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는 EBS 프로그램이다. 우연히 이 프로그램 일부를 보고나서 ‘개들의 행동은 주인의 태도와 관련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먹이고 치우고 따뜻하게 재우는 데만 열중했던 나는 한 녀석 한 녀석 데리고 올 때의 초심을 기억해봤다.

개들은 보기엔 팔자 좋게 느긋해보여도 사실은 눈, 코, 귀를 포함한 모든 감각이 동반자에게 집중되어 있다. 어떨 땐 관심 좀 덜 하길 바라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책임감으로 내가 스스로 만든 부담이지 개들은 사람에게 부담 주는 것을 원치 않는다. 무리생활을 하던 DNA를 가진 개들은 자신이 무리에서 어떤 역할을 하길 원하지 부담을 주는 상태가 되면 슬슬 무리에서 벗어나려는 본능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아프면 주인을 일부러 회피하려는 성향도 보인다는 것이다. 사실 반가워하면서도 냉랭한 진돌이가 그저 나이 들어 만사가 다 귀찮아져서 그런가보다 했는데 어쩌면 이유가 있어서 그런 행동을 하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진돌이는 산책을 참 좋아하는데….

예전에는 낙엽이 다 떨어진 이맘때가 되면 아이들과 함께 개들을 데리고 인적이 없는 산으로 한 시간 넘게 산책을 다녔다. 요즘은 주말마다 각자 일들이 생겨 바빠지고 개들은 나이가 들어 산책은커녕 울타리 밖 구경도 시켜주기 힘들다. 가끔 산이나 뛰어놀다 들어오라고 선심 쓰듯 문만 열어준다. 신이 난 개들은 우르르 나갔다가도 다시 돌아와 같이 가자고 나를 재촉한다. 하지만 나도 이제는 귀찮아 그냥 바위에 엉덩이 걸치고 놀다 오라고 입만 놀린다. 개들도 몇 번 주변에서 왔다 갔다 하다가는 이내 뜀박질 좀 하다가 옆에 엉덩이를 대고 같이 앉아있는다. 좀 심심해지면 한 번 더 산자락 주변을 어슬렁거릴 뿐 산중턱까지 가지도 않는다. 아마도 특별한 냄새가 없는 한 호기심이 발동되기에는 이제 나이가 들어버렸다.

그렇게 좀 밖에서 같이 있는 척하다가 마당일을 하러 들어오면 따라서 들어오는 개들도 있고, 그래도 미련이 남아 울타리 주변에서 냄새를 맡으며 땅을 파는 녀석도 있다. 마냥 열어놔도 별탈은 없어 보이지만 문제는 빼꼼이다. 진돌이가 예전엔 늘 골치였고 그 다음엔 치차였는데, 치차가 실종된 뒤로는 빼꼼이가 새로운 골칫거리다. 예전의 진돌이 정도는 아니지만 우리 집 마당식구들 중 가장 젊은 피에 어수룩한 빼꼼이는 문이 열리면 ‘때는 이때다’ 하며 산을 누비고 다닌다.

집 근처로 왔다가 다시 산을 누비며 다니고, 또 왔다가는 산으로 내빼 버린다. 한 시간 넘게 그렇게 산으로 돌아다니다 보면 덫에 걸릴 수도 있고 치차처럼 행방불명이 될 수도 있다. 키우던 개를 애타게 찾는 길가 현수막이 떠올라 걱정돼 들어오라고 부르면 이제 다시는 울타리 밖으로 나올 수 없다는 생각에서 인지 오히려 멀리 내빼 버린다. 간식 봉지를 흔들며 갖은 예쁜 목소리로 불러도 오지 않고, 산에서 쳐다보며 약만 올리는 빼꼼이를 보면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며 내 마음을 다 잡던 마음은 사라지고 ‘저놈의 XX’ 오기만 하면 한 대 쥐어박을 거라는 마음뿐이다.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네 마리… 야, 쫌 빼꼼아. 너 이제 들어와. 네가 다섯 번째야!”

하지만 햇살 좋은 주말이 되면 난 또 문을 열어준다. 그리고는 안 들어오고 뺀질거리는 빼꼼이를 보며 성질을 부린다. 다 내 탓이지만, 그래도 넌 내게 귀여운 나쁜 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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