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마을, 왜 만들어야 하는가> 성종규 서종면 주민자치위원회 위원장

아름다운 마을을 찾아가는 여행 53

 

전통적 건조물군 보존지구 중 사가정(社家町, 샤케마치) 또는 사내정(寺内町, 지나이마치)이란 유명한 신사(神社)나 절에서 직분을 맡거나 일을 도우는 사람들이 사는 절 아래의 마을을 말한다.

교토 중심부 약간 위쪽에 카모와케이카즈치 신사(賀茂別雷神社) 또는 통칭 카미카모 신사(上賀茂社)라고 부르는 유명한 신사가 있다. 일본에서 최고 오래된 신사 중 하나다. 전설적인 초대 천황 진무천황(神武天皇) 때부터 세워졌다고들 한다. 신사를 둘러싼 일대가 신사에 봉직하거나 신사를 위해 농사를 짓고 일을 돕는 사람들의 주거지 영역이었는데, 카미가모(上賀茂)지역이라 부르며 약 2.7ha의 넓이가 전통적 건조물군 보존지구로 지정되어 있다.

카미가모지역은 오래된 목조건물들이 나열된 거리도 예쁘지만 더욱 아름답고 독특한 것은 마을 사이를 흐르는 개천이다. 카미가모 신사에는 신사 내부의 신전들을 돌아돌아 내려오는 묘진가와(明神川)라 부르는 아름다운 개천이 있는데, 그 개천이 마을까지 내려와서 마을길을 따라 흘러 결국 교토 중심부의 풍광을 이루는 카모가와(鴨川)로 흘러든다. 신사의 유래에는 신사 뒤편의 카미가모산에 신이 내려왔다는 전설이 있는데, 묘진가와는 그 뒷산으로부터 발현된 성스러운 개천이다. 성스러운 개천의 물이 신전을 굽이굽이 돌아 마을에까지 이른 것이다. 마을의 사람들은 그 성스러운 물길의 은혜를 휘감고 산다.

교토 전통적 건조물군 보존지구 카미가모(上賀茂) 지역

흑갈색 목조건물들의 고즈넉한 행렬, 수량이 풍부한 묘진가와의 물길, 물길 위에 드문드문 놓인 오래된 돌다리들, 그리고 고목의 늘어진 푸른 잎사귀. 그 모든 것이 어우러져 이루는 마을 풍경은 정말 최고의 전통 마을의 풍치를 더없이 느끼게 한다. 개천가에 앉아 물끄러미 흐르는 물을 보고 있자니 묘진가와의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땅을 타고 내려온 것이 아니라 고대로부터 현대로 시간을 따라 흘러 내려온 느낌에 빠져들었다.

물을 따라 걸으며 사색에 빠지는 길은 카미가모지역뿐만이 아니다. 교토의 세계문화유산 중에서도 가장 잘 알려진 곳은 긴카쿠지(銀閣寺)인데, 일본 불교 임제종의 본산인 난젠지(南禅寺)로부터 긴카쿠지에 이르는 길에 그 유명한 철학의 길(哲学の道)이 있다.

철학의 길은 원래 교토 동북부에 있는 일본 최대의 호수인 비와코(琵琶湖)로부터 교토로 이어진 용수로(用水路) 주변의 좁은 관리도로였다. 폭이 약 3미터 정도의 약 2㎞의 길인데, 용수 관리용 도로였기 때문에 본래는 잔디와 이끼만이 살던 길이었지만, 주변에 집들이 늘어나고 호젓한 분위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걷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인 산책길로 자리 잡았다.

교토 철학의 길(哲&#23398;の道)

메이지시대부터는 주로 문인들이 많이 산책하기 시작하면서 ‘문인의 길’, ‘산책의 길’, ‘사색의 길’등으로 불리다가, 교토대학의 대철학자인 니시다 기타로(西田幾多郎)나 타나베 하지메 (田辺元) 등이 주로 산책하면서 ‘철학의 오솔길’로 불리기도 했다. 결국 1972년경 주변 지역의 주민들이 본격적인 보존운동을 펼치면서 ‘철학의 길’로 명명하기로 했고, 현재에 이르고 있다.

니시다 키타로는 일본의 세계적인 불교철학자인 스즈키 다이세츠(鈴木大拙) 비슷한 연배이며 맥이 닿는 철학 사조다. 둘 다 불교철학을 기본으로 즉비의 논리(即非の論理)를 펼쳤는데, 불교적 무(無)의 사상 즉 공즉시색(空卽是色) 색즉시공(色卽是空)의 사상을 뿌리로 한다.

철학의 길은 특별히 볼만한 것은 없다. 없기에 철학의 길이다.

다만 볼 수 있는 것은 전혀 인위적으로 식재하지 않고 자연히 돋아 자라난 벚나무를 비롯한 나무들의 계절에 따른 변화뿐이다. 봄의 눈부신 벚꽃과 여름의 푸르른 잎, 그리고 가을날의 단풍과 겨울이면 석축과 빈가지 사이로 쌓이는 눈송이뿐이다. 그리고 계절이 지나면 수명을 다해 떨어진 꽃잎과 낙엽과 눈송이를 싣고 말없이 흘러 내려가는 물길뿐이다.

두 주머니에 깊게 손을 넣고 느릿느릿 철학의 길을 걷는 동안에도 오로지 느낄 수 있는 것은 물길을 따라 흘러가는 세월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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