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평화의소녀상 건립추진위원회

산역사책 될 ‘평화의 소녀상’
‘아픔과 분노 넘어 기억하라’

 

어린 소녀는 영문도 모른 채 군용열차에 강제로 실렸다. 너무 무서워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살려 달라”며 어머니를 수백 번 불렀다. 하지만 그 간절한 외침은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했다. 소녀가 끌려간 곳은 대만의 한 일본군 주군부대. 소녀는 그곳에서 상상할 수 없는 치욕과 고통을 견뎌야 했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 이용수(90)씨의 참혹한 사연이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눈물은 그냥 눈물이 아니다. 원통의 역사이며 국가라는 어머니가 닦아줘야 할 핏물이다. 우리도 그들의 아픔 앞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국가의 무능과 무력함으로 평생을 분노와 고통 속에서 살아온 그들이다.

“일제강점기에 성노예로 끌려가 피맺힌 고통을 겪은 소녀들의 삶과 아픈 역사를 기억하며 우리는 일본정부에 사죄를 촉구합니다. 전쟁과 폭력에 의한 반인도적 범죄행위가 되풀이 되지 않기를 바라며 통한의 세월을 보낸 할머니들의 생애를 증언하고자 평화의 소녀상을 세운다.” ‘양평평화의소녀상 건립추진위원회’가 밝힌 소녀상의 건립 목적과 이유다.

양평 평화의 소녀상이 드디어 공개된다. 소녀상은 제98주년 삼일절을 맞아 다음달 1일 오후 1시30분 양평물맑은시장공원 3·1만세터에 세워진다. 소녀상은 이날 식에 앞서 오는 24일 일반에 공개될 예정이다.

양평평화의소녀상 건립추진위원회의 주역들. 왼쪽부터 김정화·최창규 공동대표, 임승기 상임대표, 이상건 추진위원, 조춘선 상임대표.

양평 평화의 소녀상은 잘못된 역사를 반복하지 않도록 역사를 배우고 미래를 연결하고자 한 사람들의 노력이 맺은 결실이다. 임승기·조춘선(상임대표), 김정화·전재현·정경숙·최창규(공동대표), 권수연·이상건·이연환·정남선(추진위원)씨 등 10명이 주축이 돼 활동했다. 이들은 2015년 12월 굴욕적 한일 위안부 합의에 분노했고, 소녀상 설치 움직임이 일었다. 이 때부터 전국 각지의 소녀상 관련 자료를 수집하고 성공사례를 벤치마킹했다.

“인권·역사농단 위안부 한일합의에
피해 할머니들 통한의 눈물 삼켜…
국가가 닦아줘야 할 핏물과 같아”

 

추진위는 지난해 3월10일 첫 회의를 시작해 지난주 개최한 40차까지 한 주도 빠짐없이 회의를 열었다. 별도의 사무실을 갖추지 못해 음식점과 커피숍, 성당 , 회사 사무실 등을 돌며 그때그때 형편에 맞게 모임을 가졌다. 비용을 최소화하자는 취지였다. 열악한 환경에서도 활동력은 어느 조직이나 단체보다 왕성했다. 수원시민들로 구성된 ‘수원평화나비’ 관계자를 양평에 초청하기도 했고, 지난해 9월30일에는 소녀상 조각가 김서경·김운성 부부가 양평을 방문해 건립 장소를 점검했다. 길거리에서 홍보와 모금을 이어갔고, 군내 프리마켓에서 건립기금 마련을 위한 벼룩시장을 여는 등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김선교 군수와 면담해 건립 장소를 3·1만세터로 확정하는 등 건립 지원협조를 이끌었고, 군의회를 방문해 지원금 예산 협조도 받았다.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은 일들이었다.

 

삼일절 제막식에 앞서 오는 24일 일반에 공개될 예정인 양평 평화의 소녀상 제작 과정.

임승기(양평경실련 공동대표) 상임대표는 “소녀상 건립을 회의적인 시각으로 보는 분들이 많았던 게 사실”이라며 “항일의병과 몽양 여운형 선생 등 역사적 전통이 있는 양평이기에 만일 소녀상 건립이 안 되더라도 그 과정이 소중하기에 시작하자고 독려했다”고 말했다.

성금 모금 과정에서 갖가지 사연도 많았다. 조춘선(자영업) 상임대표는 “하루 벌어서 먹고 사는 한 건설현장 일용직 노동자가 무려 3일치 일당을 소녀상 건립에 써달라고 건네 가슴이 뭉클했다”며 “이런 분들이 모여 48개 단체와 522명의 시민들이 소녀상 제작에 동참했다”고 밝혔다. 용돈의 일부를 후원금으로 쾌척한 어린이들의 사연은 김정화(정의당 양평군위원장) 공동대표가 소개했다. 엄마는 유치원생과 초등학교 2학년생 두 자녀에게 소녀상 건립 취지를 설명했고, 용돈의 일부를 소녀상 제작에 후원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아이들은 엄마와 기나긴 ‘협상’ 끝에 갖고 싶었던 장난감을 뒤로 미루기로 결정했다.

추진위가 지난 6일 최종 마감한 후원금은 총 3891만4200원이다. 당초 목표액인 3500만원을 넘어섰다. 여기에 양평군이 기초공사 등의 비용으로 2000만원을 지원해 6000만원 가까운 금액이 모였다. 할머니들의 소망을 실현하기 위한 ‘기억하는 것’과 2015 한일합의 폐기, 일본정부의 법적 책임을 통한 명예와 인권 회복을 염원한 많은 이들의 바람이 마침내 실현됐다.

“역사를 기억하지 않는 자는 그 역사를 다시 살게 된다.” 나치에 의한 유대인 학살이 벌어진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적힌 글이다. 

양평 평화의 소녀상 건립 일지

온 나라 곳곳 평화의 소녀상 잇단 건립

경기도내 지자체 14곳에 평화의 소녀상
올 삼일절 양평과 함께 안양·평택에도…
김해에선 개인이 세워 “후손 가르쳐야”
‘공공조형물’ 등록한 원주시 사례 주목
진보·보수·5대 종단 한마음으로 만들어

 

경기도 곳곳에 소녀상이 잇달아 세워지고 있다. 도내 지자체 14곳에 이미 평화의 소녀상이 건립됐다. 현재 수원 성남 화성 고양 광명 의정부 군포 오산 김포 안산 시흥 안성 부천 광주 등에 평화의 소녀상이 세워졌다. 올해 3·1절에 맞춰 양평과 함께 안양과 평택에도 시민 모금으로 평화의 소녀상이 세워진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를 기리는 소녀상이 전국에 50개가 넘지만, 단체가 아닌 개인이 소녀상을 세우는 곳도 있다. 경남 김해시 서울이비인후과 로비에 오는 27일 소녀상이 세워진다.

공익광고업체 힐링브러쉬(Healing Brush)가 서울 일본문화원 앞 지하도 광고판에 설치한 소녀상 사진. (김서경·김운성 著 ‘빈 의자에 새긴 약속’ ·도서출판 말 발췌)

이 병원의 정태기(57) 원장은 지난 14일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아픈 역사라 하더라도 반드시 기억하고 후손에게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해 병원 안에 ‘평화의 소녀상’을 세우기로 했다. 병원을 찾는 많은 사람, 특히 어린이들이 보고 느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정 원장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기리는 소녀상 세우기 운동이 전국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펼쳐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광복 70주년인 2015년 8월15일 건립한 원주 평화의 소녀상은 제작과정에서부터 관리까지 좋은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원주시민연대를 필두로 한 진보단체는 물론 자유총연맹, 새마을회, 원주지역 5대 종단 등 65개 시민·사회단체와 1200여명의 시민이 참여해 제작했다.

특히 평화의 소녀상을 지자체가 공공조형물로 지정해 관리하는 사례는 전국의 소녀상 가운데 처음이자 현재까지 유일한 것으로 알려졌다. 원주시는 소녀상을 위해 별도의 폐쇄회로 TV를 설치하고, 해가 떨어지면 조명을 켜 환하게 밝히고, 수시로 청소하는 등 깨끗하고 안전하게 관리하고 있다. 원주 평화의 소녀상은 매년 원주시의 지원을 받아 위안부 관련 전시회와 각종 기념사업, 캠페인 등을 개최하고 있다. 공공조형물로 지정되면 지자체가 예산을 배정해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어 양평군으로선 벤치마킹 사례로 꼽힌다.

 

평화의 소녀상에 숨겨진 이야기

 

소녀의 발은 땅에 닿지 않고 발뒤꿈치가 들려있다. 부부 조각가인 김서경·김운성씨는 깊은 아픔의 세월을 떠돌며 편히 쉬지 못하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삶을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소녀상의 바닥에는 비스듬하게 그림자가 새겨져 있다. 소녀상의 얼굴은 소녀인데, 그 그림자는 할머니의 형상이다. 소녀들이 할머니가 되기까지 오랜 세월 겪은 아픔과 상흔을 할머니 그림자로 드러낸 것이다. 그림자의 심장 부분에 새겨진 나비는 ‘환생’을 의미한다. 더 좋은 세상에 다시 태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겼다.

거칠게 잘린 머리칼은 가족·고향과의 인연도 끊어졌음을 상징하고, 왼쪽 어깨의 새는 세상을 떠난 할머니들과 투쟁하고 있는 할머니들의 연결을 의미한다. 두 주먹은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겠다는 다짐의 표현이다. 소녀상의 오른편 빈 의자는 그동안 세상을 떠난 할머니들의 빈자리다. 누구나 와서 앉아 할머니의 눈으로 일본정부의 진실한 사과와 배상, 법적인 책임을 촉구하며 바라보길 바라는 두 작가의 기대가 서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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