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누비기 Ⅱ-영춘 이복재 경기도 향토문화연구소 연구위원>

흐르는 냇물이나 내에 보(湺)를 막아 물을 논에 대어 벼농사를 짓던 시절에 가뭄이 들면 전지

이웃 간에 물싸움이 잦았다. 물을 자기 논에 먼저 대겠다는 아전인수(我田引水)를 위한 싸움이 물싸움이다. 먼저 댄 사람이 없는 틈을 타 남의 논으로 들어가는 물꼬를 틀어막고 자기 논에 댐으로써 이웃 남정네들 간에 욕지거리로부터 시작하여 육박전이나 삽과 괭이 등 농기구까지 들고 나와 싸웠다. 나중에는 여인들까지 가세했다. 물꼬를 자기 논으로 터놓고는 발가벗고 물꼬를 지켜 상대방의 접근을 막는 방법까지 썼던 것이다.

지하수를 두고 벌이는 현대화된 물싸움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관정을 파 지하수를 퍼 올려 농사용 등으로 쓰려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다툼이다. 쌀이 남아돌아 값이 하락하여 지어봤자 큰 소득이 없게 된 벼농사를 위한 옛날의 물싸움이 아니다. 논에 벼 대신 다른 작물을 재배하고 밭농사에 사용할 농업용수 확보를 위해 지하수를 개발하는 농가가 늘어나고 있다. 새로 뚫는 지하수 쪽으로 쏠려 기존에 있던 관정에 수량이 줄거나 아예 물줄기가 끊겨버리기 때문에 개발해 놓은 지하수 부근에 새로운 지하수 개발을 위한 굴착을 막는 것이다.

그간 논 가뭄에 대한 대책은 그런대로 마련되어 어지간한 가뭄은 견딜 수 있게 되었다. 새 댐과 저수지를 건설하고 기존의 저수지를 준설하여 물그릇을 키우거나 지하수를 개발하고 심지어는 수백㎞ 밖의 강물을 끌어다 쓰는 등 여러 대책을 시행했기 때문이다. 음용수 등 생활용수와 밭작물 재배에 필요한 농업용수, 나아가 공업용수 부족이 요즈음의 가뭄 피해다.

지구환경 변화의 영향 때문인지 우리나라의 기상양상도 예와 다르다. 2014년부터 봄 가뭄이 4년째 지속되고 있고, 올해는 더욱 심각한 상황이다. 올해 전국에 내린 강수량은 평균 186㎜에 불과해 평년의 절반가량으로 기상관측 이래 최저수준인데다가 때 이른 불볕더위까지 가세하고 장마까지 늦어져 빚어진 현상이다.

올해 양평의 강수량은 156.3㎜로 봄 가뭄이 심했던 2014년의 234.9㎜, 2015년의 259.6㎜, 지난해의 283.5㎜에 비해 100㎜안팎으로 적고, 평년의 401.2㎜에 비하면 39%에 불과하다(이 글에 인용한 강수량은 기상청자료로 올 강수량은 2017. 6.22 현재, 2014~2016년과 평년치는 6월말 기준 임). 양평도 사상최악의 가뭄상태인 것이다.

그러나 논에 비닐하우스를 짓고 소득이 높은 작물을 재배하는 농가와 콩, 팥, 옥수수 등 일반 밭농사를 짓는 농가는 가뭄피해를 일부 입고 있고 가뭄이 지속될 경우 피해가 커질 것으로 보인다. 농업용수 못지않게 생활용수 부족으로 고통 받고 있는 마을도 있다고 한다. 경치 좋은 계곡이나 고지대 등에 전원주택을 짓고 생활하는 가구에서 물 부족현상이 현실화하고 있는 것이다. 양평군은 이미 지난 5월29일 군청에서 가뭄 극복을 위한 대책회의를 여는 등 가뭄대책 추진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옛날 농경사회에서 수리시설이 부족하여 비에 의존하여 농사를 지을 수밖에 없던 시대에 나라의 임금이나 군현 등의 지방수령들이 기우제(祈雨祭)를 지냈다. 이는 전국적으로 보편적이며 연례적인 현상이었다. 나라에서 지내던 기우제 중에는 국행기우제(國行祈雨祭)의 12제차가 있어서 각 명산·대천·종묘·사직·북교의 용신들에게 무려 12회에 걸쳐 지내는 복잡한 절차까지 있었다고 한다. 민간에서까지 여러 가지 방법으로 기우제를 지냈다고 한다.

양평에서 기우제를 지냈다는 기록은 찾아볼 수 없는데 양근군읍지 등 조선시대에 발간된 여러 지리지에 양근에 기우제단이 있었다는 문헌상의 기록은 여럿 확인된다. 기우제단은 비단 양근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고 전국의 거의 모든 지방관청에도 있었다. 가뭄이 심각해져야 지내던 근년의 기우제와 달리 조선시대 이전에는 거의 연례적인 행사였기 때문에 기록으로 남기지 않은 것으로 여겨진다.

저수지의 저수율이 ‘0’인 곳이 많고 취수원마저 말라붙어 제한급수를 시행하거나 검토할 정도로 사상 최악의 가뭄을 맞아 기우제를 지내는 지자체가 늘고 있다는 소식이다. 특히 가뭄피해가 심각해지고 있는 충남 홍성과 예산, 전북 고창, 경남 합천 등지에서 기우제를 지냈다고 한다.

다행히도 양평은 다른 지역에 비해 피해가 심각하지는 않아 보인다. 산이 많으면서도 물의 고장이어서 풍수해 등 피해를 덜 받아 복 받은 땅임을 자랑하는 양평이다. 양평의 산하는 오늘도 푸르고 아름다워 가뭄에 시달리는 이웃이나 다른 지역주민들의 고통을 남의 일로 치부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가뭄피해를 받고 있는 지역민들과 이웃의 고통을 생각하며 기우의 마음과 함께 물을 아껴 쓰는 습관을 생활화해야겠다.

일부 지자체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기우제를 지낸 때문인지 며칠 전부터 전국의 곳곳에 국지성이긴 하나 소나기가 내리고 있다. 호우특보가 발효되는 지역이 있는가 하면 전혀 내리지 않은 지역도 있어 희비가 엇갈리고 있는 상황이다. 기상청의 예보에 따르면 앞으로도 며칠간은 이러한 기상상태가 이어질 것이라고 하고 장마전선도 곧 전국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하니 힘을 내어 조금 더 참고 견디며 물싸움도 그만두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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