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경 지음, 휴(2016)

불교의 가르침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연기緣起’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불교를 철학하다>의 저자는 “연기란 어떤 조건에 연하여 일어남이고, 어떤 조건에 기대어 존재함”이기에, ‘연기적 사유’는 “변하지 않는 본성이나 실체 같은 건 없음”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나의 본성’은 그래서 내가 아니라 ‘나의 이웃’이 결정한다는 것이죠. “칼은 당근의 ‘살’이란 이웃과 만나면 도구가 되지만, 사람의 ‘살’이란 이웃과 만나면 흉기가 된다”는 예에서 알 수 있듯 어떤 상황과 조건을 만나는가에 따라 ‘나’의 모습은 달라질 수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연기적 사유는 어떤 것의 본성을 그 외부에 의해 포착하는 ‘외부성의 사유’”라고 합니다.

서양철학을 공부한 저자는 어느 날 화장실에서 우연히 성철 스님의 강의록을 읽게 된 이후로 불교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고 합니다. 이 책은 “무언가 만나서 함께하고 있는 우연적인 순간이야말로 우리의 생 전체이고, 우리의 생을 직조하는 것임을 기쁘게 긍정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연기적 사유를 성찰한 결과물입니다. 이 땅 위 모든 삶의 긍정성을 서양철학자의 시선으로 흥미진진하게 풀어낸 불교인문학책으로, 관계론에 관심 있는 독자들께 권합니다.

용문산동네서점 ‘산책하는 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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