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마을, 왜 만들어야 하는가> 성종규(서종면 주민자치위원회 위원장)

아름다운 마을을 찾아가는 여행 54

 

일본 중세시대의 말기인 1854년경 거대한 규모의 괴물 같은 증기선이 에도만(東京灣)에 나타났다. 목선만 알고 있던 사무라이들에게 미국의 철제함인 페리함대는 괴물이었다. 일본의 근대화와 개국정책은 메이지 공신들이 주도했다. 대표적인 개혁자인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는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제치고 일본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다. 1859년경부터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개항으로 근대화한 일본은 1900년까지도 쇄국하던 조선을 단 50년의 힘의 차이로 침략했다.

일본의 초기 개항 당시의 5대 항구가 북쪽으로부터 하코다테(函館), 니이가타(新潟), 요코하마(横浜), 고베(神戸), 나가사키(長崎)다. 이 항구들에 전통적 건조물군 보존지구로써 항정(港町)의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물론 개항 당시 사용하던 항구나 운하 등이 육상교통의 발달로 쇠락의 운명에 있었지만 보존제도가 시행되어 이제 아름다운 경관을 이루어 근대문화유산으로 남게 되었다.

홋카이도(北海道)의 하코다테는 초창기의 개항도시다. 홋카이도는 메이지유신 당시만 해도 정식으로 일본의 행정체계에 편입된 곳이 아니었다. 북해도는 일본 본토를 이룬 주요 민족인 대화족(大和族)과는 다른 아이누(アイヌ)족이라고 불리던 종족이 살던 곳이었다. 하코다테의 개항과 더불어 대내외적으로 근대화된 곳이다.

하코다테(函館)의 카네모리아카렌가 창고군(金森赤煉瓦倉庫群)

하코다테는 홋카이도의 남쪽 끝이다. 홋카이도 섬의 남쪽 끝 꼬리처럼 생긴 곳에 자리 잡았는데, 지도를 확대하면 꼬리에 또 작은 꼬리가 달린 듯한 지형으로 형성되어 있다. 따라서 하코다테 산에 올라서면 도심지역이 양편의 바다 사이로 길게 뻗어 나온 형상이라 야경이 특히 아름답다. 나폴리, 홍콩과 함께 세계 3대 야경이라 불린다.

하코다테의 경관지역은 크게 두 군데로 나뉜다. 하나는 하코다테산(函館山) 언덕배기를 두르는 사카미치(坂道)지역이다. 전에 말했던 자카(坂), 즉 언덕길이다. 니쥬켄자카(二十間坂)로부터 다이산자카(大三坂), 하치만자카(八幡坂), 히요이자카(日和坂), 모토이자카(基坂) 등이 이어진 언덕길을 걷고 있노라면 저 멀리 보이는 바다와 항구가 어우러져 경관의 로맨스에 빠지지 않을 수가 없다. 수많은 영화들이 촬영되었던 곳이다.

또 하나는 항구 연변의 카네모리아카렌가 창고군(金森赤煉瓦倉庫群)이다. 매립지에 지어진 붉은 벽돌의 해상운송 하역창고들인데 육상운수 발전으로 인하여 필요 없게 되었지만 철거하지 않고 근대문화유산으로 보존함으로써 하코다테 경관의 중심이 되었다. 거대한 규모의 붉은 벽돌 창고들로 인해 하코다테는 관록 있고 품격 있는 도시라는 느낌으로 압도한다. 현재는 여행객들을 맞는 쇼핑센터로 운영되지만 건물 안은 화려하더라도 건물 밖은 벽돌 건물의 역사적 풍미를 전혀 해치지 않도록 애쓰고 있었다.

오타루(小樽市) 운하

홋카이도 여행을 가면 들리지 않을 수 없는 항구도시가 또 하나 있다. 오타루(小樽市)다. 오타루는 운하로 유명하다. 1924년경 선박운송을 위해 건설된 폭 30m 길이 1㎞ 정도의 운하를 보존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육송운송의 발달로 필요 없어지자 매립하여 자동차교통을 위한 간선도로로 사용하자는 의견이 당연히 제기되었다. 그러나 보존의 목소리에 의해 역사를 지켜온 오타루 운하는 현재 훌륭한 여행지로 변모했다. 운하 주변에는 각종 문화시설과 카페, 공연장 등이 들어서고, 여행객들이 넘쳐 난다. 오타루는 특히 유리공예로도 유명해서 운하 근처의 사카이마치토오리(堺町通)에서는 수준 높은 수제 유리공예품을 즐길 수 있다.

저녁을 먹고 오타루 운하의 창고군을 걷다가 음악소리에 이끌려 맥주카페에 들어섰다. 천장 높이가 3층 건물처럼 높은 꽤 큰 창고를 라이브 공연 카페로 운영하는 곳이었다. 리듬기타, 멜로디 기타, 전자바이올린 이렇게 한 팀을 이루어 재즈를 연주하고 노래했다. 월요일이라 손님이 몇 좌석 되지 않아 연주자를 격려할 마음으로 진심으로 박수를 보냈다. 공연을 마치고 공연자들이 잠시 자신들의 자리에 초대했다. 한국에서 그것도 혼자 왔다니 신기해했다. 호감을 나누고 명함까지 나누었다. 한국 방문을 청했다. 기분 좋게 헤어졌다.

거나하게 취해 밖으로 나오니 어둑해진 운하의 가스등이 로맨틱하게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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