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부가 듣는 대선 양평민심④> 김성일 작가

‘창피하지만, 며칠째 아무것도 못 먹어서 남은 밥이랑 김치 있으면 저희 집 문 좀 두들겨 주세요.’ 이런 쪽지를 남기고 죽음을 맞이한 젊은 작가의 소식에 국민들은 경악했고 문화예술계 종사자들에 대한 처우개선을 요구하는 여론이 들끓었다. 이에 정부는 ‘예술인복지법’을 만들어 예술인의 직업적 지위와 권리를 법으로 보호하고, 예술인의 복지 및 창작활동을 국가차원에서 지원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번 정부는 지원을 미끼로 소위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예술인 길들이기 수단으로 활용하다가 결국 탄핵의 빌미가 되기도 했다.

지금도 언젠가 자신의 작품이 남들에게 인정받을 것이란 믿음으로 창작이라는 고통의 길을 묵묵히 걷는 많은 젊은 인재들이 부딪히는 현실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다. 이들은 ‘돈 되는 다른 일’을 하기엔 작품을 향한 사랑이 너무 뜨거워 척박하고 낡은 반문화사회를 넘어서기 위해 ‘투잡’과 ‘쓰리잡’을 해가며 예술인의 자존심을 지켜가고 있다. 많은 예술인이 거주하는 문화도시 양평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따라서 새 정부가 제시할 문화예술 정책에 관심이 커질 수밖에 없다.

“뭐가 팔려! 내 그림이 무섭대요. 내 보기엔 전혀 그렇지 않은데. 요즘엔 예쁘고 가벼운 그림을 좋아해요. 어렵고 복잡하고 중층적인 그림은 인기 없죠. 돈도 좋지만 하고 싶은 거 해야죠. 밥이야 굶겠수?” 작품 잘 팔리느냐는 의례적이고 통속적인 질문에 느릿느릿 꾹꾹 눌러 돌아온 대답엔 그의 신념과 신중함이 묻어난다. 오래된 공회당을 개조해 작품 활동하는 김성일(58) 작가. ‘만년청년작가’라는 수식어가 민망하리만치 오늘따라 돋보기안경이 두툼해 보인다.

“문화예술이 국가의 미래 성장 동력이다, 공동체의 지적수준이다, 심지어 국격이라고… 다 말뿐이에요. 정부가 알량한 돈 몇 푼으로 창의성을 굴종시키려는 태도를 보면 문화적의식이 얼마나 천박한지 알 수 있잖아요? 살아남은 게 용하지. 젊은 친구들은 말 할 것도 없고, 높은데 앉아서 블랙리스트 만들 시간 있으면 작가들 고충이 뭔지, 제도적으로 개선해야 할 대목들이 어딘지 꼼꼼히 드려다 봐야죠. 어이없죠. 블랙리스트에 끼지 못하면 작가 대접도 못 받는 거잖아요. 지원 정책도 그래요. 단편적지원에 머무를 일이 아니고 구조적 지원으로 바뀌어가야죠. 아픈 사람에게 매일 항생제 처방만 하면 안 되잖아요. 면역력, 체력을 길러주는 근본처방이 필요한 것처럼 창작지원은 물론, 이들이 설 무대도 마련해 주고 전시공간도 확보하고 이런 선순환구조에 관심을 키워가야 해요. 작품 만들어 쌓아놓는다고 해결이 되나요.”

담배를 피워 문 김씨는 다시 말을 이어간다. “예술인은 각자 국가경영자이고 기업인이에요. 시대정신을 읽어내고 이끌어가는 선구자 같은 존재라고 생각해요. 또 같은 사물과 사회현상을 보더라도 해석하는 능력이 달라요. 그게 창의력이거든요. 나름대로 창조적 경영자라고 할 수 있죠. 지금도 공적개발 영역에 작가들을 참여시키잖아요. 그런데 불행하게도 일부 학교나 인맥으로 얽혀진 사람들만 참여하는 게 현실이거든요. 똑같은 방식으로 국가나 기업을 운영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큰 틀에서 보면 안정적일지언정 창의적이지 않잖아요. 젊은 작가나 비주류는 접근 자체도 어려워요. 그들이 만든 카르텔을 못 뚫어요. 그러니 누구누구 수하로 들어가게 되는 거죠. 윗사람 눈치 봐야한다면 창의력이 발휘될 턱이 없는 거잖아요. 그러니 정부나 지방정부도 반드시 청년작가나 비주류 인사를 참여하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되요. 이걸 통해 얻어지는 결과물의 가치나 경쟁력은 어마어마하게 큰 겁니다.”

그의 목소리에 힘이 붙는다. “미술인의 한 사람으로서 다음 정부에 굳이 바란다면 지금도 기업이 미술품 구매하면 세재혜택을 주는데, 여기에 청년작가들의 작품을 일정비율 포함하도록 제도화해달라는 겁니다. 기업에 혜택도 늘려주고 그래서 기업도 살고 젊은 작가들도 살 수 있게 말이죠.”

‘꿈꾸니까 청년이다.’ 나도 청년작가의 꿈이 이뤄지는 꿈을 꿔본다.    

배달부=조병걸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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