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마을을 찾아가는 여행 63

성종규 서종면 주민자치위원회 위원장

일본은 12세기부터 바쿠후(幕府)라고 불리는 무사권력에 의한 무사정치의 나라였다. 무사권력 중 지배층의 서열은 크게 쇼군(將軍)과 다이묘(大名), 그리고 사무라이(侍)로 이루어지는데 사무라이란 단순히 무사(武士)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무사 출신에 의한 관료계급을 말한다. 한자로는 ‘모신다’를 뜻하는 ‘侍’를 쓰니까 마치 시중드는 일을 하는 하급 일꾼인 것처럼 착각할 수도 있지만, 그들이 항상 충성해 마지않는 주군(主君)을 모신다는 뜻이기 때문에 격이 낮지 않다.

문인(文人)과 비교해서 무인(武人)이 가지는 독특한 특성들은 일본 사회의 여러 분야에 반영되어 있다. 원칙과 기준을 목숨처럼 여기는 태도가 대표적이다. 그들은 공공의 원칙을 정하면 목숨같이 지킨다. 일본을 한번이라도 여행해 본 사람이라면 도착하자마자 쓰레기와 불법주차가 없는 거리의 정갈함에 놀라게 된다. 사무라이 기질의 자손들이다.

그러나 조금만 더 깊이 들여다보면 사무라이들이 그런 기질을 갖게 된 것은 단지 무인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농민이나 평민, 천민들을 지배하는 상층부 관료계급이었기 때문에 그들 나름대로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를 몸에 붙여온 노력의 결과였다.

관료계급으로서의 사무라이들이 살던 가옥들이 늘어선 거리를 부케야시키토리(武家屋敷通り)라 부른다. 부케야시키토리로 이루어진 전통적 건조물군 보존지구가 무가정(武家町)이다. 우리가 찾아가 볼 곳은 일본 동북부 아키타현(秋田県) 센부쿠시(仙北市)의 카쿠노다테(角館)와 가장 남쪽의 가고시마현(鹿児島県) 미나미큐슈시(南九州市)의 치란(知覧)이다.

카쿠노다테는 2011년 3월 일본의 쓰나미 피해로 유명한 센다이(仙台)를 통해서 갔다. 바다쪽을 향하여 잠시의 묵념을 한 채로 신칸센을 타고 곧장 카쿠노다테로 향했다.

카쿠노다테(角館) 부케야시키(武家屋敷)에 흐드러진 벚꽃(사진은 JAPAN WEB MAGAZINE에서 허락을 받아 싣는다).

사무라이 집단 속에서도 서열이 있다. 다이묘들을 바로 곁에서 모시는 직속 최상급 관료그룹과 상급무사, 하급무사 등으로 나뉜다. 직속 관료그룹들이 살았던 가옥은 성주(城主) 다음으로 대단한 규모를 가진다. 한 채의 가옥의 대지가 3천평에 달하는 것도 있다. 카쿠노다테는 상급 관료들이 살았던 대규모의 부케야시키들이 주를 이루는 거리이다. 초입에 들어서는 순간 거리는 장엄하고 고요하며 엄숙했다. 가옥 한 채 한 채의 규모도 대단했거니와 가옥과 가옥 사이의 도로도 상당히 넓었다. 도로의 폭이 요즘의 4차선 도로만 했는데, 기록에 의하면 1620년경에 아예 그런 넓이로 조성되었다니, 대단한 도시계획에 감탄이 절로 흘러 나왔다. 이시구로게(石黒家), 아오야기게(青柳家) 등의 대단한 저택들이 문을 개방하고 관람을 가능하게 해 주고 있었다.

거기에 장엄함을 더하는 것은 아름드리 벚나무들이었다. 500년의 역사를 지켜온 벚나무들이 가옥마다 거대하게 늘어섰는데, 카쿠노다테에서만도 무려 162그루가 국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고 한다. 벚꽃이 흐드러지면 최고의 경관을 이룬다고 하는데 나는 봄을 맞추어 가지는 못했다. 카코노다테는 장엄한 역사의 살아 있는 흔적이었다.

큐슈 중에서도 가장 아래에 있는 가고시마현은 따뜻한데다가 온천도 많아서 겨울 휴양지로 꼽힌다. 휴양차 가고시마에 가더라도 반드시 치란 마을거리는 가보기를 권한다. 어떤 여행객은 치란의 부케야시키토리를 걷노라면 현재인지 과거인지 시간감각을 잃을 뿐만 아니라 과거의 어느 장면이 내 속에 재현되는 기시감(既視感) 같은 것을 느낀다고 한다.

치란(知覧)의 부케야시키토리(武家屋敷通り)

치란의 느낌은 카쿠노다테와는 또 완전히 다르다. 위엄있는 건물이 나란히 서 있는 거리가 아니라 가옥과 가옥의 배치와 골목의 설계 뿐만아니라 담 역할을 하는 생울타리 등이 모두 외부의 공격에 대비해서 설계되어 있다. 말하자면 길의 배치가 바둑판이 아니라 이리 저리 예각으로 꺾어 이동이 어렵고 시야를 좁혀 공격이 힘들게 해놓았다. 담벼락 역할을 하는 차나무 생울타리는 직사각으로 반듯하게 전지(剪枝)되어 있는데, 나는 본래는 그냥 보기 좋기 위해 전지를 한 줄 알고 너무 인공적이라고 쓴웃음을 지었었는데, 알고 보니 그 또한 외부의 공격을 어렵게 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단순한 담벼락보다 생울타리가 뛰어넘기 어렵다는 것이다.

시간여행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경험이다. 그런 곳이 남아 있다는 것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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