장

오카야마현(岡山県) 타카하시시(高梁市)는 일본이 통일국가로 정비되기 전 비추(備中国)라는 고대국가의 중심이었던 오래된 도시다. 그런 만큼 군데군데 역사적 전통을 자랑하는 경관을 품고 있는데, 그 중심은 비추마츠야마성(備中松山城)이다.

비추마츠야마성은 일본의 3대 산성(山城)의 하나다. 일본의 성들은 방어목적도 있긴 하지만 주로 평상시 그 지방의 영주가 기거하며 정사를 보는 곳이기 때문에 대부분 평지에 대규모로 건설되었다. 그런데 산꼭대기에 건설된 대표적인 성이 마츠야마성이다. 430미터 높이의 마츠야마(松山) 정상에 축조된 것으로서 천수각을 가진 현존 성곽으로서는 최고 높다.

아름다운 마을을 찾아가는 여행을 하면서 곳곳마다 유명한 성이 있으면 시간을 내어 찾는 편이지만 마츠야마성은 반드시 올라가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상당히 아름다운 성이라고 이름나 있었기 때문이다. 성은 평지에서 약 2킬로미터 이상을 올라가야 한다. 택시를 대절하더라도 마지막 500미터 정도는 도보로 올라가야 한다. 마츠야마성은 사진가들에게 유명한 촬영지다. 아침 일찍 운무가 산을 휘감는 날 비추마츠야마성은 마치 구름 위에 떠 있는 ‘하울의 움직이는 성’ 같다고 한다.

고보리 엔슈(小堀遠州)의 라이큐지(頼久寺) 정원. 카레산스이(枯山水)식 정원이다.

마츠야마성이 그렇게 높은 산에 건설되고 유지되어 온 데는 역사적 이유가 있다. 전국시대 말기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마지막 결전인 세키가하라 전투나 메이지유신 초기를 확립하는 보신전투(戊辰戦争) 등에서 격전지였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마츠야마성 아래에는 전통 있는 성하정(城下町)과 품격 있는 경관이 형성되어 있다. 성하정의 거리인 이시비야쵸(石火矢町) 후루사토무라(ふるさと村)와 미관지구인 코야가와스지(紺屋川筋) 일대이다. 이시비야쵸의 거리는 마츠야마성에 머무는 영주의 가신들과 중급무사들이 살던 곳으로서 반듯한 성하정을 형성하고 있다. 담벼락도 보기 드문 전통 흙담으로 깔끔하다. 몇 채의 규모 있는 부케야시키(武家屋敷)가 남아 있고, 그 거리 속에 정원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절이 하나 남아 있다. 라이큐지(頼久寺)는 1339년에 세워진 절인데 1600년경에 코보리 엔슈가 만든 카레산스이(枯山水)식 정원을 가지고 있다.

나는 10여년 전에 가나자와의 겐로쿠엔(兼六園)과 교토의 료안지(龍安寺)의 정원을 접한 이후 정원에 관해서 관심이 많았다. 그 이후 일본의 미를 찾아다니는 과정에서 일본의 다도(茶道)에는 그 유명한 센 리큐(千利休)가 최고인 반면 정원의 설계에는 고보리 엔슈(小堀遠州)가 최고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리고 그 고보리 엔슈가 한때 마츠야마성의 성주(城主)로 있었다는 사실은 이번에 새롭게 알았다.

코야가와스지(紺屋川筋)의 미관지구. 주거지 마을 한가운데 위치하고 있다.

일본의 전통정원 설계방식은 물길과 이끼를 이용한 치센카이유(池泉回遊) 방식을 비롯해 여러 방식이 있는데, 고보리 엔슈는 모든 방식에 능했지만 특히 물과 나무가 없이 돌과 모래로만 산(山)과 수(水)를 만드는 카레산스이식에 능했다. 라이큐지의 정원은 먼 산을 뒷배경으로 하고 모래를 바다 삼아 중앙에 돌로 몇 개의 섬을 만들었고, 둘레에는 낮은 영산홍으로 파도를 만들었다. 절의 마루에 앉아 한참을 말없이 정원만 지켜보았다. 아름다움의 깊이는 어디까지인가.

마츠야마성에서 내려와 이시비야쵸를 걷고 더 내려오면 코야가와(紺屋川)를 따라 걷게 된다. 코야가와는 타카하시의 중앙을 흐르면서 마츠야마성의 공격을 방어하는 해자(垓子)의 역할도 해왔다. 해자의 역할이 필요 없게 된 근대 초기부터 마을 사람들은 천변에 벚나무를 심어왔고 이제는 매년 봄이 되면 고목 벚나무들이 황홀한 꽃잎을 매달고 힘에 겨워 천변으로 늘어진다. 그런 코야가와 일대를 시에서는 미관지구로 지정했다.

마침 벚꽃이 날릴 때 타카하시를 방문했다. 봄날 따뜻한 볕과 돋아 오르는 풀들, 그리고 흩날리는 벚꽃. 더없이 평온하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느리게 그리고 길게 타카하시를 걸었다. 오래된 마을, 그리고 그 오랜 것들을 보존하고 간직한 마을의 봄볕과 공기는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새로운 것만 가득한 곳들과는 다른 향기가 났다.

이방인이 되어 타지에서 따사로운 봄볕을 여유롭게 즐기는 일은 더없는 행복이고 호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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