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식업 성공스토리> 능수엄마

61회 뭔지 이상한 게 있어

 

분석하고 실험하고 아름다움이 뭔지를 캐려고 하는 미의식(美意識)을 키우면서 기라는 말이다. 요식업은 종합예술이다. 예술은 감동을 전제로 한다. 감동 없는 예술품은 예술품이 아니다. 손님을 감동시키지 못하는 식당은 문을 닫게 마련이다

 

“우리 둘이 있응게 하는 말인디, 니가 감히 사장님 같은 분을 넘봐 쓰겄냐? 너를 얼매나 이뻐해줬냐. 너 같은 노름꾼을 사람 맨들어주겠다고 그 애쓴 걸 생각해보라구. 그런 은공을 모르고 함부로 까불면 쓰겄냐구. 너 솔직히 말해서 봉급 더 준다고 글루 간 게 아니잖여. 사장님 맘을 사려고 방정 떤 것 아녀? 그렁게 인자부터라두 속을 차리란 말이다. 내가 너를 아낑게 하는 소리여. 내 맘 알겄냐?”
 “…”
“왜 말을 못하는 거여?”
“언니.”
“말해 봐.”
“나 죽어버릴랍니더.”
“저봐, 저봐, 또 지랄하는 것 좀 봐. 너 도대체가 원제 속을 차릴래? 잉? 암 소리 말고 사장님을 찾아가서 죽을죄를 졌다고 싹싹 빌어. 알겄냐?”
“…”
“너 참, 노 상무 그자하고는 워찌 된 거여?”
“그자도 이상한 놈이니더. 서울서 젤 큰 업소 차린다꼬 떵떵거리더만 힘들 성싶으니까네 뒤로 안 빼능교. 춘천옥 장사가 보통 아니구나 싶었지예.”
“춘천옥 땜에 여러 놈 미치누먼. 장사가 쉰 줄만 아는가벼. 사장님 사모님처럼 고생해봐야 장사가 뭔 줄 알 틴디. 남 하는 것만 보구설랑 함부루 까불다가는 쪽박 차기 십상이지.”
“고생할 때 사모님 마이 울었다데예.”
“그 봐라. 그러키 고생한 마누라를 워떻게 할 거라고 니년이 함부로 덤벼? 이 맹추야. 대가리로 박아봤쟈 늬 대가리만 터질틴디 까불어?”
“와 자꾸 약올리능교? 내사 속이 타도 보통 타는 게 아니라카이.”
“제발 속 좀 차려. 느이 남편한티두 잘하구. 깊이 반성허란 말여.”
“속 타는 거이 반성 아닝교.”
“그려 그려. 내가 시킨 대로 어여 싹싹 빌어. 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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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미한 불빛 속에서 박 사장과 황 사장이 한숨만 내쉰다. 지금이 자정 무렵인데도 그들 처남매부간은 맥없이 술잔만 비우고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춘천옥의 경영 비밀을 캐낼 수 없다. 자꾸 두려움 같은 게 느껴진다.
“틀림없이 뭔가가 있어. 우리가 이해 못할 뭐가 있다구.”
박 사장이 한숨 같은 말을 흘리자 황 사장이 매부 박사장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본다. 매부가 가끔 뱉어내던 그 말을 한귀로 흘려왔는데 오늘밤에는 화살처럼 머리에 꽂힌다.
“그게 뭘까요.”
황 사장은 술잔을 든 채 천정을 바라본다.
“뭔진 몰라도, 흥을 샘솟게 하는 뭔가가 있는 것 같애. 저건 장사가 아니고 굿판이라구. 주인이야 미쳤다 해도 왜 직원들까지 미치냐 말야. 직원은 남이잖아. 그런데 똑 같이 미치거든. 봉급을 열배 받는 것도 아닌데.”
“솔직히… 그건 이해 못하겠어요. 손님이 몰려드는 걸 보면 매부 말씀대로 참 이상해요. 창밖으로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속이 타다가도 신기할 때가 있거든요. 춘천옥으로 기어드는 손님들이 모두 넋 빠진 사람 같아요.”
황 사장은 이미 장사를 포기한 상태다. 조금 빤하던 손님마저 하루가 다르게 줄어들고 있다. 이대로 가면 며칠 내로 홀이 텅텅 빌지 모를 일이다.
“너무 낙담하지 마. 처남은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온 사람이야. 좋은 가문에, 좋은 학벌에, 좋은 직장에, 인정받은 경영자에, 솔직히 처남에 비하면 춘천옥 사장은 새발에 피지. 다만 경험 없이 시작한 게 실수라구. 모두 내 잘못이야.”
“하여튼 저도 상상 못할 경험을 쌓았어요. 밥장사를 시시하게 보고 대든 게 잘못이죠.”
“참 묘한 일이야. 똑같은 능수엄마에다, 똑같은 주방장에다, 똑같은 손님인데도 대승옥에서는 제 맛을 못 느끼니 말야. 춘천옥보다 더 시설이 좋고 더 서비스가 좋은데도. 귀신이 곡할 노릇이지.”
박 사장이 얼른 맥주 한 컵을 삼켜버린다.
“자꾸 적자가 커져요. 어느 손님이 그러더군요. 저보고 판단을 잘못했대요. 원래 유명한 집 근처에서는 같은 메뉴를 취급하는 게 아니래요.”
“미안해. 지금 나를 많이 원망하겠지.”
“좋은 경험 얻은 셈이죠 뭐.”
이번에는 황 사장이 맥주 한 컵을 삼켜버린다.
“나도 당장 때려 치고 싶어.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장사가 아닌 것 같애. 정말 죽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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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도 벽은 우중충하고 종이가 찢어진 곳도 많다. 손님들의 훈김에 형광등 불빛이 침침하다. 꿈속 같다. 나는 잠시 땀을 말리려고 밖으로 나간다. 이미 밖에 나와 담배를 피우고 있던 허마두가 나를 보자 춘천옥 건너편 대각선 위치로 눈짓을 준다. 그쪽으로 시선을 돌리니 박 사장이 자기네 모금정 앞에 서서 춘천옥을 응시하고 있다. 나는 얼른 시선을 돌린다.
“신경 꺼. 장사가 안 되니 얼마나 조급하겠어. 장삿샘은 부자간에도 생긴다잖아.”
“제놈이 능력 없는 게디, 왜서 만날 우릴 물고 늘어지는 게야. 치사한 놈!”
“그만 들어가자.”
나는 허마두의 어깨를 밀어 함께 홀로 들어선다. 홀은 여전히 북적거린다. 옆집들은 텅텅 비는데, 그들 업소에서는 하느님만 원망할 것이다. 왜 이러시냐구. 누구네는 미어터져 아우성이고 누구네는 파리만 날리게 하냐구.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은 장사 이치를 모른다. 그냥 차려놓으면 장사인 줄 안다. 장사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장사의 기본요소는 숙달과 사업정신이다. 숙달은 경험을 통해 형성된다. 충분한 경험 없이는 성공할 수 없다.
숙달은 축적된 기술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기술 말고도 자기의 숙달이 미흡하다고 여기는 목마름, 즉 창조력이 작용하는 숙달이어야 한다. 여기에서 목마름이 바로 사업정신이다.
그 두 가지를 모르고 함부로 대들다가 깡통 차기 십상이다. 집을 팔고, 빚을 내고, 사돈네 돈까지 꿔와 식당을 차렸다가, 홀랑 까먹고, 목놓아 운다. 혹자는 쥐약을 먹기도 한다. 그처럼 고통으로 멍든 자들에게 나는 이런 말을 해주고 싶다.
“밑바닥부터 기어라. 하지만 그냥 기지 말라.”

김용만(잔아문학박물관 관장)

분석하고 실험하고, 그리고 아름다움이 뭔지를 캐려고 하는 미의식(美意識)을 키우면서 기라는 말이다. 요식업은 종합예술이다. 예술은 감동을 전제로 한다. 감동 없는 예술품은 예술품이 아니다. 손님을 감동시키지 못하는 식당은 문을 닫게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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