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에 배달부가 만난 사람> 김명근 무예원 원장

일제가 말살한 우리고유 ‘놓고씨름’,
의병활동지 제천서 복원 연구 활동
“배려 깃든 전통무예 확산 숙원”

 

무림의 고수를 경기도와 강원도를 넘나들며 찾아 나섰다. 단월면 명성리 폐교를 손봐 수련원으로 개조한 ‘무예원’은 무예달인 다운 근육질 몸매에 눈이 부리부리한 원장이 있을 것이란 상상은 한방에 날아갔다. 마치 한줌거리 밖에 안 될 듯 아담하고 날렵한 몸매, 그렇지만 백만볼트짜리 레이저 눈빛하나로 손님을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김명근 무예원 원장

김명근(무예원 원장)씨는 본래 서울내기로 양평으로 이사 온 지 19년 됐다. 부친이 ‘켈로부대’(CIA) 교관을 지낸 무골집안에서 태어나 예닐곱 살부터 태권도를 비롯해 온갖 무술에 관심을 가졌다.

“어려서 맹랑한 녀석이란 말을 많이 들었어요. 보통 싸움기술은 동네 형들에게 아름아름 배우잖우. 그러다 궁금증이 자꾸 생기니까 여기저기 묻고 다녔지. 그땐 태권도인지 택견인지 그런 구분도 별로 없었고 그냥 ‘까기’라고 했어요. 4·19끝나고 여덟 살 되던 해 어머니를 따라 답십리로 옮겨갔는데 그때 살곶이 다리 옆에서 노상 까기대회가 있었거든. 거기서 붕붕 날아다니는 걸 보니 부럽더라고. 나중에 알고 보니 거기가 택견 본산인거라. 집에 와도 눈앞 삼삼한 게 잠이 안 올 정도야. 인근에 큰 정미소가 있었는데 거기 늘 노인네 서너 분이 모여 장기도 두고 막걸리도 마시고 하더라고. 그래서 기술 좀 가르쳐 달라고 졸랐지. 처음엔 꼬맹이가 떼쓰니까 귀찮아하시더라고. 그러면 집에 가서 바나나도 가져오고 오리알, 달걀, C-레이션 이런 거 들고 와서 뇌물로 바쳤지. 종당엔 그 양반들이 서로 가르쳐 주려고 난리야.”

“조 대표, 삼목이 뭔 줄 아시나? 손목, 발목, 뒷목 이게 삼목인데 여자들 손목 잡히면 마음 준거잖우. 또 ‘발목 잡혔다’고 하면 쉽사리 빠져나가지 못하는 상황이고, 뒷목(덜미) 잡히면 완전히 끝난 거구… 이게 소위 ‘삼목잽이’ 기술인데 노인네들이 예를 들어가면서 기술을 가르쳐주고 경기규칙도 일러주고 했는데, 어려서 배운 거라 그런지 60년이 넘어도 기억이 생생해요. 택견은 송덕기 선생님을 꼽는데 그 분 스승이 ‘정 노인’ 이란 분이 계셨다고 들었죠. 나는 송 선생 제자인 박철희 선생에게 택견을 배웠어요. 그런데 택견을 가만히 보니까 초심자 때는 ‘놓고씨름’을 하고 실력이 올라가면서 ‘까기’를 하는데 둘을 합친 게 택견이더라고. 내가 택견 1세대로 서울에서 최초로 전수관을 열었는데 상부단체의 폐쇄적이고 독단적인 행정에 대들고 따지다가 더러워서 나와 버렸어. 요즘엔 정상화 되는 것 같더라고… 그래서 택견이라고 안 하고 상무놀이라고 이름을 붙여서 쓰는데 택견에서 ‘놓고씨름’을 잘 안 가르쳐, 우리고유 전통무술인데…”

단월면 어린이들이 우리 고유의 전통무술인 ‘놓고씨름’을 하고 있다. 빨간 옷을 입은 선수가 상대의 목덜미를 잡으려고 솟구쳐 올랐다.

놓고씨름이 뭐에요? “씨름하면 전부 샅바를 매고 한다고 생각하지만 서울대 박물관에 있는 유숙 선생이 그린 대쾌도(大快圖)를 보면 맨손으로 씨름하는 게 있어요. 놓고씨름은 다섯 가지가 있는데 기술이 아주 다양해요 잽이기술, 떼기, 채기. 등치기… 수백 가지는 되죠. 근데 그 기술이 일제를 거치면서 사라진 거지. 일본 스모 있잖우, 그게 놓고씨름의 한가지인 ‘밀기’거든. 스모의 근간이 한국이라고 하면 일본놈들이 가만있겠어? 그래서 말살한거지. 요즘 제천에서 놓고씨름을 복원하자는 연구를 한다기에 다녀왔는데 양평에서 을미년에 의병이 거병해서 제천으로 갔는데 거기서 의병들 훈련으로 이 씨름을 활용했다는 기록이 나왔대요. 그래서 박철희 선생이 놓고씨름은 자네가 잘 아는데 가보자고 하길래 다녀왔죠. 원래 양평에서 해야 하는데 말이야…”

재미있나요? “재미도 재미지만 이걸 하면 서로 배려하고 화합하고 공동체성을 회복하는 기능이 있어요. 스포츠가 모두 경쟁인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아요. 단체운동은 조직력이고 그 근본은 소통, 합의, 희생이 바탕에 깔려야 지속가능한 거라고 생각해요. 아이들 시합하는 걸 보면 기가 막혀요. 기술 중에 공굴리기가 있거든, 홱 잡아채는 기술인데 넘어지는 상대를 처박히지 않도록 방향을 돌려주는 거야. 또 나보다 덩치가 훨씬 큰 사람한테 쓰는 기술인데, 상대의 사타구니에 머리를 박으면서 오금을 당기는데 뒤로 벌렁 넘어가면 머리가 깨질거 아닌가? 그러니까 넘어지면서 몸을 돌려주는 거야. 정말 멋있잖아? 이런 게 배려죠. 이런 기술과 배려의 정신이 깃든 우리 전통무예를 꼭 복원하고 확산하는 게 내 마지막 숙원이죠.”

전수자가 많아야 할 텐데 많이 배출하셨나요? “단월 학생들에게도 가르치고, 양평읍에서도 가르치죠. 특히 여기 용문에 있는 영어마을 선생들을 많이 가르쳤어요. 그런데 임기가 끝나고 본국으로 가잖아요. 그 제자들이 각 나라에서 활동을 열심히 해요. 동영상도 찍어 보내고… 우리나라보다는 외국에서 더 인기를 끄는 것 같아요. 요즘 여기에 뜻을 같이하는 사람도 생겨서 힘이 생기죠. 조 대표도 나랑 같이 해보지 않을라우?”

배달부=조병걸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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