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마을, 왜 만들어야 하는가> 성종규 서종면 주민자치위원회 위원장

아름다운 마을을 찾아가는 여행 57

 

발효(醱酵)란 유기물질을 분해하여 음식의 맛을 창조하는 과정이다. 대표적인 발효식품은 각종 장류(醬類)와 술이다. 한국과 일본은 전통 간장을 담는 방법이 다르다. 한국의 간장과 된장은 메주를 말려 거기다가 소금물을 더해 만든다. 반면에 일본의 간장은 메주 과정이 생략되어 있다. 콩에 소맥을 더하여 누룩곰팡이로 발효시킨다. 메주는 말리는 동안 공기 속의 다양한 발효균들이 메주의 겉과 속에서 작용하기 때문에 누룩곰팡이로만 발효하는 일본의 양조간장보다 우리 조선간장이 훨씬 맛이 깊고 다양하다.

일본의 전통주라고 주장하는 사케(淸酒, 日本酒)나 소츄(焼酎)는 쌀이나 보리 등의 곡류에 누룩 종류인 코지(麹)로 발효시켜 만든다. 말하자면 우리는 그렇지 않지만 일본의 경우에는 간장을 담는 방법이나 술을 담그는 방법이 누룩곰팡이를 이용한다는 면에서 동일하다. 미소된장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일본에서는 양조(釀造)라고 하면 간장과 술의 제조를 통칭한다.

간장은 음식의 맛을 내는데 필수적이고, 술은 기호품으로써 필수적이었기에 양조장은 그 역사가 깊다. 그런 양조장들이 모여 있는 거리가 전통적 건조물군 보존지구 중 양조정(釀造町)으로 남아있다.

양조정 중 대표적인 곳이 히젠하마주쿠(肥前浜宿)이다. 정식 이름은 사가현(佐賀県) 카시마시(鹿島市)의 하마나카마치 하치온기주쿠(浜中町八本木宿)이다. 사가현은 중세시대에 히젠지역이라 불려 사가현 내의 상당한 마을들이 히젠이라는 이름을 앞에 달고 있다. 따라서 이 지역의 기차역 이름도 히제하마주쿠역이다. 그리고 이름에 주쿠(宿)를 달고 있기에 쯔마고나 마고메처럼 숙장정(宿場町)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그 의문은 마을 입구의 안내판을 보고서야 풀렸다. 양조정으로 발전하기 전에 숙장정 기능을 했기 때문이란다.

히젠하마주쿠(肥前浜宿) 양조정 거리

히젠하마주쿠는 급행열차가 서지 않는 작은 마을이어서 사가에서 나가사키를 가는 급행열차에서 내려 일부러 완행열차를 갈아타야 했다. 역에서 내리자 마을은 그지없이 평온했고 10분 정도를 걷자 오래되고 묵직한 옛 목조건물들이 나란히 자리 잡은 양조정 거리가 나타났다.

대부분의 전통적 건조물군 보존지구들이 그렇듯이 히젠하마주쿠의 양조장들도 여전히 양조업을 계속하고 있었다. 평일이었기에 골목길은 한적했지만 눈여겨보면 각각의 양조장들은 나름대로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청주와 소주로 구분된 생산품들은 대부분 이름난 전통명주들이어서 전국으로 퍼져 판매된다. 각자 아담한 규모의 진열판매점도 열어놓고 있었다. 우리말 발음으로 군사(君思), 왕부(王俯), 금파(金波) 등의 고유 브랜드들이 생산되고 있었다.

일본의 청주는 우리나라의 전통 청주를 배워가서 발전시킨 것인데, 이제는 마치 자신들의 고유의 술인 것처럼 ‘사케’ 내지 ‘일본주(日本酒)’라고 부르고 있다. 일본 소주(焼酎)는 우리가 현재 주로 마시는 희석식 소주와 달리 쌀과 보리, 고구마 등을 주원료로 하고 누룩곰팡이로 발효시킨 다음 증류시키는 전통주인데, 알코올도수를 최소한 25도 이상 유지하고 있다. 일본인들은 독주를 잘 마시지 못하므로 주로 물을 타서 마시거나 양주처럼 얼음을 넣어 마신다.

유아사정(湯&#27973;町)의 양조장 카도쵸(角長)

히젠하마주쿠가 양조장으로 유명한 이유는 좋은 물과 전통 있는 누룩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와카야마현(歌山県) 아리타군(有田郡) 유아사정(湯浅町)의 양조정 보존지구도 마찬가지인데, 히젠하마주쿠가 청주나 소주로 유명하다면, 유아사는 일본 간장의 발상지로 유명하다. 유아사는 간사이공항에서 내리면 오사카 반대편의 지역으로 오사카 여행의 기회에 시간을 할애해서 들러보면 좋다. 유아사의 유명한 양조장 카도쵸(角長)는 170년의 역사를 지켜온 간장의 맛의 비밀을 ‘백년이 넘는 목조 간장통과 양조장 곳간의 곳곳에 붙어서 살아 숨 쉬는 전통의 효모(蔵付き酵母)에 있다’고 자부한다. 카도쵸의 오래되고 장엄한 목조건물을 보고 있노라면 그 말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히젠하마주쿠에서 몇 군데의 직판장을 들렀다가 시음(試飮)삼아 마신 소주와 사케 몇 잔에 기분이 은근해졌다. 사람 없는 완행열차역에서 돌아갈 기차를 기다리며 플랫폼의 벤치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니 나른한 봄기운과 파릇한 나뭇잎들이 더없이 평화롭고 한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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