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식업 성공스토리> 능수엄마

62회 머리 싸맨 능수엄마

 

자네가 핵심을 건드렸군. 능수엄마의 체질적인 감수성은 이성적인 조정력, 기획력, 판단력과 조화를 이뤄야 빛을 낼 수 있어. 자기 자신을 객관화 시킬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이지. 그런데 능수엄마는 앞으로도 자기개발이 힘든 여자야.

 

오랜만에 노 상무가 춘천옥에 나타났다. 영업이 끝나갈 무렵이었다. 이번에는 내가 그를 맞아들였다.
“오랜만에 오셨네요.”
“잠깐 한 잔 하려고 혼자 들렀죠.”
“상무님 회사가 구로동에 있다는 말을 들었는데, 한번 구경하고 싶은데요.”
나는 에멜무지로 핵심적인 말을 꺼냈다. 내 다정한 목소리에 그 역시 차분하게 대꾸해주었다. 요즘은 힘이 든다고 했다. 이때다 하고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모금정 박 사장님과는 어떤 사이시죠?”
“사실은 그걸 말씀드리려고 오늘 춘천옥에 들른 겁니다. 저는 박 사장과는 아는 사이가 아닙니다. 대승옥 황 사장과 초등학교 동창인데 우연히 제가 춘천옥 단골인 걸 알고 그 친구가 이상한 일을 부탁했었지요.”
“이상한 일이라뇨?”
“저와 능수엄마가 길에서 사진을 찍게 해달라는 거예요. 첨엔 오해 살 일 같아서 거절했는데, 친구가 저를 설득시키더군요. 다른 게 아니고 능수엄마를 데려오고 싶은데 협조해달라는 거예요.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사진을 찍게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여관 앞이어서 실수했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더구나 그 사진을 갖고 친구 매부 되는 박 사장이 능수엄마를 괴롭혔다는 말을 듣고 무척 불쾌했지만 참았죠. 능수엄마에게는 전화를 걸어 미안하다는 말을 전했고요. 그 후 창피해서 춘천옥에도 들르지 못했어요. 이유야 어떻든 죄송합니다.”
“이렇게 솔직히 말씀해주시니 고맙습니다.”
“고맙다뇨. 제 실수가 큽니다. 아직 세상물정을 몰라서… 면전복배가 아니라 사장님의 심지가 대단하십니다. 정말 존경스러워요. 요식업에도 지성이 필요하다는 걸 깊이 깨달았습니다.”
“상무님도 요식업에 손을 댈 의향이라고 들었는데…”
“춘천옥을 보고 그런 생각을 잠시 가져봤지요. 하지만 대승옥이 망하는 걸 보고 함부로 대드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죠. 대승옥이 춘천옥을 누르려고 그처럼 몸부림을 쳐도 결국 패자가 되는 걸 보고 사장님 같은 분이나 성공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정말 존경합니다. 그동안 제 불찰을 용서하세요.”
나는 더 할 말이 없었다. 노 상무의 잔에 맥주를 따라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보쌈 작은 접시와 맥주 두 병을 비우고 자리를 떴다. 노 상무가 밖으로 나가자 허마두가 가까이 다가왔다.
“보통내기가 아니라메.”
“네 말 대로 보통내기는 아니지. 하지만 네가 생각한 그런 보통내기가 아냐.”
“기거이 먼 소리네?”
“나한테 사과했어. 자기가 잘못했다고. 다신 그를 볼 수 없을 거야.”
나는 밖으로 나가 무작정 오거리 쪽으로 걸어갔다. 오랜만에 걸어보는 길이었다. 가까운 거리, 이 정든 길을 몇 년 만에 거닐어보다니…

 

아침에 출근하니 배추를 절이던 평강댁이 가까이 다가와 속삭였다.
“능수엄마가 대승옥 그만뒀대유.”
“언제?”
“며칠 됐나 봐유.”
“누구한테 들었소?”
“대승옥 범도한테서유.”
“범도는 그냥 있고?”
“올디갈디 읎응게 워쩔거유. 황 사장하구두 틈이 벌어졌나 봐유. 글쎄 돈까스를 배우라구 했다는디, 어제 대승옥을 지나면서 써붙인 걸 봉게 메뉴가 열 가지가 넘더라구유. 보쌈, 막국수, 돈까스, 부대찌게, 갈비찜, 제육볶음, 육개장…”
“원망스럽던 상대가 이젠 가여워지는군.”
“그러니까 매사를 순리 대루 풀어야쥬. 장사란 게 악써서 되는 게 아니잖유.”
“그럼 봉급도 받기가 힘들겠군.”
“밀린 돈을 달라구 하니까 되레 야단치더래유. 이달 적자가 얼만지 아냐구유. 그러면서 너희들 봉급을 깎을 수밖에 읎다구 악을 쓰더래유.”
“큰일이군.”
내가 말한 큰일이란 범도의 장래에 대한 걱정이었다. 이미 춘수를 주방장으로 승진 시킨 데다, 범도의 성격 때문에 다시 불러들일 수 없는 입장이다. 그동안은 범도가 창업 멤버인 데다 나름의 성실성과 숙달을 감안해서 함께 지내왔지만 이제는 주방 식구 전체의 분위기와 균형이 문제였다. 음식 맛도 타성에 젖어 있는 범도보다 참신한 사고방식을 지닌 춘수의 장래가 훨씬 밝아 보였다.
안타깝지만 할 수 없었다. 장사는 냉정할 수밖에 없다. 내 자식이라도 성격이 삐딱하면 운영을 맡길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능수엄마는 어쩐다? 그 문제는 나 혼자 판단할 수 없어 아내와 허마두를 휴게실로 불렀다.
“춘천옥에 대한 애정은 여전해. 한번 홍역을 치르면 더 단단해질 수도 있지. 그래서 이번 실수는 긍적적으로 평가할 수도 있어. 하지만 능수엄마에겐 한계가 있어 탈이야.”
내가 원론적인 말을 꺼내자 아내가 토를 달았다.
“능수엄마 땜에 가장 걸리는 문제는 직급인데, 지금 미스 강은 우리도 놀랄 만큼 하루하루 달라지고 있어요. 그 열정에 흠을 내면 안 되죠. 그걸 원칙으로 잡고 대책을 세워야 해요. 그리고 능수엄마의 가장 큰 약점은 자신에 대한 제어능력이 없다는 거예요. 기분에 따라 행동하는 그 무지가 춘천옥 전체 분위기를 어떻게 해칠지 그것도 검토해야죠. 타인에 대한 배려를 모르는데 어찌 관리할 수 있겠어요.”
“나도 동감이야. 능수엄마의 감수성은 춘천옥 초기에만 유용했어. 지금은 그때와 달라. 춘천옥은 체계적인 운영이 요망될 만큼 성장했어. 그래서 거기에 걸맞은 관리가 요망되는 거구. 허마두 너는 어떻게 생각해?”
“모두 맞는 말이디. 능수엄마래 춘천옥의 핵심 관리자로선 모자라디. 생래적인 감수성만으로는 관리자가 될 수 없어. 다만 우리가 능수엄마를 얼마큼 배려해얄지 기거이 문제 아니갔어?”
“자네가 핵심을 건드렸군. 능수엄마의 체질적인 감수성은 이성적인 조정력, 기획력, 판단력과 조화를 이뤄야 빛을 낼 수 있어. 자기 자신을 객관화 시킬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이지. 그런데 능수엄마는 앞으로도 자기개발이 힘든 여자야.”
“그래서 고민이 생기는 거죠.”
“능수엄마한테 큰 희망 걸디 말고 기냥 씁시다래.”

김용만 소설가(잔아문학박물관 관장)

“암튼 두고보자구.”
나는 여운을 남겼다. 능수엄마에 대한 그와 같은 견해는 아주 신선하고 생산적이었다. 춘천옥 운영을 이야기하면서 관리라고 하는 과학적인 용어가 나온 것도 이번이 처음이었다. 우리 세 사람 모두가 관리의 필요성을 새로 인식했다는 의미가 된다. 그건 춘천옥의 체질이 바뀌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정말 자연스러운 전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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