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누비기 Ⅱ-영춘 이복재 경기도향토문화연구소 연구위원>

용문산 최고봉인 가섭봉에서 시작되어 흑천의 용문면과 양평읍 경계점 부근에서 끝을 맺는 옛 양근과 지평을 가르던 경계선이던 한강백운단맥, 지금은 두 고을을 통합한 화합의 산줄기가 되었다. 한강백운단맥의 산줄기에 두 번째로 들어 올린 산은 함왕봉이다. 큰 왕국 건설의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만 양근의 소왕국 함왕국이 쌓은 함왕성이 무너져 널브러진 성돌을 밟고 백운봉 방향으로 나가다 보면 큰 암봉이 앞을 막아선다.

함왕봉과 백운봉 사이에 끼어있으면서 함왕봉에서는 채 1㎞도 되지 않는 가까운 거리에 함왕성의 최남단이 된 이 봉우리의 높이는 해발 868m로 아마도 함왕국의 초병들이 밤낮으로 사주경계를 하였을 것이다. 전망이 뛰어나기 때문에 우선 ‘868전망봉’이라 부르기로 한다.

868전망봉과 함왕봉 사이의 안부에서 이 산을 오르기는 크게 힘들지 않다. 바위들 사이로 난 등로를 따라 거의 다 올라온 곳에서 뒤를 돌아보면 왼쪽으로부터 소구니산, 마유산, 어비산에 이어 용문산정상까지, 그리고 그 앞으로 지나온 장군봉과 함왕봉이 한 끈으로 이어져 올려다 보인다. 이 봉우리는 전체가 바위로 이루어져있고 정상부에는 전망데크까지 설치되어있다. 갈참나무로 인해 북쪽 전망이 가려지긴 하지만 백운봉 방향으로 몇 발자국만 내려가면 다시 트이기 때문에 별로 문제되지 않는다. 앞쪽에는 지금 서있는 위치보다 100m쯤 높은 백운봉의 커다란 산체가 앞을 가려 개군면 방향의 일부 전망이 막힐 뿐 왼쪽으로 가까이로는 용문면 연수리로 멀리로는 홍천, 횡성, 원주방향의 산줄기와 마을들, 그리고 추읍산의 모습까지 파노라마로 이어져 한눈에 들어온다. 오른쪽으로는 은빛으로 빛나며 유유히 흘러내리는 남한강줄기와 서쪽 산줄기인 양자산 등이 내다보인다.

이 암봉은 한강백운단맥상의 산줄기로 정상부 좌우의 폭은 사람이 겨우 다닐 정도로 좁지만 긴 편이다. 또한 좌우가 급경사의 낭떠러지로 이루어졌고 전망데크는 조망이 가장 좋은 곳에 설치되어 있어 편히 쉬면서 조망을 즐길 수 있다. 이 암봉에는 정상부를 비롯해서 곳곳에 소나무가 바위틈에 뿌리를 내리고 용트림을 하면서 사철 푸름으로 기암과 어울려 사방 어느 곳에서 보아도 멋져 금강산 봉우리하나를 옮겨다 놓은 것 같다.

이 멋진 봉우리에도 여우봉이라는 이름이 있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이름을 듣자마자 크고 웅장한 산줄기 가운데 끼어 작으면서도 아주 귀엽고 예쁘며 멋지기 때문에 붙인 이름임을 알아차렸다. 이름도 깜찍한 여우봉은 단애와 소나무들이 만들어 내는 경치와 전망 등 어느 면에서 보나 깊고 웅장한 용문산 줄기 속에 감추어진 한 점 보물임에 틀림없다. 푸른 하늘, 맑은 공기, 시원한 바람, 늘 푸르고 싱그러운 숲, 속살이 드러난 바위 봉, 능선길에 구절초가 드문드문 피어난 가을의 모습이 특히 아름답다.

급한 내리막길로 바뀌는 여우봉 끝에 서서 앞을 떡 버티고 막아 장쾌하게 우뚝 솟은 백운봉은 양평읍내 이북에서 보듯 뾰족한 모습은 아니지만 언제나 웅장하다. 여우봉을 내려와 백운봉을 향하여 급한 비탈길을 내려오면 새 이정표와 늙은 이정표가 약간의 거리를 두고 서있는 깊은 안부에 닿는다.

구름재다. 양근과 지평이 통합되기 전 두 고을을 넘나들던 고개 중의 하나다. 용문면 연수리 연안막에서 양근 쪽으로, 양평읍내에서 새수골을 거쳐 백운봉을 넘거나 옥천면 용천리 사나사에서 지평 쪽으로 넘나들던 고개였던 것이다.

이 고개를 넘나들던 선인들의 애환과 고단한 삶의 모습들도 떠오르지만 무엇보다 나라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사생취의(捨生取義)한 양평의병들을 떠올리니 숙연해 진다. 구한말인 1895년에 을미사변과 변복령·단발령을 시행하는 등 일제의 침략이 노골화함에 따라 국수보복(國讐報復)의 기치아래 전기의병이 일어나면서 의병전쟁은 시작되었다. 이후 고종황제의 강제 퇴위와 군대 해산으로 1907년에 국권회복을 기치로 후기의병(후기의병은 정미년 일어났음으로 ‘정미의병’이라고도 한다)이 일어났다. 특히, 양근의 후기의병장 최대현·김춘수·이연년·최대평 등은 용문산을 근거지로 양근·지평관아 등 관공서와 일본인상점 등을 습격하였고, 인근지역으로 활동영역을 넓혀 일본군을 유격전으로 괴롭히며 전공을 세웠다. 용문산의 품안에 있는 옛 지평 땅의 용문사·상원사와 양근 땅의 사나사를 의병의 소굴이라며 일본군이 불태우는 만행을 저지르기까지 했다. 이 구름재가 후기의병들이 양근과 지평을 넘나들며 일본군과 싸우던 고개였던 것이다.

구름재, 백운봉을 벗 삼아 노닐던 구름이 넘어 다니던 고개라서 이런 예쁜 이름을 붙였으리라. 구름재에서 백운봉을 오르는 두 구간은 나무기둥과 밧줄이 설치되어 있다. 이 밧줄구간을 오르면 ‘백운봉0.7㎞,운필암1.7㎞,연수리3.4㎞’라 표시된 새 이정표가 서있는 연수리 갈림길에 다다른다. 첫 번째 계단을 오르면서 뒤쪽으로 용문산 쪽 조망이 터지고 백운봉정상도 지척에 올려다 보인다. 다시 정상을 향해 이어지는 계단의 마지막 발판을 딛고 올라서면 해발 941m인 한국의 마터호른이라는 별명을 가진 미봉 백운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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