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식업 성공스토리> 능수엄마

64회 춘천옥 신축공사

 

미스 강을 신촌점장, 능수엄마를 강남점장, 김춘수를 잠실점장으로 내보내고 허마두는 춘천옥 본점을 맡길 계획이었다. 그런데 미스 강과 김춘수는 천성이 주도면밀하고 탐구적이지만 능수엄마는 발전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틈틈이 교양을 넓혀주고 말이나 행동을 지도해주는 도리밖에 없다.

 

“고마워유. 이 은혜를 뭘루 보답해드려얄지유.”
능수아빠와 시어머니가 눈물을 글썽거렸다. 능수엄마의 잘못을 나무라긴커녕 그처럼 살길을 마련해주니 당혹스러운 모양이었다. 하지만 능수엄마는 아무 반응 없이 침묵만 지켰다.
그날 저녁 무렵 나는 미스 강을 휴게실로 조용히 불렀다. 그녀는 내 마음을 미리 읽고 먼저 입장을 밝혔다.
“저는 아무 상관없으니 능수엄마에게 마담 자리를 주세요.”
“고마운 말이지만 그런 말을 다시는 입 밖에 내지 마. 춘천옥 최고 책임자는 미스 강이란 걸 명심해. 누가 그 자리를 넘봐도 절대 양보하지 마. 능수엄마는 이미 내 맘에서 사라졌어. 다만 실수는 했을망정 춘천옥에 대한 애정이 변함없고, 생활이 딱해서 의리를 보였을 뿐이야.”
“정말 능수엄마에게는 잘해주셔야 해요. 저는 능수엄마만큼 춘천옥을 아낄 수 없어요. 저는 아주 계산적으로 살아가지만 능수엄마는 순수해요.”
“아냐. 미스 강은 계산적이 아냐. 냉정해지려고 애쓰는 것뿐야. 미스 강은 감동을 유발시킬 수 있는 사람이라구. 암튼 능수엄마를 잘 관리해줘. 불쌍히 여겨주고.”
“네.”
“미스 강.”
“네?”
“내가 미스 강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어.”
“뭔데요?”
“앞으로 미스 강은 춘천옥과 결혼해줘. 그래서 사장도 되고 회장도 되란 말야. 내 나이쯤 되면 세계적인 체인망도 형성하구. 알겠어? 이제 어서 나가 봐. 손님이 밀릴 시간이야.”

 

봄이 되자 춘천옥 신축공사가 시작되었다. 부지는 3년 전에 구입했던 요지의 코너 땅이다.
공사 기간은 10개월로 잡았다. 나는 모든 공사를 허마두에게 맡겼다. 평생 책임 있는 일을 맡아보지 못한 친구에게 일부러 책임을 지운 것이다.
“철저히 감독해 봐. 기술자나 인부들과 싸우지 않고도 네 요구를 관철시켜보라구. 조금도 하자 없는 건물을 지어야 하구.”
“내 나이를 걸고 열심히 해보갔어. 기러니께니 맘 푹 노라우.”
건물은 1년이 훨씬 넘어서야 완공되었다. 내부 인테리어와 주방 시설 때문에 늦었던 것이다. 1,2층 모두 온돌 난방식인데 1층은 너른 홀로, 2층은 크고 작은 단체 회식방으로 꾸몄다. 3층은 휴게실, 보쌈김치 작업장, 직원들 숙소로 꾸몄으며 화장실도 서울시장 표창을 받을 만큼 참신하게 꾸몄다. 서울시에서는 88올림픽을 앞두고 화장실 개조에 관심을 쏟는 중이었다.
허마두는 공사를 빈틈없이 감독했다. 하루도 쉬지 않고 현장에 붙어서 구석구석 살피고 검토하고 확인했다. 나는 허마두에게 공사감독과 함께 영업에도 더 적극적으로 관여하도록 유도했다. 앞으로 허마두가 직접 춘천옥을 운영해야 하는데 허마두의 능력을 확인하고 보니 나는 저절로 힘이 솟았다.
인간의 성취욕을 무시해온 그 허무주의자가 마음을 돌렸다는 것이 너무 감격스럽고 희망적이었다. 손목시계를 팔아서 내 등록금에 보태준 허마두. 그런 친구가 이번에는 내 청을 받아들여 현실을 택했던 것이다. 나는 그 우정이 고마웠다.
“미스 강, 내 친구는 말야, 일부러 바보짓을 해왔다구.”
“바보짓이라뇨?”
“그자는 인간의 꿈을 무시해왔어. 그자는 가끔 이런 말을 했지. 내래 잘 산다는 거이 유치하다고 여겼디랬어. 기래서 바람처럼 살아왔디.”
“사장님은 그런 분을 좋아하시나 봐요.”
“나도 허무주의자거든.”
“그런 분들이 왜 열심히 사시는 거죠?”
“재밌는 질문인데… 멋 때문에 그래.”
“멋이라뇨?”
“마음먹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 허마두만 해도 욕심 없이 살아온 인간이 춘천옥 일에 미치는 걸 보라구. 그걸 멋으로 여기는 거지. 자신의 능력을 시험해보는 멋. 거기에서 열정이 생기는 거구. 그러니 열정의 시원은 허무인 셈이지.”
나는 그런 식으로 허마두의 참모습을 미스 강에게 비춰주었다.

 

이제 춘천옥 이전이 문제였다. 기존 업소는 남은 계약기간인 7개월 동안 그냥 비워둔 채, 직원 하나를 그 빈 집에 대기시켜 찾아오는 손님을 건너편 새 업소로 안내하도록 했다. 춘천옥을 찾아왔다가 그냥 돌아가는 손님이 없어야 했고, 건물 주인이 춘천옥 자리를 그대로 활용하면 낭패였다.
지저분한 집에서 깨끗한 현대식 건물로 이전하니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대기 손님을 흡수할 정도로 공간도 넓어졌다. 미스 강과 능수엄마는 여전히 손님을 맞되 자리 배정에 고심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능수엄마는 미스 강을 그전처럼 함부로 대하지 않고 어려워했다. 내가 앞장서서 미스 강을 예우했고, 능수엄마에게도 조직생활에 대해 교육을 시켰던 것이다.
입주를 끝내자 허마두를 지배인으로 승격시켰다. 이제 허마두는 춘천옥 숙소에 기거하면서 본격적으로 운영을 맡게 된 것이다. 나는 지배인과 마담을 항상 붙어 지내는 사이가 되도록 만들어 두 사람이 가까워지도록 유도했다. 날이 갈수록 둘의 사이가 정다워 보였다.
“너 앞으로, 미스 강 마음을 잡지 못하면 세상을 떠나버려.”
“늬는 아주 약디. 나하구 미스 강이 손을 잡아야 춘천옥을 제대로 지킬 수 있갔디. 기래야 춘천옥을 맘 놓고 빠져나갈 수 있으니께니 나를 잡아맨 거디. 안 기렇네?”
“맞아. 나는 한시바삐 시골로 떠야 해.”
“길코 늬 속내를 또 하나 알고 있디.”
“뭔데?”
“늬 마음속엔 우리 말고도 능수엄마와 김춘수가 자리 잡고 있어. 기러티?”
“그래 맞아. 너도 독심술이 제법이구나.”
허마두의 말은 사실이었다. 내가 마음 놓고 춘천옥을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허마두와 미스 강 말고도 능수엄마와 김춘수의 변신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들 넷은 앞으로 춘천옥 본점과 지점을 맡아야 할 경영자들이었다. 지금 생각으로는 미스 강을 신촌점장, 능수엄마를 강남점장, 김춘수를 잠실점장으로 내보내고 허마두는 춘천옥 본점을 맡길 계획이었다. 그런데 미스 강과 김춘수는 천성이 주도면밀하고 탐구적이지만 능수엄마는 발전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틈틈이 교양을 넓혀주고 말이나 행동을 지도해주는 도리밖에 없다.

김용만 소설가(잔아문학박물관 관장)

“능수엄마를 학교에 보낼 수도 없으니 네가 집중적으로 지도해봐.”
내 말에 허마두가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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