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마을, 왜 만들어야 하는가> 성종규 서종면 주민자치위원회 위원장

아름다운 마을을 찾아가는 여행 60

 

오사카나 교토를 여행하게 되면 한 번쯤은 꼭 들러볼 만한 곳이 나라(奈良市)다. 교토에 앞서 서기 700년대까지 일본의 수도였던 만큼 유서 깊은 곳이다. 토다이지(東大寺)의 노사나불(盧舎那仏像)을 비롯하여 세계문화유산도 꽤 보유하고 있다.

역사가 깊은 도시인만큼 전통적 건조물군 보존지구 중에서 재향정(在鄕町)으로 지정된 곳이 있는데, 나라현 카시하라(橿原)시의 이마이쵸(今井町)다. 재향정이란 유명한 성이나 사찰을 배경으로 형성된 성하정이나 사내정 등과는 달리 특별한 중심시설도 없고, 숙장정이나 상가정과도 달리 특정한 상업을 영위하는 곳이 아닌 일반 평민의 주거가옥 건물들로 이루어진 거리다. 따라서 건물들은 두드러진 특색 없이 비교적 균등한 수준을 띈다.

이마이쵸의 역사는 깊다. 뿐만 아니라 중세시대로부터 형성되어온 주거단지치고는 꽤 넓다. 에도시대인 17세기경부터 형성된 이마이쵸는 17㏊가 넘는 넓이에 약 1000채 이상의 목조주택이 대규모 단지를 이루고 있다. 당시 일반 농촌마을이 마을당 몇 십 채 정도로 이루어졌던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규모다. 당시 이마이쵸에는 상업으로 돈을 벌기 시작한 사람들이 많이 거주했는데, 한 때는 “일본 돈의 7할은 이마이에 있다(大和の金は今井に七分)”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그러한 규모가 현재까지도 크게 차이나지 않는 채로 유지되고 있다. 현재 에도시대 건축양식 그대로 보존되고 있는 주택을 약 500채 정도로 보고 있다. 마을에 들어서면 시야의 앞뒤 좌우로 모두 평온한 전통 목조 서민주택이라서 정말로 중세시대의 마을 한가운데 들어와 골목길을 걷는 느낌이 든다. 특별히 유난한 건물이 없어 떠들썩한 여행객도 그리 많지 않다. 오히려 학술연구 목적이나 미술동호회 일행 등이 드문드문 보일 뿐이다. 내가 갔을 때도 대여섯 명의 미술동호인들이 골목길 한쪽에 앉아 중세시대의 풍경을 화폭에 담느라 스케치에 열심이었다.

이마이쵸(今井町)에서 중세시대의 풍경을 화폭에 담는 아마추어 화가들.

이마이쵸가 잘 보존된 것은 단지 보존지구로 지정해준 지방자치단체나 정부의 힘에 의해서만은 아니었다. 마을의 역사적 가치를 보존하려는 주민들의 모임인 ‘이마이쵸보존회(今井町町並み保存会)’의 노력이 시작된 것은 1955년경부터다. 보존운동에 나선 선구자들은 일단 거주민들의 현황조사부터 시작했고, 1971년경에 ‘이마이쵸수호회(今井町を守る会)’를 결성하여 오늘날의 보존회에 이르렀다.

보존회는 1974년 숙장정인 쯔마고주쿠(妻籠宿)와 염직정(染織町)으로 전통적 건조물군 보존지구로 지정된 아리마츠쵸(有松町)의 주민단체와 연대하여 ‘아름다운 전통거리 보존연맹(町並み保存連盟)을 결성해 연대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연맹은 2014년에는 3개 단체 연합대회를 열고 “거리는 우리 모두의 것(町並みはみんなのもの)”이라는 슬로건을 재확인하고 선포했다.

보존회는 그 이후로 국내외의 다른 마을 연수를 포함하여 지속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 벌써 7년여 동안 꼬박꼬박 한 달에 한 번씩 「이마이는 지금(いまいは今)」이라는 자체 홍보지도 발간하고 있다. 일본어 발음으로 읽으면 ‘이마이와 이마’로 읽히게끔 재밌게 이름을 지었다.

이마이쵸의 한적한 중세 골목길을 한나절 걷다가 오후 늦게 나라시로 돌아와 들린 곳은 나라시 나라쵸(奈良町)의 격자의 집(格子の家)이다. 나라쵸는 보존지구로 지정된 곳은 아니지만 전통적이고 독특한 격자의 집들이 있다. 지방문화재로 보호되는 전통주택이다. 대지가 그리 넓지도 않고 규모가 크지도 않은 민가인데 독특한 구조에 창문과 내실 미닫이의 격자가 아름다웠다. 우리나라 사찰이나 궁궐의 세련된 꽃무늬 문살 같은 조형미에 비교하면 일본의 격자는 대부분 직선 격자로서 단조롭긴 하지만, 단순한 가로와 세로 직선만으로도 다양하게 만들어내는 심플한 기하학적 아름다움이 독특했다. 우리의 경우 일반 민가에서는 거의 문살의 전통이 사라진 반면 일본은 목조주택이어서인지 격자창의 전통이 민가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재향정(在鄕町), 이마이(今井)

이윽고 어두워진 나라시내를 걷다가 들린 재래시장의 이자카야에서는 뜻밖에도 혀가 행운을 얻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꽁치회를 맛본 것이다. 젊은 남자 셰프가 혼자 운영하는 아주 작은 가게였는데, 산마(サンマ)라고 불리는 등푸른 꽁치회는 교토와 나라를 잇는 여행길의 에너지가 되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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