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부가 만난 사람들>

서종면 정배2리 어린이 생태놀이터 개장식에 온 한 어린이가 환한 표정으로 줄을 타고 내려오고 있다.

정배리에 어린이 생태놀이터 개장

 

“동구 밖 과수원길 아카시아 꽃이 활짝 폈네~ 하얀 꽃 이파리 눈송이처럼…”

동네 꼬마들로 구성된 어린이 합창단이 신나는 놀이기구에 올라 제비 같은 입을 열어 저마다 고운소리를 낸다. 합창단은 청중들의 박수와 환호에 금방 서너 곡을 소화해냈다. 지휘자도 반주자도 모두 엄마들이다. 핸드폰으로 아이들의 모습을 찍는 사람이나 구경나온 동네어른도 마냥 웃음꽃이 피어난다.

서종면 정배2리는 마을을 가로지르는 하천을 따라 조팝꽃, 복사꽃, 팥배꽃, 아카시아 등 늘 꽃이 피고 진다. ‘진살개울’은 개울물이 돌아나가서 작은 삼각주가 형성돼 옛날부터 빨래터와 부녀자의 쉼터로 사랑받던 장소다. 이곳 한 모퉁이에 지난 9일 100여명의 주민들이 모인 가운데 어린이를 위한 ‘생태놀이터’ 개장식이 열렸다. 감사패 전달과 경과보고, 축사가 이어진 개장식은 사회를 보는 마을 총무의 입담에 행사 내내 폭소가 터지고, 개구쟁이 꼬맹이는 행사장을 가로세로 뛰노느라 바쁘다.

마을의 주변 자연환경과 어우러진 놀이공간은 어린이의 감성과 상상력을 자극한다.

정배리에 생태놀이터를 만들기 위한 동기는 지난해 지역만들기 사업에서 ‘뿌리마을’로 지정되면서 시작됐다. 어르신 스마트폰 교육과 공연장비 구입까지 다양한 의견들이 나왔지만 쉽게 결론을 내지 못했다. 정배리도 여느 마을과 다름없이 주로 어른 중심의 편의시설이나 영농보조 설비는 많이 갖춰져 있지만 어린이를 위한 시설은 부족하다. 아이들이 맘껏 뛰어놀 공간이 필요하다는데 공감대가 형성됐지만 구체적인 방법을 찾지는 못했다.

서종면 정배2리 어린이 생태놀이터는 마치 ‘행복공동체’는 이런 것이라고 알리듯 모든 과정이 투명하고 주민들의 자발적 참여로 탄생한 결과물이다. 주민들은 머리를 맞댄 채 회의를 거듭했고 설계도면 작성과 시공까지 직접 해냈다.

지난해 여름 계곡에서 놀던 아이가 크게 다치면서 안전한 물놀이 터를 만들기 위한 논의가 급물살을 탔다. 진살개울을 정비해 여름에 물놀이장, 겨울철엔 썰매장으로 쓰고, 개울 옆 하천부지에 놀이시설을 갖추기로 논의를 모았다. 마을 개발위원 중심의 논의는 전입해온 학부모들로 확산됐고, 아빠들은 팔을 걷어붙이 나서 설계부터 시공까지 도맡았다. 엄마들은 그림을 그리고 페인트칠을 했다.

박우갑 정배2리 이장은 “마을에서 같이 쓰는 공동시설도 예전에 누가 얼마내고 누가 벽돌을 날라지었다는 말씀을 어르신들은 별 뜻 없이 하시지만 새로 들어온 분들에게 보이지 않는 부채의식이 들었을 것”이라며 “젊은 아빠들이 나서서 만든 놀이터를 이 집 손자 저 집 아들 할 것 없이 사용하게 되면 새로 이사 온 주민들도 마을의 주인으로 자리 잡고 대접받는 계기가 마련됐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예전 멱감던 곳에서 젊은 엄마와 아이들이 뛰노니∼”

아빠는 설계부터 시공까지 도맡고,
엄마는 예쁜 꽃그림에 페인트 쓱싹
의견수렴→결정→자발적 참여→만족
“행복공동체 지역만들기는 이런 것” 

 

행사장을 찾은 이철례(85) 할머니는 “이 진살개울이 옛날엔 노랑저고리 분홍치마 입던 새댁들 놀이터였다”고 했다. 이 할머니는 “여기가 참 넓고 물이 맑아서 멱감고 빨래하고 김장배추도 씻던 곳”이라며 “여기 올 땐 누구는 고추장 퍼오고 누구는 오이, 고추 따오고 술 빚는 솜씨 좋은 집 며느리는 막걸리 떠오고, 빨래해서 바위에 쭈욱 널어놓고 가재랑 고기 잡아 한잔 마시며 새댁들이 시어머니 흉도 보던 곳인데, 젊은 엄마들과 애들 노는 것을 보니 60년 전으로 돌아온 것 같아 감회가 새롭다”고 말했다. 

타이어 그네를 밀어주며 차례를 기다리던 영광이는 “물놀이를 하고 싶은데 여름이 왜 빨리 안 오는지 모르겠다”며 아쉬워했다. 이날 개장한 어린이 생태놀이터는 주변에 조경시설을 설치하고 그늘막 쉼터를 추가로 만들어 휴식공간을 점차 늘릴 계획이다.

박 이장은 “이제 시작일 뿐”이라며 “놀이터에 보내는 부모는 물론 아이들의 의견을 충분히 듣고 필요한 놀이시설과 안전 설비를 계속 보강할 생각”이라며 “여름이 오기 전에 우선 아이들과 함께 EM(유용미생물) 흙공을 만들어 하천에 던져 환경교육은 물론 안전하고 깨끗한 물놀이장을 열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양평군 지역만들기 사업비의 쓰임새를 놓고 주민들이 갈등한 사례가 적지 않다. 대개 활용도가 떨어지는 시설에 과도한 투자를 하거나 주민의견을 조율하지 못하고 시간에 쫓겨 허투루 쓰는 경우, 운영진의 독단적 결정이나 투명하지 않은 회계처리로 불신을 키운 마을도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다.

정배2리의 행복공동체 지역만들기 사업은 현재 ‘기둥마을’ 단계다. 올해 사업비 2000만원을 지원 받았다. 어린이 생태놀이터 조성 과정에서 나타난 의견수렴과 결정, 자발적 참여형태나 주민만족도 등은 마을 공동체를 가꾸는 새로운 대안이 될 가능성이 엿보였다. 

배달부=조병걸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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