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대통령 없나요?⑤-최동진 국토환경연구소 소장>

예년 대통령선거 때 같았다면 지금쯤 대통령 후보들이 열심히 지역을 돌아다니며 주민들을 만나고 지역의 현안을 해결해주겠다고 약속하면서 표를 호소하고 있었을 것이다. 탄핵과 함께 갑자기 닥친 장미대선은 후보들에게 선심성 공약이라도 남발하면서 지역을 다닐 시간조차 주지 않고 있다. 생뚱맞게 들릴지 모르지만 오히려 다행인지도 모르겠다.

선거 때마다 정치인들이 던진 급조된 사탕발림 공약들이 주민들을 행복하게 하기보다는 갈등을 유발하고, 주민들을 혼란스럽게 한 경우가 많았다. 주민들을 환경이야 훼손되든 말든 개발이익만 추구하는 이기주의자나 오염자 취급을 하다가, 또 어떤 때는 상수원보호지역을 친수공원을 만들고 암 덩어리 규제를 철폐하겠다며 보호구역까지 개발하고 훼손해도 될 것처럼 부추긴 것이 새로운 정부와 대통령들이었다.

최근 남양주시 조안면의 상수원보호구역에서 수십 년 동안 불법영업을 하던 음식점주들이 대거 구속되면서, 팔당유역에 또 다시 규제를 둘러싼 논란이 일고 있다. 수십 년 동안 배짱영업을 해온 업주들을 옹호할 수 없겠지만, 불법인 줄 알면서도 오랫동안 방조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일방적인 단속을 하는 식의 행정이 결코 잘했다고만 할 수 없다. 최근에는 이러한 여파로 상수원보호와 환경교육을 위해서 환경보전단체들이 진행 중이던 환경생태 체험학습까지 갑자기 금지하고 있다고 한다. 어이가 없는 일이다.

4대강 사업으로 전국적인 주목을 받았던 두물머리 지역의 유기농 농민들의 경우는 일관성 없는 정부정책의 대표적인 희생양들이다. 수질보전과 지역발전의 대표적인 모델이라면서, 정부에서 지원하고 장려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발암물질을 상수원에 내보내는 범죄자들로 몰아버렸다. 정부가 바뀔 때마다 일관성 없이 밀어붙이는 정책과 공약들로 지역이 발전하기보다는 주민들이 서로 반목하고 갈등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새로운 정부와 대통령은 일방적으로 던지는 공약을 안했으면 좋겠다. 수질보전과 지역발전이라는 균형 잡기 쉽지 않은 두 목표를 동시에 추구해야하는 지역에서 급조된 설익은 정책은 득보다 실이 많을 수 있다. 사탕발림 식의 정책을 던지면서 주민들과 지방정부에 군림하는 정부가 아니라 지역주민들과 소통하면서 지속가능한 양평의 미래를 같이 만들어 가는 섬기는 정부가 들어서면 좋겠다.

정부가 계획을 세우고 공약을 만들어내지 말고, 지방정부와 주민들에게 이를 맡기면 좋겠다. 그린벨트, 상수원보호구역, 특별대책지역, 군사보호구역, 자연권보전권역 등 이른바 많은 중첩규제들로 묶여있는 팔당유역에는 중앙정부의 수많은 계획들이 있지만, 주민의 삶과 지역발전에 관한 계획은 없다. 수질보전계획, 토지매수계획, 특별대책, 총량관리계획 등 많은 계획들은 모두 지역과 주민들의 활동을 제약하는 내용들뿐이다.

선진국들은 이와 다르다. 규제를 위한 계획도 있지만, 그보다는 주민들을 지원하고 지역발전을 도모하기 위한 계획에 중점을 맞추고 있다. 예를 들어, 일본의 비와호 유역의 경우 우리나라의 한강수계법과 같이 ‘비와호의 보전 및 재생에 관한 법률’이 있다. 한강수계법은 중앙정부의 규제와 계획과 사업이 주요한 내용이라면, 일본의 법률은 주민들의 활동을 지원하고 지역발전을 위한 여러 계획과 사업을 장려하는데 중점을 뒀다. 이 두 법의 가장 큰 차이다. “환경을 배려한 농업의 보급 및 비와호 환경과 조화를 이룬 산업의 진흥”, “생태관광의 추진”, “호상교통의 활성화”, “경관의 정비 및 보전” 등이 법률을 구성하는 주요 내용 들이다.

양평의 생태환경을 보전하고, 동시에 지역발전을 이루기 위해서 제일 먼저 필요한 것은 지속가능한 지역발전의 비전을 만드는 것이다. 체계적인 발전계획이 없으면 ‘난개발’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발전계획은 오염을 유발하는 대규모 개발계획이 아니라, 생태환경을 살리면서 주민의 삶을 향상시키기 위한 지속가능한 발전계획이어야 한다. 또 그 계획과 비전은 주민들 모르게 일방적으로 만들어 던지는 선심성 공약이 아니라 주민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계획이어야 한다. 한강수계법을 개정하여 ‘상수원 관리지역의 지속가능 발전계획’을 세우도록 해보면 좋을 것이다.

훌륭한 대통령은 말하는 대통령이 아니라 듣는 대통령이고, 훌륭한 정부는 군림하는 정부가 아니라 섬기는 정부다.

 

 

 

 

 

저작권자 © 양평시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