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식업 성공스토리> 능수엄마

최종회 슬픔이 밑천이다

 

재산이 모아지면 버릴 곳을 물색해야 했소. 그 돈을 어떻게 써얄지 여러분들과 의논할 작정이오. 여러분들은 비록 가난하지만 착하고, 인정 많고, 열심히 일한 사람들이오. 나는 여러분들을 믿었고 여러분들은 나를 믿었소. 이제 여러분들은 내 신(神)이 되었소. 나는 여러분들을 믿음으로써 허무를 극복할 수 있소. 춘천옥은 신을 만드는 곳이오.

 

“잘했어. 너무 잘했어.”
정말 신선한 충격이었다. 나는 즉석에서 마음을 밝혔다.
“지난번에 발표한 적이 있읍니다만, 앞으로 지점장은 순이익의 20프로를 성과급으로 준다고 했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현재 본점의 추가 매상에서 20프로를 역시 성과급으로 허마두 사장께 드리겠습니다. 여러분, 박수로 축하해주세요.”
“박수 감사합니다. 기러티만 당장은 받을 수 없습네다. 우리 춘천옥이 장기 계획으로 세운 네 곳의 지점이 모두 세워진 후에나 성과급을 받겠습네다.”
“좋습니다. 이 문제는 친구로서 우리 둘 만의 경우가 있으니 별도로 해결하겠고 지금은 언쟁을 피하겠습니다. 그리고 모든 운영에 대해 내가 철저히 협조는 하겠지만 어디까지나 여러분이 결정한 사항에 협조한다는 겁니다. 그러니 앞으로는 아무리 중대한 결정도 여러분끼리 의논해서 결정하도록 해요. 그동안 애써준 여러분들의 노고에 경의를 표합니다.”
말을 끝낸 나는 창밖으로 주차장을 내려다보았다. 가로등 불빛에 환히 드러난 주차장으로 아담한 승용차 한 대가 들어왔다. 이내 차가 파킹장에 멈추고 정장 차림의 우아한 사십대 여인이 내렸다.
고맙다. 네가 이처럼 멋진 여성이 되다니…
능수엄마의 변신을 보는 순간 옛날 추억이 되살아났다. 뺨을 때리면서까지 품위 있는 몸가짐과 언어를 가르쳐주던 그 열정의 순간들이 눈앞을 스쳤다. 내가 뺨을 때리면 능수엄마는 “열심히 하는데 와 때리능교?” 하고 대들었고, 그때마다 나는 “이래가지고 언제 다 배울 거야, 나 죽은 후에 배울래?” 하고 고함을 치곤했다.
옛 일을 회상하며 나는 속으로 너붓이 웃었다. 상쾌한 웃음이었다. 능수엄마에게 한 번도 보여주지 않던 웃음. 지금에야 그 웃음을 몰래 즐겨본다. 그 웃음을 즐기기 위해 나는 몇 번이나 그녀를 울려야 했던가.
그래, 너는 이제 능수엄마가 아니라 의젓한 경영인 정 사장이 돼야 한다. 너는 줄기차게 춘천옥을 키워왔고, 앞으로도 더 키워야 하고, 내가 죽은 후에도 빛내야 한다.
드디어 복도 쪽에서 발자국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가 점점 더 가까이 다가왔다. 나는 눈을 감은 채 그 소리를 느꼈다. 조바심이 났다. 문이 열렸다. 눈을 떴다.
아아, 사람이 저렇게 달라지다니!
내 입에서 저절로 탄성이 튀어나왔다. 외모부터가 달랐다. 날렵하면서도 고즈넉한 턱선, 어깨에 닿을 듯 말 듯 흘러내린 웨이브 진 머리칼, 끝자락에 후릴이 달린 연회색 원피스, 발걸음을 띄어놓을 때마다 야울거리는 율동미, 널찍한 호피무늬 벨트가 감겨진 선정적인 허리, 볼륨이 팽팽한 가슴과 입가에 번지는 감미로운 미소. 저 여자가 분명 능수엄마란 말인가!
그녀가 의자에 살포시 앉으며 내 시선을 잡았다. 나는 모처럼 그녀에게 다정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리고 서서히 자리에서 일어나 말문을 열었다. 그동안 참아왔던 말이다.
“오랜만에 여러분들의 얼굴을 보니 기쁘고 감회가 새롭습니다. 나는 이 시간을 기다려왔소. 그동안 함부로 꺼낼 수 없던 내 마음을 이제야 드러낼 수 있게 되었소. 아주 뜻깊은 밤이오. 여러분들은 한결같이 새롭게 변신해왔소. 그러니 여러분들이 경영할 춘천옥도 늘 새로운 업소로 발전할 거요. 춘천옥은 돈 벌기 위해서만 차린 업소가 아뇨. 나는 평생 모진 고생을 하며 살아왔지만 재산 축적에는 관심이 없었소. 그래서 재산이 모아지면 버릴 곳을 물색해야 했소. 그 돈을 어떻게 써얄지 여러분들과 의논할 참이오. 여러분들은 비록 가난하지만 착하고, 인정 많고, 열심히 일한 사람들이오. 나는 여러분들을 믿었고 여러분들은 나를 믿었소. 이제 여러분들은 내 신(神)이 되었소. 나는 여러분들을 믿음으로써 허무를 극복할 수 있소. 춘천옥은 신을 만드는 곳이오.” (끝)

 

- 연재를 마치면서 –

 

슬픔은 밑천이다.
음식을 존경하라.
요식업은 종합예술이다.

 

이 소설은 슬픔이 어떻게 성공의 도구로 활용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다음은 작중인물의 말이다.
“늬는 너무 착해. 너무 진실되구. 원래 생겨먹은 거이 기래. 늬는 눈물이 많은 놈이거든. 늬는 이 사회의 허점을 찌른 게야. 이 사회를 살아가기에 가장 부적절한 늬가 가장 적절하게 처신한 거디. 늬는 요즘 세상에 아무 쓸모없는 것들을 개디구 묘한 걸 만들어냈어. 일테면 착함, 진실, 연민, 의리 같은 구질구질한 퇴물을 한솥에 끓여서 묘한 걸 과낸거라메. 기거이 뭔디 아네? 바로 슬픔이었어. 슬픔이 너를 미치게한 거라메. 기러니께니 슬픔처럼 오묘한 게 없잖갔어? 슬픔은 못하는 게 없디. 슬픔은 무소불위야.”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었다. 테이블 4개로 시작한 지 겨우 4년 만에 테이블 100개가 넘고, 직원 한 명 없이 시작한 영세업소가 직원 40명이 넘는 대한민국의 명소로 성장한 그 기적 같은 일이 현실 같지가 않다.


그동안 연재에 성원을 보내주신 ‘양평시민의소리’ 독자 여러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저는 어느 대학교 강연에서 요식업에 성공한 사람은 무슨 분야든지 성공할 수 있다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만큼 요식업 성공이 힘들다는 말인데 여기에서 ‘힘들다’는 다양한 체험을 요구한다는 의미지요. 저는 요식업 경영자를 군 사단장에 비유하곤 합니다. 지휘관의 가장 탁월한 품격 중 하나를 꼽으라면 저는 주도면밀을 내세울 겁니다. 모든 예하부대를 파악하고 있으면서도 산속에 있는 말단부대의 창고나 화장실 구석구석까지 철저하게 살피되 상식적인 시선이 아닌 낯설게 볼 수 있는 긴장된 시선으로 관찰하라는 말이지요. 거기에서 안전과 발전(전투력 제고)의 싹이 틀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너무 관념적이라고 말씀하실지 몰라도 그것이 경영철학으로 육화되어야 요식업에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 제 체험적 노하우입니다.
예를 든다면 100개의 테이블 중에서 1개만 비어도 직원들을 긴장시키는데, 항상 손님이 줄서는 업소에서 왜 빈자리가 생겼냐는 것입니다. 100개의 테이블에서 겨우 1개가 비었을 뿐인데 너무 지나치다고 항변할지 모르지만, 줄을 서는 춘천옥의 경우에는 피크타임에 1자리가 비었다는 것은 경영에 어떤 하자가 생겼다는 증좌이지요. 요컨대 조심성을 강조했다는 말입니다.

소설가 잔아문학박물관장 김용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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