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마을, 왜 만들어야 하는가> 성종규 서종면 주민자치위원회 위원장

아름다운 마을을 찾아가는 여행 50

 

100년 동안의 전국시대를 경험한 에도 막부는 지방 영주의 반란 음모를 사전에 방지하고 막부의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산킨코타이제도(参勤交代制度)다. 지방 영주를 의무적으로 1년에 1달은 에도에 와서 생활하게 하고, 각 영주의 부인과 아들 등을 에도에 살게 했다. 일종의 볼모제도였다.

산킨제도는 일본의 교통과 교역 산업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동에만 한 달 내외가 걸리는데다가 이동행렬을 따르는 군속은 하인이나 근위대까지 포함하여 수백 명이 넘는 것이 예사였다. 오죽하면 에도 막부가 망한 이유 중 하나였다고까지 한다. 막대한 비용과 시간을 소모했기 때문이다.

산킨제도는 필연적으로 숙박업을 발전시켰다. 그것도 일반 서민이나 상인을 상대로 한 작은 여관뿐만 아니라 대규모 고급 여관도 생겨났다. 그러한 여관들을 혼진(本陣)이라 부른다. 본래 혼진이란 전장(戰場)에서 대장이 머무는 본영(本營)을 말하지만 에도시대 이래 영주가 이동할 때 영주가 그 관리, 부녀, 하인, 군속 등과 머무르던 중심 숙소를 말한다. 아무리 크더라도 한 채의 여관에 모두 머무르기 힘든 경우 직접 수발을 드는 관리 이외의 군속이 별도로 머무는 별채 여관인 와키혼진(脇本陣), 병졸들이 묵는 하마혼진(浜本陣)을 별도로 둔다.

오카야마현(岡山&#30476;) 야카게마을(矢掛町)의 혼진(本陣) 이시이가옥(矢掛本陣石井家)

쯔마고주쿠에도 일반 여관들 사이에 혼진이 한 채 있었지만 정말로 큰 규모의 혼진은 일반 여관촌과는 별도로 형성된다. 오카야마현(岡山県) 오다군(小田郡) 야카게마을(矢掛町)은 유명하지 않은 면 단위의 작은 마을이다. 그런데 야카게가 위치한 곳이 쥬고쿠(中国) 지방의 간선도로였던 산양도(山陽道) 중간이라 야카게에 혼진이 건축되었던 것이다.

야카게의 혼진은 이시이가옥(矢掛本陣石井家)이라 불린다. 3300㎡(약 1000평)가 넘는 대지에 약 15개동 정도의 건물로 구성되어 있다. 영주가 머무르던 안방부터 영주의 가족이나 직속관리가 쓰는 방, 응접공간 등으로 구성되고, 부엌과 창고가 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술과 장을 담그는 양조시설(醸造施設)도 딸렸다. 여행길에 숙소로 사용되는 여관이 하나의 거대한 저택 같았다. 가옥의 한편에는 일본의 유명한 중세 드라마를 촬영했던 곳이라는 자랑이 붙어 있었다.

야카게향토미술관(矢掛&#37111;土美術館) 수루(水樓)

야카게는 제대로 된 혼진 마을답게 혼진 근처에 와키혼진과 하마혼진이 별도로 있었다. 와키혼진 또한 그 규모가 작지 않았다. 학생들의 수학여행도 아니고 중세시대에 군율이 갖춰진 500명 내외의 대규모 여행단이 움직였다는 상상을 해보니 나름 재밌었다. 규모가 큰 여관이지만 아마도 대부분의 공간은 영주나 그 가족, 직속부하가 사용했을 것이고, 대부분의 하인이나 군졸들은 빼곡히 겹쳐 잠을 자거나 한뎃잠을 잤으리라.

수루 스케치

야카게는 작은 마을이지만 정겹고 문화적이었다. 야카게에서 우연히 만난 야카게향토미술관(矢掛郷土美術館)은 전통적 설계에 따른 건축으로 정말 정겹고 아름다웠다. 큰 강을 끼고 있는 지리여건상 수해(水害) 대비가 철저했는데, 약 16미터 높이의 수루(水樓)에 올라서면 야카게 읍내가 한 눈에 들어왔다. 전통방식으로 건축한 수루였는데, 이제는 수해방지의 역할보다는 아름다운 향토건축물로 빛났다. 자그마한 면 단위의 마을에 저토록 향토적이고 아름다운 미술관을 지었을까 절로 감탄이 나서 오랜만에 스케치북과 연필을 꺼내 들었다. 30분을 넘게 거리 한편에 앉아 스케치를 하고 있자니 동네 사람들이 얼핏얼핏 보고 지나갔다. 창피함보다는 수루에 대한 매료가 더 컸다.

야카게에서 만난 소박한 옛날의 아름다움은 그 이후의 여행길에서도 내내 마음을 흐뭇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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