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식업 성공스토리> 능수엄마

63회 너를 버릴 수 없구나

 

나는 능수아빠의 못난 짓에 화가 치밀었다. 능수엄마를 억지로 일으켜 밥을 짓도록 시킬 게지, 못난 인간. 지금 네 마누라는 상사병에 걸려 있어 이 바보야. 그러니 약이고 지랄이고 내 말대로 밥을 짓도록 해주란 말야 이 멍청아. 속으로는 밥을 지어주고 싶어 안달할 텐데 그 심정도 모르고 밥을 시켜주겠다구?

 

얼굴을 피했지만 분명 능수아빠였다. 얼굴이 옛날 같지 않고 푸석푸석해 보였다. 내가 서 있는 쪽으로 걸어오지 못하고 눈을 피하는 그에게 내가 먼저 다가가 말을 걸었다.
“어디 가는 길야?”
“얼래, 사장님… 어디 가는 길이세유?”
“나야 바람 쐬러 나왔지만 능수아빠는 어디 가는 길야?”
“오거리에 영한 약방이 있대서 나왔구먼유.”
“누가 아픈데?” “능수엄마유. 당최 어디가 아픈지 기신을 못해유.”
“아니 그렇게 팔팔한 사람이 왜?”
“몰라유. 직장을 그만두고부터 계속 앓아유.”
“대승옥에서 그만뒀다구? 언제?”
나는 뻔히 알면서도 능청을 떨었다.
“한 달쯤 돼유, 장사도 안 되구, 그 집서 반가워도 않구, 그래서 그만뒀다나 봐유.”
“정말 아픈지 살펴봤어?”
“예에?”
“엄살일지도 모르잖아?”
“끙끙거리는 걸루 봐설랑 아프긴 아픈 모양인디유.”
“그럼 무슨 약을 살려구?”
“무슨 약보다두, 그렇게 기신 못하는 디는 무슨 약을 먹어야 할지 물어보고 살려구유.”
“약은 나중에 사고, 춘천옥에 가서 내 차를 타고 집에 가보자구.”
나는 능수아빠의 팔을 끌었다. 능수아빠는 내가 자기네 집에 가자고 하자 금방 생기가 돌았다. 그가 불쌍하면서도 괘씸했다. 경우를 아는 사람이라면 춘천옥에 붙어 있도록 아내를 설득하거나 내게 연락이라도 해줬을 텐데 전혀 반응이 없었다.
춘천옥에서 그를 태우고 화산동으로 달렸다. 오랜만에 가보는 셈이었다. 집에 도착하자 나는 거침없이 방으로 들어갔다. 능수엄마는 아랫목에 누워 있다가 나를 보자 벌떡 일어났다.
“기신도 못한다면서… 어서 눠.”
나는 그녀를 눕도록 했지만 막무가내로 벽에 기대앉았다. 침묵이 흘렀다.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망설여졌다. 핼쑥한 그녀의 얼굴을 보니 가엾다는 생각이 들었다. 따지고 보면 박 사장의 유혹을 받아드린 것도 나에 대한 반감 때문이었다. 아무리 사랑 투정을 부려도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는 내가 미웠으리라.
나 역시 어찌 할 수가 없었다. 능수엄마의 마음을 받아줄 수 없으니 그녀의 판단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참 묘한 딜레마에 빠진 셈이었다. 내가 마음을 받아주지 않는 이상 그녀는 춘천옥을 떠날 게 틀림없었다. 춘천옥을 지키도록 여러 번 설득하고 타일렀지만 능수엄마는 오히려 내 그런 성의를 자기 마음을 받아들이게 하는 빌미로 삼았던 것이다.
“나 오늘 여기서 점심을 얻어먹고 갈 테니 밥 좀 해줘.”
나는 능수엄마를 기동시켜보고 싶어 그렇게 말했다.
“싫어예. 그냥 가이소.”
“그럼 그냥 갈 수밖에 없지.”
내가 자리를 뜨려 하자 능수아빠가 끼어들었다.
“사장님 드실 음식을 시켜드릴게유.”
“이 사람아, 내가 밥 얻어먹고 싶어 환장한 사람야?”
나는 능수아빠의 못난 짓에 화가 치밀었다. 능수엄마를 억지로 일으켜 밥을 짓도록 시킬 게지, 못난 인간. 지금 네 마누라는 상사병에 걸려 있어 이 바보야. 그러니 약이고 지랄이고 내 말대로 밥을 짓도록 해주란 말야 이 멍청아. 속으로는 밥을 지어주고 싶어 안달할 텐데 그 심정도 모르고 밥을 시켜주겠다구? 너처럼 미련한 놈이니 마누라가 저 꼴이 된 거지. 이 병신!
그나저나 큰일이다. 내가 후딱 떠나버리면 다시 찾아올 명분이 없고, 그렇다고 점심상을 차리라고 들볶을 수도 없고.
“몸이 나을 동안 편히 쉬도록 해. 그리고 모래쯤 능수아빠랑 같이 와. 알지?”
“싫어예.”
“싫어? 그럼 할 수 없지.”
나는 방문을 거칠게 열고 밖으로 나와 진달래꽃이 흐드러진 꽃동산을 바라보며 능수엄마의 마음을 헤아려보았다. 두 말할 것도 없이 춘천옥에 오고 싶어 환장할 것이었다. 하지만 꽤 애를 먹을 것이다. 그 자존심을 어떻게 세워줘야 할지.
나는 토방에 서서 들판을 구경하다가 다시 방문을 열었다. 능수엄마는 벽에 기댄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능수엄마가 없는 동안 춘천옥에도 손님이 떨어졌어. 다시 나와서 손님을 끌도록 해.”
그 한마디만 던지고 얼른 방문을 닫고 차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능수아빠가 밭둑까지 차를 배웅해주었다. 백미러에 비친 능수아빠의 서 있는 모습이 추레해 보였다.

 

춘천옥에 돌아와서도 능수엄마의 역할을 여러 가지로 생각해보았다. 능수엄마가 그만둔 후로 아내는 몸이 바빠질 수밖에 없었다. 미스 강이 있지만 아내가 편히 쉴 입장이 아니었다. 오랜 세월 고생한 탓에 몸이 극도로 쇠약해진 아내에게 과로는 금물이었다. 몸을 편히 간수할 수밖에 없는 아내로서는 능수엄마가 춘천옥에서 다시 일하는 게 가장 효율적인 대안이었다.
하지만 능수엄마의 역할이 걱정이었다. 마담이 된 미스 강 밑에 둘 수도 없고, 그렇다고 마담 직을 바꿀 수도 없었다. 솔직히 능수엄마를 포기할망정 미스 강을 버릴 수는 없었다. 요즘은 일 처리 능력도 능수엄마를 앞질렀다.
“능수네 집에 차입을 맞기면 어때요?”
아내의 느닷없는 말에 귀가 번쩍 뜨였다. 현명한 제안이었다. 능수네의 온 식구가 매달릴 일이라면 능수엄마의 마음가짐이 달라질 것이었다.
“좋은 생각이야. 재료 차입은 보수를 받는 차원이 아니라 자기 장사에 매달리는 셈이지. 그러니 춘천옥에 대한 애착이 다를 거라구. 마음도 잡힐 테구.”
이튿날 나는 아내를 데리고 직접 능수네를 찾아갔다. 시어머니와 남편도 집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야채 구입을 맡기겠다고 제의했다. 그동안 경리가 일괄해서 차입해온 재료 중에서 보쌈고기와 메밀가루 말고는 야채 값이 가장 큰 액수인데 배추, 무, 열무, 갓, 쪽파, 대파, 양파, 마늘, 생강 등의 구입비를 능수네에 맡기면 야채시장 근처에 사는 그들로서는 생활비에 큰 보탬이 되고, 춘천옥 입장에서도 오히려 같은 액수로 좋은 물건을 고를 수 있어 좋았다.

김용만 소설가(잔아문학박물관 관장)

재료 특성상 돼지고기, 메밀가루, 고춧가루, 참기름은 주방에서 직접 차입해야 하지만 야채를 능수엄마네처럼 믿을 수 있는 사람한테 맡기면 더 효율적이다. 능수아빠 역시 남의 농장에서 총각시절부터 품을 팔아온 사내이니 차입에 차질이 없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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