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대통령 없나요?①-서규섭 영농조합법인 팔당생명살림 대표>

최순실·박근혜의 국정농단으로 온 나라는 분노를 넘어 자괴감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촛불시민의 위대한 힘은 무능하고 부패한 권력을 탄핵시켰다.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병 즉, 정경유착과 적폐청산 등 숱한 과제를 남긴 채 정국은 조기 대선 국면으로 들어섰다.

지난 17년간 농사를 지어온 농민의 한 사람으로서 우리나라 농업에 대해 새 대통령에게 바라는 몇 가지를 언급하고자 한다. 해마다 겨울이면 조류독감, 구제역이 발생해 농민들을 어렵게 할 뿐만 아니라 국민의 건강과 안전한 삶을 위협하고 있다. 수천수만 마리의 가축들을 매몰 처리하는 일이 매년 반복되고 있지만 정부당국의 대처는 사후처리에 머물러 있고 근본적인 대책을 내놓지 못하는 실정이다.

유기 축산을 하고 있는 포천의 한 농가에서도 구제역이 발생했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매몰 처리가 늦어졌는데 며칠 후 그 농가의 소는 스스로 구제역을 이기고 건강을 되찾았다. 구제역 극복 비법을 묻는 언론과 전문가들에게 농장 주인의 대답은 간단하고 소박했다. 소의 먹이로 풀을 많이 주었고 햇볕이 잘 들고 바람이 잘 통하고 충분히 운동할 수 있는 넓은 공간에서 기르는 것 외에는 특별히 한 것이 없다는 것이었다. 지극히 평범하고 단순한 이 답변 속에서 우리 농업의 문제점을 찾을 수 있고, 농업을 바라보는 관점의 전환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새 정부와 새 대통령에게 우선 바라는 것은 농업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금부터 40여 년 전, 십여 명의 농민들이 그동안 화학비료와 농약에 의존해오던 농사 방법을 끊고 새로운 방법으로 농사를 시작했다. 이들은 정농회를 설립해 유기농업 운동을 시작했고 정농회는 우리나라 최초의 유기농업 생산자단체로 알려져 있다. 당시 이들의 유기농업 선포는 위험한 선동으로 취급받았고 고투입 다수확 정책을 밀어붙이던 정부로부터 불순한 무리로 낙인찍혔다.

그 후 20년 정도 지나서야 우리나라 정부는 유기농업을 제도권 안으로 받아들이고 만족스러운 수준은 아니지만 유기농업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기 시작했다. 정부의 개입으로 유기농업이 오히려 변질되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민간에서 일어난 자발적 유기농 운동이 정부를 견인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이러한 유기농업 운동과 뜻을 같이하는 운동이 도시에서도 일어났다. 바른 소비 운동과 먹거리 교육을 해온 소비자생활협동조합 운동이 그것이다. 소비자생활협동조합 운동으로 조직된 도시의 소비자들은 초기 유기농민들이 생산한 벌레 먹고 못생긴 농산물을 기꺼이 선택했다. 이들은 관행으로 해오던 농산물 유통방식을 거부하고 도농 직거래라는 불편한 방식을 선택했다. 도시와 농촌에서 시작된 유기농 운동은 우리 농업의 생산 방식과 농산물 유통의 새로운 길을 여는 계기가 됐다.

40여 년 전 시작된 농민들의 유기농업 운동과 도시 소비자들의 생활협동조합 운동의 공통점은 민간 스스로 자발적인 각성에 의해서 시작됐고 발전해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유기농업이 있다는 것이다. 도시와 농촌에서 시작된 이들의 운동은 농민의 생존권을 보장하고 식탁에서 안전한 먹거리를 보장받는 차원을 넘어서 환경, 교육, 문화, 농촌 공동체 회복 운동으로 발전하고 있다.

그동안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는 이들의 운동을 불순한 세력으로 바라보거나 제도권 밖의 의미 없는 활동으로 폄하해 왔다. 지난 40여 년간 정부는 상업, 공업 중심의 편향적 경제 정책으로 일관해 왔다. 그 결과 한 세대가 못가서 농업국가는 공업, 상업 중심 국가로 바뀌었다. 뒷전으로 밀린 농업, 농촌, 농민은 경쟁력 없는 산업으로, 낙후된 미개발 지역으로, 정책적으로 개체수를 줄여야하는 골칫덩어리가 됐다. 농업, 농촌, 농민의 몰락으로 우리 사회는 큰 대가를 치러야 했다. 화학비료와 농약에 찌든 땅은 점점 생명력을 잃어가게 되었고 농촌 공동체는 붕괴됐다. 식량자급률은 점점 떨어지고 있고, 우리 밥상은 수입농산물에 점령당했다. 특별한 계기가 없는 한 이러한 현상은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얼마 후면 새 정부 새 대통령이 선출될 것이다. 더 많은 돈을 농업, 농촌, 농민을 위해 써 달라고 요청하고 싶지는 않다. 자동차, 컴퓨터, 휴대폰에 밀려 몰락의 길을 걷고 있는 농업의 가치를 다시 세우기 위해 지난 시절 민간 스스로 힘써온 유기농업 운동과 생활협동조합 운동의 참 의미가 새 정부, 새 대통령의 농업 정책에 잘 담겨지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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