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우 양평정신건강의학과의원

올해는 정신과 진료에 급격한 변화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문제들이 취지 자체보다도 절차적․과정적 문제로 환자나 보호자분들께 불편함을 끼칠 수 있을 것 같아 안내를 드리고자 합니다.

우리나라는 사회․문화적으로 또는 정책적으로 정신장애인들을 우리 사회에서 눈에 띄지 않게 사라지게 하는 정책을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정신과에 대한 무시무시한 소문도 많았습니다. 이전에 있었던 사실들이야 알 수가 없지만 아직도 정신과 입원치료에 대한 두려움이 일반인 분들에게는 많을 것입니다.

영화나 드라마 같은 매체의 영향도 큽니다. 이전에는 정신과 환자 수백 명을 정신과의사 한 두 명이 진료를 하는 병원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장기입원환자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의료보호 환자의 경우 의사 한 명당 입원환자 수에 따라, 입원 병동에 간호사․간호조무사의 수에 따라 건강보험공단에서 진료비를 차등 지급하는 제도를 운영하면서 예전처럼 의사의 눈을 피해서 일어나는 환자에 대한 학대, 가혹행위 등은 일어나기 힘든 상황입니다.

또 이전에는 법적보호자 1인의 동의만으로 강제입원이 가능했지만 현재는 법적보호자 2인의 동의가 필요하여 환자와 의사에 반하는 강제입원이 더욱더 쉽지 않게 된 상황입니다. 그런데 이런 환자 강제입원에 대한 정신보건법이 헌법 불합치 판정이 남에 따라 보호의무자 2인과 의사 1인의 동의로 강제입원이 가능하던 것이 보호의무자 2인과 의사 2인의 동의로 바뀌게 됩니다.

문제는 이런 법령이 시행되는데 아무 준비가 안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의사 2인 중 한 명은 다른 병원에 근무하는 사람이어야 하는데 일을 하지 않고 쉬고 있는 의사가 아니라면 자신의 병원의 환자를 돌봐야 할 시간에 다른 병원을 돌아다니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잘못하면 응급 입원이 필요한 상황에서 환자와 보호자가 집으로 돌아가야 할 상황도 생길 수 있습니다. 한 명이라도 불필요하게 강제입원을 당하는 일은 없어야 하기에 이 법의 취지에는 어떤 의문이나 비판의 여지가 없습니다. 이러한 급격한 변화과정에서 가장 큰 고통을 겪을 것은 의사도, 보건복지부 직원도 아닌 환자 본인과 주변 가족, 보호자일 것입니다.

외계인과 대화를 나누고, 미국 CIA에서 자신을 감시한다고 주장하는 환각, 망상을 가지는 조현병 환자나 길거리에서 사람들에게 시비를 걸고 소리를 지르고 있는 알코올 의존증 환자, 양극성 정동장애에서 심한 조증 삽화를 겪고 있는 사람들을 입원시키는 것이야 ‘시․도지사에 의한 입원’으로 경찰관을 동반한 강제입원이 임시적으로 가능합니다. 하지만 다른 모든 기능에서 정상적이지만 의처증, 의부증(정식명칭은 망상장애, 색정형입니다), 혹은 편집증이 심하여 아내나 남편을 흉기로 위협하거나, 폭행을 행사하고는 자신은 너무 사랑해서 그랬다고 주장하시거나 가족들을 금전적으로 생계가 곤란하게 만드는 분들, 기능이 높은 조현병 환자가 사이비종교나 다단계 등에 빠져 있는 경우, 감정적으로 불안정한 인격 장애나 심한 우울증으로 자해행동과 자살시도를 반복하고 있는데도 정신과 입원만은 극구 피하는 분들, 술만 먹으면 음주운전이나 가족들의 생명을 위협할 정도의 폭력을 벌이면서도 술만 깨면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알코올 의존증 환자들, 가족들과의 연락이 끊긴 채 다른 사람들에게 노예처럼 학대를 당하는 정신장애인 등 복잡하고 애매한 상황에 처한 분들의 입원은 상당기간 힘들게 될 것 같습니다. 이런 고통을 겪고 계시는 분들은 오는 5월에 이 개정법안이 시행된다는 것을 알아두시고 잘 준비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입원보다는 외래에서 관리하도록 하는 이런 탈원화정책은 분명히 긍정적이고 좋은 정책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절차적인 문제야 시간이 지나가면 어떻게든 일부 내용을 수정해서라도 안정화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입원실을 떠나 사회로 돌아온 환자들에게 직업․사회적 재활훈련 등을 도와줄 공적시스템을 만들지 못하면 저런 복잡한 절차를 만들어 봐야 다시 입원실로 돌아가실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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