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의 자연

봄철 추읍산 하행길은 개군면 내리․추읍리가 정답이다. 활짝 핀 산수유가 산행의 피로를 잊게 한다.

양평은 면적의 70%가 산악이다. 용문산, 청계산, 중미산, 소리산 등 유명한 산이 즐비하고 운동하기 좋은 뒷산 정도는 어느 동네나 있다. 대중교통을 이용해 한나절 산행을 즐기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전철역에 내려 산행을 시작할 수 있는 산은 주말, 평일 가리지 않고 등산객들로 북적인다. 연중 등산객이 붐비는 곳은 아니지만 봄철 꽃구경을 겸한 산행지로 추천할만한 산이 ‘추읍산’이다.

추읍산은 양평읍 동남쪽에 위치한 해발 583m의 아담한 산이다. 지형도상에는 주읍산으로 표기돼 있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추읍리가 주읍리로 바뀌면서 산 이름도 주읍산으로 바뀌었다. 등산로는 5개 코스로 삼성리~질마재~추읍산, 주읍리~절골~추읍산, 내동마을~추읍산, 능골~추읍산 등은 1시간30분, 원덕리~삼성리~추읍산은 2시간20분이 소요된다. 여름에는 용문면 삼성리 입구 신내개울에서 시작하는 코스를 많이 이용하는데, 신내천 일대는 여름철 피서지로 유명하다. 산수유가 피는 3월말~4월중순은 내리․주읍리~원덕역 코스가 인기다.

지난 4일, 산수유가 한창인 추읍산을 찾았다. 원덕역~추읍산~내리로 이어지는 4시간 코스다. 대중교통만을 이용한 반나절 산행을 목표로 10시30분 원덕역에 도착했다. 하산 후 내리 정보화센터 앞에서 2시30분 시내버스로 돌아오는 여정이다.

경의․중앙선 원덕역에서 출발해 추읍산을 오르려면 흑천을 따라 1㎞정도를 걸어야한다. 정상에 오르기도 전에 가슴이 탁 트인다.

원덕역을 나오니 오른쪽에 ‘추읍산 1.4㎞’라는 이정표가 서있다. 마을 안길을 따라 걸어가니 동네 슈퍼가 나온다. 생수를 사며 주인 할머니께 지난 주말 양평산수유한우축제 덕 좀 보셨냐고 이야기를 건네니 “산에 가는 사람은 늘 비슷해. 그래도 봄에 좀 낫지”하신다. 좀 더 걸으니 이내 흑천이 나온다.

흑천변으로 들어서기 위해서는 지난해 생긴 다리 아래쪽으로 진입해야하는데 인도가 따로 없어 차량을 피해가며 걸어야 한다. 차량통행이 많은 곳은 아니지만 사람에 대한 배려가 없는 도로행정이 아쉽다. 오른쪽으로 시선을 돌리니 교각 밑에 2년 전 취재했던 2억4000만년전 ‘반려암 노두’가 보인다. 중생대 초기인 트라이아스기에 관입한 암석으로, 학계에 보고된 암석으로는 남한에서 유일하다는데 아직도 보호시설 없이 방치돼있다. 아저씨 두 명이 한가로이 노두에 앉아 있다. 기사를 쓸 당시에 보호시설을 갖추고 안내판을 설치하면 관심을 끌만한 관광자원이 될 성 싶다고 주장했는데 귀 기울여 듣는 이가 없다.

청운면 신론리에서 발원해 개군면 앙덕리에서 남한강과 합류하는 흑천은 아직 봄을 맞이하지 못했다. 천변의 갈대는 지난 가을을 떠올리게 했지만 산 정상을 오르기도 전에 가슴을 탁 트이게 하는 통쾌함을 선물한다. 20여분을 걸어 다리를 건너니 등산안내도가 나온다. 왼쪽방향이 추읍산으로 오르는 길이다.

신내에서 오르는 추읍산은 오르막길의 연속이다. 만만한 마음으로 산행을 시작한 등산객들의 머리가 저절로 숙여진다.

천변을 따라 걷는 것도 잠시, 초입부터 바로 오르막길이다. 비가 한동안 안 온 탓에 길을 오를 때마다 흙먼지가 피어오른다. 빼곡한 소나무는 볕이 잘 들지 않게도 하거니와 전망을 가려 오르는 일에만 집중하게 만든다. 계속되는 오르막길에 심장이 펌프질을 해대고 숨이 턱에 차오를 때쯤 차츰 주위가 환해졌다. 듬성한 소나무 사이로 진달래꽃이 드물게 모습을 드러내는가 싶더니 비탈에 버티고 서서 이제 막 꽃망울을 피운 노란 산수유가 시선을 잡아끈다. 잠시 바람을 마주하기 위해 뒤를 돌아본다. 눈을 감고 숨을 한껏 들여 쉬니 꽃향기가 코를 자극하고 마른 나뭇잎은 사각사각 속삭인다. 고요하다.

정오가 지나도록 계속 오르막길이다. 추읍산은 산지가 험하고 맹금류가 자주 나타나 마을 사람들이 산신제를 반드시 올렸다는데, 낮지만 험한 산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앞서가던 등산객 무리에서도 뒤처지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역시 양평엔 쉬운 산이 없다니까”, “도 닦는다 생각하고 올라갑시다” 서로 격려하고 채근한다. 불과 800m라는 정상과의 거리가 좀체 좁혀지지 않는다. 590m지점에 다다랐을 때 내리등산로로 내려가는 이정표가 나왔다. 정상을 포기하고 내리로 방향을 선회하고 싶은 유혹이 잠깐 들었다. 마음을 다잡고 오르길 계속하니 170m 지점에서야 평지가 나온다.

헬기이착륙장을 지나니 ‘추읍산’이라고 쓰인 표지석이 나온다. 예전에는 정상에 오르면 주변 7개 읍이 내려다보인다고 ‘칠읍산’이라 했다는데 아쉽게도 미세먼지로 시야가 흐리다. 지형지물로 가늠해보니 표지석 뒤쪽이 용문면, 앞쪽이 개군면, 왼쪽이 양평읍인 것 같다. 7년째 산 밑 동네에 살고 있지만 추읍산 정상에 오르기는 이날이 두 번째라는 아주머니는 멀리까지 보기는 틀렸다며 아쉬운 발길을 돌렸다. 등산객들은 정상 인근의 벤치와 평상에서 점심과 간식을 먹으며 휴식을 취했다. 오르막길이 많은데 반해 휴게공간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주말에는 더욱 그럴 것 같다.

맑은 날에는 정상에 서면 7개 읍이 다 보인다는데 미세먼지가 심각한 요즘은 그런 행운을 누리기가 쉽지 않다.

12시40분경 산을 내려오기 시작했다. 용문까지 2.43㎞, 내리등산로까지 1.97㎞다. 산수유마을 구경을 위해 내리로 방향을 잡았다. 좀 더 아래로 내려가면 내리행사장으로 내려가는 길도 있지만 등산로 쪽으로 길을 잡았다. 오르막길이 많으면 내려갈 때도 미끄러워 애를 먹는다. 흙먼지 나는 비탈길을 밧줄에 의지해 내려오자니 등산스틱 챙겨온 사람들이 부럽다.

내리로 내려오는 골짜기마다 바람의 숲, 만남의 숲, 아카시아숲, 명상의 숲, 삼림욕숲, 진달래동산, 책읽는 숲, 돌탑동산 등 테마공간이 조성돼있다. 등산로 쪽으로 내려오며 돌탑동산과 삼림욕숲 두 곳을 만났다. 이름만큼 거창한 것은 아니었지만 삼림욕숲에 설치된 나무벤치에 누워 있으면 피로와 스트레스를 잠시 잊고 자연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마을 근처에 다다르니 산신제를 지냈던 전각을 감싸 안은 노란 산수유가 유난하다. 등산객들은 산수유가 군락을 이룬 곳에서 단체사진과 셀카 찍기에 바쁘다. 벚꽃군락지처럼 화려하진 않지만 오히려 인위적이지 않아 자연스럽다. 어느 집 마당에나 산수유 한두 그루 정도는 터를 잡고 있다. 정원이랄 것도 없지만 마당에 꽃나무 몇 그루, 꽃밭에 나름의 정성을 기울였던 젊은 시절의 어머니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화성․수원의 한 화가모임에서 야외스케치를 나와 한창 무르익은 산수유를 화폭에 담아내는 모습을 구경하다보니 2시30분이다. 양평으로 실어다줄 시내버스가 정류장으로 들어왔다.

저작권자 © 양평시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