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소밥, 유혜민展 ‘Street Blues’

두 지점 교류… 묘한 역설과 ‘상반성’
‘아픔’에서 창조한 ‘작은 발들’의 치유

 

 

유혜민은 어느 날 길거리에서 치료시기를 놓쳐 심각한 상태의 하지 림프부종을 앓고 있는 한 노인을 보았다. 그가 ‘불필요한 아픔’과 신체·정신적 고통을 겪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됐다.

그는 주로 거리에서 마주친 ‘아픈 사람들’을 기억에 의존해 그렸다. 푸르스름한 피부, 노란빛을 띈 눈, 검게 삭은 치아, 구부정한 허리, 그리고 이상한 행동을 하는 인물들을 그렸다. 그가 노숙인의 이미지를 많이 그리게 된 것도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아픈 사람들의 대부분이 노숙인들이었기 때문이다.

The fighter on the red carpet, acrylic on canvas, 70×50㎝, 2016

그러다 유혜민은 다발성 경화증을 앓는 한 친구의 투병 과정을 지켜보게 됐다. 이 때부터 그의 그림에는 기억에 의존한 아픈 사람들의 이미지가 사라진 대신 실제 병마와 싸우는 인물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는 아픈 사람들과 일일이 인터뷰를 했고, 그들에게 자신의 그림이 어떻게 보이기를 바라는지 물었다.

“먹고 싶은 음식을 소화하지 못해 먹지 못하는 비만의 친구는 힘겹게 언덕을 오르는 자신의 뒤로 토끼와 강아지 같은 작고 귀여운 동물들이 나오길 바랐다.” 유혜민의 작품에 등장하는 캐릭터 ‘Petits Pieds(쁘띠 삐에, 프랑스어로 ‘작은 발들’이란 뜻)’는 이렇게 탄생했다. 작품 ‘My table’에는 ‘쁘띠 삐에’로 명명된 캐릭터들이 저마다 몸에 좋은 ‘슈퍼푸드’를 손에 들고 언덕을 함께 오르는 모습이 나온다.

My table, acrylic on canvas, 90×60㎝, 2016

캐릭터들은 친구들과 슈퍼푸드를 나누는 일을 제일 좋아하기에 언덕을 오르는 일도 전혀 힘들지 않다. 유혜민은 사람들의 ‘아픔’에서 다채롭고 생동감 있는 치유의 캐릭터를 창조했다. 강아지처럼 생긴 ‘도노’는 순진하고 정이 많다. ‘안’은 자신의 뚱뚱한 몸을 부끄러워한다. 앵무새 ‘퓨퓨’의 입은 항상 웃는 것 같지만 자주 조용히 운다. 토끼 ‘비비’는 도노의 가장 가까운 친구이고, 사자처럼 생긴 ‘리투’는 도노보다는 작고 달팽이보다는 큰 절대 채식주의자다. 이들은 인간의 나약한 모습을 여전히 갖고 있지만 서로를 도와준다. 그들은 우울하고 고립된 인간들에 대한 해독제인 것이다. 앞서 거리의 인물들에서 결여됐던 보살핌과 관심이 이들 캐릭터에 의해 표현되고 있다.

유혜민의 이번 전시는 지난달 24일부터 갤러리 소밥(양서면 용담리 69)에서 열리고 있다. 다음달 7∼28일에는 미국의 가장 큰 아트스쿨 중 하나인 New York Pratt Institute에서 미술을 전공한 폴 남(Paul Nam, 남승태)의 ‘HYBRID(Reconcilliation)展’이 열릴 예정이다. ☎ 774-4147, facebook.com/gallerysobab

유혜민(왼쪽 위)과 그가 창조한 캐릭터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도노(Dono), 안(Ahn), 리투(Litu), 비비(BB), 퓨퓨(Piu Piu).

유혜민(29)은 포항예술고를 최우등으로 졸업하고 서울대 서양화과와 동 대학원 판화과를 졸업했다. 영국 Camberwell College of Arts에서 일러스트레이션 석사과정을 마쳤다. ‘Croaking Days’(월드 벤처 갤러리, 서울·2013), ‘A Little Paranoia’(서울대 미술대학 갤러리 우석홀·2012) 등의 개인전을 열었다. ‘Proclaim’展(갤러리 정, 서울·2008), ASIAF(아시아 대학생 청년작가 미술축제·성신여대·2010), ‘서성이다’展(이화여대·2011), ‘Bestiary Show’(첼시예술대학, 런던·2015) 등 다수의 그룹전에 작품을 출품했다. 이밖에 경상북도교육청의 초등 영어교재 일러스트레이션(2008∼09, 2014)과, 모니미와 ‘어린이 창조학교’가 협업한 어린이 아트북의 일러스트레이션(2013)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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