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식업 성공 스토리> 능수엄마

65회 춘천옥 신축공사

 

개업한 지 꼭 육년 만에 춘천옥 건물을 지니게 되었소. 부지를 사둔지는 오래 됐지만 신촌 지점을 낼 부지를 먼저 장만하느라 건축이 늦었소. 이제는 자리가 모자라 발을 동동 구르는 일이 없을 거요. 하지만 여러분에게 이 말을 해주고 싶어요. 또 자리가 모자라 손님을 겹으로 앉히게 하자고.

 

“능수엄마보다가니 늬가 더 문제라메. 다시 생각해보라우. 소설도 좋지만 춘천옥을 등져 쓰간? 춘천옥도 네 본질이잖네? 기걸 휴지처럼 버려 어쩌자는 게가? 내레 늬가 문학에 너무 환상을 가졌다는 생각이 들었더랬어. 춘천옥을 물질로만 보지 않음 되잖갔네? 늬도 춘천옥을 예술품이라고 여겼잖네? 네가 손을 떼믄 춘천옥은 무너지니께니 알아서 하라우. 앞으로 지점도 여럿 내기로 했잖네. 그 엄청난 사업을 늬 없이 어드러케 성공하갔어. 길코 늬가 손을 떼믄 우릴 배신하는 게야. 알간?”
나는 지그시 눈을 감는다. 허마두의 말도 무시할 수 없다.
“하긴 그렇구나. 지점을 낼 때마다 자리가 잡힐 동안은 내가 뒤를 돌봐줘야 하니… 앞으로 십년은 더 미쳐야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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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업이 끝나자 허마두는 능수엄마를 데리고 휴게실로 올라갔다. 일주일에 한번씩 다른 직원들의 이목을 피해 교양지도를 해주고 있었다. 반년 만에 능수엄마가 몰라보게 달라졌다.
우선 능수엄마의 몸가짐을 경영자의 의젓한 자세가 되도록 가꿔주기로 했다. 팔자걸음을 고쳐주고, 표정관리를 가르쳐주고, 말투를 세련되게 길들여주고, 앉은 자세와 허리를 다듬어주었다. 심지어 발레 강사를 데려다 워킹 수업도 시켰다. 능수엄마 자신도 열성으로 지도를 받고 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녀는 하루가 다르게 변신하는 자신의 모습이 대견스러운 모양이었다.
그녀의 몰입은 미스 강에 대한 질투심이 촉진제로 작용하는데, 허마두가 그 질투심을 교육에 활용한 것이다.
“미스 강은 사리판단이 밝고 말씨도 의젓하잖네. 능수엄마도 조금만 가꾸면 확 달라질 거라메. 능수엄만 인물이 곱고 사교적이니게니 잘 배우면 미스 강보다 훨씬 멋질 게야.”
그게 능수엄마를 채찍질하는 허마두의 회초리였다.
허마두의 지도력은 놀라울 지경이다. 일반상식은 물론 음악과 미술에까지 관심을 쏟도록 한다. 요즘은 대인관계와 대화 요령에 치중하는 중이다.
“진도가 아주 빨라. 나도 놀랬더랬어. 능수엄마한테 기런 오기가 있다는 거 미처 몰랐디.”
허마두의 말이다. 나는 능수엄마의 변하는 모습이 궁금하지만 일체 사적인 대화를 피해왔다. 일부러 어렵게 대해주고, 허마두가 교육시키는 것도 모른 체했다. 호칭도 능수엄마 대신 정 팀장이라고 불렀다. 잘못한 걸 꾸짖지도 않았다. 처음 시작할 때 능수엄마가 수업을 놀이로 여겨 장난스런 태도를 보이자 한번 호통을 친 것뿐이었다.
“수업이 춘천옥 장사보다 더 중하다는 걸 몰라? 아직 정신 못 차렸어?”
그때 능수엄마는 내 꾸중을 엄숙히 받아들였다.
“죄송합니더. 앞으론 열심하겠심더.”
“고마워. 나는 정 팀장이 어느 누구보다 뛰어난 경영자가 될 거라고 믿어. 정 팀장은 그럴 능력이 있는 사람이야.”
능수엄마는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이젠 눈물도 함부로 흘리지 마. 독해지라구. 감정을 남한테 보이지 말란 말야. 사장이 눈물 찍찍 짜면 되겠어?”
“지금 슬퍼서 우능교. 감격하니까네…”
“알아. 하지만 방금 내가 뭐랬어. 남한테 자기의 감정을 보이지 말랬잖아. 그러니 감격스러운 것도 속으로만 느끼라구. 겉으로 나타내지 말고.”
“명심하겠심더.”
“나중에 감정조절이 숙달되면 오히려 자기감정과 다른 모습을 보여 줄 때도 있어야 해. 예를 들면 슬픈데도 기쁜 표정을 짓는다든가 화가 나는데도 즐거운 표정을 짓는다든가.... 알겠어?”
“네.”
“지금 감격스러웠지. 그러니까 나한테 일부러 기분 나쁜 표정을 지어봐.”
“와 자꾸 웃기십니꺼.”
“뭐야? 웃겨? 또 혼나고 싶나?”
나는 일부러 주먹으로 책상을 치며 화를 냈다.
“장난과 교육도 구별 못해?”
나는 소리를 버럭 내지르고 얼른 자리를 떴다. 도저히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내가 허마두의 교육을 방해하는 꼴이었다. 능수엄마와 상종을 않는 게 효율적인 교육이었다. 선생이 남의 자식은 가르쳐도 제 자식은 못 가르친다는 옛 말이 백번 옳았다.

 

점심때가 되자 40여 명의 춘천옥 직원들이 화사한 옷차림으로 홀에 모여든다. 업소가 쉬는 날을 골라 직원들끼리만 신관 개장식을 열기로 한 것이다. 춘천옥 도약에 새로운 발판이 마련된 셈이지만 크게 선전할 일이 아니란 게 내 생각이다.
홀에 음식상이 차려지자 나는 직원들을 자리에 앉히고 간단한 인사말로 개업식의 모양새를 갖춘다.
“오늘이 나에게는 의미 있고 즐거운 날이지만 여러분과 함께 있기에 즐거운 겁니다. 그래서 한 사람도 초청하지 않고 우리끼리만 즐기고 싶어요. 개업한지 꼭 육년 만에 춘천옥 건물을 지니게 되었소. 부지를 사둔지는 오래 됐지만 신촌 지점을 낼 부지를 먼저 장만하느라 건축이 늦었소. 이제는 자리가 모자라 발을 동동 구르는 일이 없을 거요. 자리를 안내하려고 능수엄마나 미스 강이 이리 뛰고 저리 뛰지 않아도 되겠지. 하지만 여러분에게 이 말을 해주고 싶어요. 또 자리가 모자라 손님을 겹으로 앉히게 하자고.”
박수가 터져 나온다. 나는 손가락으로 구석에 앉아 있는 진애경을 가리킨다.
“미스 진은 손님 많은 게 싫은 모양이지? 박수 안 치는 걸 보니?”
“저요? 안 그래요. 이번엔 저도 안내팀에 꼈으면 하고 생각 중이었어요.”
“왜 하필 안내팀에 끼고 싶은 거야?”
“마담언니와 능수엄마가 안내하는 모습을 보고 너무 부러웠어요.”
“보통 고생이 아닐 텐데?”
“그러니까 더 매력 있죠.”
“그래? 입사한지 얼마 되지?”
“일 년 반요.”
진애경은 상냥하고 몸이 빠른 편이어서 그전부터 눈길을 끌어온 아가씨다.

김용만 소설가(잔아문학박물관 관장)

“여러분 고마워요. 내 소원 같아서는 여러분들 모두가 춘천옥을 평생직장으로 여겨줬으면 해요. 결혼해서 애를 기르고, 그 애가 커서 결혼한 후라도 춘천옥에 출근하는 직원으로 남길 바라오. 만약 여러분 중에 지금 내가 한 말을 탐탁찮게 여기는 분이 있을지 몰라도 내 마음은 여러분과 늘 함께 지내고 싶어요. 나는 춘천옥을 여러분이 가장 아끼는 직장으로 만들 작정입니다. 우리가 청년시절엔 은행원을 선호했지만 머잖아 식당 취직을 영광으로 여기는 시대가 도래할 겁니다. 그러니 요식업소의 꽃이랄 수 있는 춘천옥이야 말로 가장 선호할 직장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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