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세가와 요시후미 지음, 고래이야기(2009)

맛있게 라면을 먹는 소년과 늘어지게 하품하는 고양이. 비데 위에 앉아 편하게 볼일을 보는 소년. 친구들과 야구를 하고 엄마와 요리를 하며 평화롭고도 평범한 일상을 사는 아이들. 그런데 페이지를 넘겨갈수록 같은 시간에 가난으로 힘들어하는 어린이들의 모습이 순차적으로 등장합니다. 뜨거운 라면을 호호 불며 먹는 소년의 이마에 맺힌 땀을 식혀주는 시원한 바람. 그 바람이 먼 곳의 누군가에겐 고난의 바람이었음을 보여주며, 우리 모두는 어떤 식으로든 이어져 있다는 것을 웅변하는 책, <내가 라면을 먹을 때>입니다.

저자는 뻔한 이야기를 구구절절 풀어내는 방식에서 벗어나 충격요법을 사용하여 독자의 예상을 여지없이 허물어줍니다. 우리 옛 그림에서 비, 눈, 바람을 표현하려고 점을 찍거나 회오리를 그려내진 않지요. 비는 우산을 쓴 사람으로, 바람은 흔들리는 나뭇가지나 휘날리는 치맛자락을 붙잡는 여인으로 보여주듯, 저자는 ‘이것’을 이야기하는 대신 ‘저것’의 이미지를 보여주어 우리의 인식을 새롭게 해줍니다. 아이도 어른도 반할 수밖에 없는, 그림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봐야 할 책입니다.

용문산동네서점 ‘산책하는 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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