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마을, 왜 만들어야 하는가> 성종규 서종면 주민자치위원회 위원장

아름다운 마을을 찾아가는 여행 52

 

교토는 누가 뭐래도 일본 최고의 아름다운 도시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1603년 에도 막부를 개설하면서 황궁의 간섭을 배제하기 위해 수도를 현재 동경인 에도로 옮겼다. 그 이후로 교토는 더 이상의 발전을 멈췄지만 그 때까지의 번영을 반영하듯 현재 17개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을 가지고 있다. 경주의 불국사와 석굴암, 양동마을 정도인 것과 비교하면 그 규모가 크다. 킨가쿠지(金閣寺), 긴가쿠지(銀閣寺)를 비롯하여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이 감탄하였다는 료안지(龍安寺) 등 교토의 세계문화유산을 얼핏이라도 둘러보려면 최소한 일주일은 머물러야 한다.

그러나 이번에 우리가 가보고자 하는 곳은 이미 말했듯이 고궁이나 사적지 등 세계문화유산이 아니라 오래된 아름다운 건물들로 이루어진 일반 거리다. 교토는 문화유산뿐만 아니라 도시 전체가 아름다워서 일본 스스로 전통적 건조물군 보존지구로 정한 곳들이 많다. 그 길들을 걷노라면 오히려 관광지인 고궁이나 절보다 훨씬 독특한 재미가 있다.

전통적 건조물군 보존지구 중 문전정(門前町, 몬젠마치)은 절이나 신사의 참배객들을 위해 음식이나 물건을 파는 상인들의 점포와 주거지로 형성된 마을거리다. 우리의 사하촌(寺下村) 개념과 비슷하다.

산넨자카(産寧坂, 三年坂) 거리

일본의 아름다운 거리의 이름에는 ‘자카(ざか)’라는 발음이 뒤에 따라붙는 경우가 많은데, 자카란 언덕(坂)을 일컫는다. 언덕은 오르기 힘들지만 지대가 높아 전망이 좋다. 우리도 달동네가 오히려 평지보다 경관과 풍치는 낫지 않은가. 언덕배기 마을로 올라가는 경사진 길과 계단 등을 석재로 잘 다듬어서 멀리 보이는 바다 또는 도심의 불빛과 어울리는 빼어난 경관을 만드는 방식이다. 나중에 보겠지만 가장 이름난 자카 중 하나가 영화 러브레터에서 히로코가 눈 쌓인 거리를 자전거를 타고 내려가던 하코다테의 하치만자카(八幡坂)이다.

교토에서 문전정으로 유명한 거리가 산네이자카(産寧坂)이다. 산넨자카(三年坂)라고도 부른다. 오래되고 거대한 규모의 절로 유명한 키요미즈데라(清水寺) 아래의 언덕길이다. 약 8㏊ 면적이 전통적 건조물군 보존지구로 지정되어 있는데, 키요미즈데라를 구경하고 내려오는 산넨자카는 아름답고도 재미있다. 100년 이상씩 된 흑갈색의 목조건물들이 비좁은 언덕길 사이로 삐뚤빼뚤 자리 잡은 광경은 높은 곳에서 바라보면 한없는 미로의 장난감처럼 예쁘다. 때로는 돌판이 깔린 오르막길을, 때로는 석단으로 만들어진 계단길을 걷노라면 길 양쪽으로는 오래된 건물들이 모두 제각각 공예품을 판다. 사이사이에는 찻집이나 군것질 거리를 파는 집도 있어서 올라가는 길도 내려오는 길도 힘들지 않다. 점포들마다 장식한 정성도 대단하다.

산넨자카 찻집 앞의 아름다운 장식

산네이자카라는 명칭의 기원도 재밌다. 전국시대를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정부인인 고다이인(高台院)은 젊을 때 네네(ねね)라고만 불렸다. 히데요시가 전국을 통일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히데요시를 계승할 후사가 없자 키요미즈데라에 오가며 출산을 기원했다는 것이다. 그 이후로 일반인들도 출산을 기원할 때 이 길을 오른다고 해서 산(産)자와 녕(寧)자를 썼는데, 나중에 발음에 따라 산넨자카라고 변했다는 설이 있다.

산넨자카의 끝에는 히데요시 사망 이후 네네가 은거하여 살던 고다이지(高台寺)가 있다. 고다이지는 세계문화유산이 아니다. 그러나 교토를 여행하면 고다이지는 반드시 볼 것을 권한다. 거대한 규모의 절과 신사들 사이에 소박하고 청렴하게 자리 잡은 고다이지에서 네네의 파란만장한 일생에 젖어보는 맛은 또 다르기 때문이다.

산넨자카 아래에는 니넨자카(二年坂)라는 길이 이어진다. 산넨자카의 초입이기 때문에 이름이 붙여졌다는 말도 있고, 한편으로는 평지 마을로부터 키요미즈테라까지 오르는 힘겨운 언덕길을 격려하기 위해 “여기서 멈추면 2년 안에 죽는다”라는 풍문이 만들어져 이름 붙여졌다는 말도 있다. 재밌다.

교토를 여행하는 사람들은 막상 세계문화유산 중 하나인 키요미즈테라를 오히려 산넨자카와 니넨자카를 오르는 재미로 오른다. 언덕길을 초라한 동네로 버려두지 않고 오히려 그 전통과 특성을 살려 아름답게 만들어낸 두 개의 자카거리를 어두워 가로등이 밝혀질 때까지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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