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좋은 주말, 설거지하며 보이는 부엌창으로 지나가시는 윗집 할머니가 보인다. 인상 좋은 할머니 허리가 많이 굽으셨다. 처음 이사 올 때만해도 꼿꼿한 모습이었는데. 할아버지는 아직 정정해 보이는데 할머니는 많이 힘들어 보이신다. 친정어머니 생각도 나며 세월이 그렇게 지나갔나 싶은데 따져보니 양평에서 산 지 올해로 15년째다.

살면서 필요한 살림이 늘어나고 동물도 늘어나니 살림살이는 점점 많아진다. 진돌이를 데려왔을 당시에는 쓰던 사기대접을 개밥그릇으로 사용했는데 너무 작은 것 같아 냄비로 바꿨고, 가끔 끓여주는 특식을 먹고 나면 이마에 음식물이 묻기에 급기야 멋진 스테인리스 밥그릇을 샀다. 굳이 밥그릇까지 사야하나 생각도 했지만 써보니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강아지들이 늘 때마다, 또 성견이 되면 사이즈에 맞는 개밥그릇을 하나씩 준비해주기 시작했다. 개 밥그릇만 6개. 없어진 개 ‘치차’의 밥그릇은 여벌로 사용하는데 볼 때마다 생각나는 건 어쩔 수 없다. 그것만 스테인리스 특유의 반짝거림이 아직 남아있다. 밥그릇을 체격에 맞춰 사다보니 덩치 큰 은하의 밥그릇은 ‘대야’ 수준이다. 특대사이즈를 보고 아이들과 신기해하며 웃었던 기억이 난다.

그 다음 고양이가 생겼으니 고양이 밥그릇이 필요했다. 처음엔 진돌이처럼 사기그릇에서 출발했다. 뾰족하지만 부실한 이빨과 쪼그만 입으로 먹는 모습을 보며 그릇이 아주 작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양한 그릇 가운데 적당한 걸 주문했는데 지금은 그릇 받침만 쓰고 딸려온 그릇 대신 사기그릇을 얹어 사용한다. 그렇게 고양이용 그릇 두 개가 또 추가되었다.

원조 멤버인 앵무새 ‘용이’의 밥그릇은 여러 개다. 플라스틱에서부터 스테인리스로 된 물그릇, 간식그릇, 사료그릇까지. 한때 작은 새들도 있었고 다른 앵무새도 있었기에 싸우지 않게 여기저기 주느라 종류별로 놓아줬다. 지금은 쓸 만한 그릇이 얼마 안 남았지만.

먹는 것뿐 아니라 사는 데는 잠자리도 필요하다. 사람 침대도 오래되면 바꿔야하는데 개들은 훨씬 빠른 속도로 나이가 드니 저 세상으로 떠나기 전에 내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을 해주고 싶다는 생각에 지난해 겨울 개집 주변 환경을 바꿨다. 나무로 만든 개집을 빼니 바구니 형태의 잠자리를 마련해 줄 수 있는 장소가 마련되었고, 그렇게 하나씩 바구니를 마련하다보니 강아지 사이즈에 맞춰 대․중․소 5개가 되었다 하지만 정작 진돌이는 바구니에 들어갈 몸 상태가 안 돼 따로 잠자리를 마련해줘야 했다. 매일 저녁마다 바구니 사이즈에 맞게 개들을 안착시키는 게 일이었지만 이제 입춘이 지났으니 그 일도 끝난 것 같다.

지난겨울을 진돌이가 무사히 보냈다. 돌아오는 겨울을 또 나게 될지 장담할 수 없어 보이지만 모르는 일이라 미리 걱정하지 않으려 한다. 늘리기만 하던 살림살이를 이제는 조금씩 줄여야할 시기가 온 것 같다. 다 싸가지고 갈 수 없다는 거, 하나씩 놓아야 한다는 거, 알면서도 참 힘들다. 그래도 같이 했던 시간들에 대한 고마움은 잊지 않고 담아두고 싶다.

2014년부터 2년 넘게 동물일기를 쓰도록 해준 인연에게도 감사하고, 동물일기를 읽어주신 독자들께도 감사드린다. 이글을 마지막으로 동물일기를 접으려니 시원섭섭하다. 그래도 각자 모두의 이야기는 계속되니 마지막도 아닌 셈이다. 모든 생명이 행복하고 사랑하고 사랑받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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