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식업 성공스토리> 능수엄마

59회 아버지가 뒈졌다구?

 

“그럼 왜 그런 짓을 했지?”
“죄송해요. 실은 여자하고 약속한 게 있어서요.” “뭐라구? 애인이 생겼어? 우리 춘수한테 애인이 생겨? 그럼 애인과 어울릴 시간이 필요하겠군? 아암 시간을 내줘야지.”
나는 얼굴을 환히 열며 춘수의 말을 반겼다.
“사장님 감사합니다. 이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임마, 은혜가 뭐야. 축하할 일인데. 며칠 동안 쉬고 싶지?”

 

직원들은 웃었지만 나는 웃음을 참았다. 춘수는 아직도 자신의 실수를 모른 채 벌개진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금방 눈물이 나올 듯한 표정이었다. 나는 춘수가 말을 꺼내기 전에 먼저 물어보았다.
“뭔 전화니?”
“저, 저, 아버님이 돌아가셨대요.”
춘수는 고개를 푹 숙이고 슬픈 표정을 지었다.
“뭐라구? 아버지가 돌아가셔? 어허, 왜 갑자기 돌아가신 거냐?”
“잘 모르겠어요. 너무 당황스러워서… 며칠 앓으시다 갑자기…”
춘수는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 나는 돌아가신 게 아니라 뒈진 거겠지 하고 농담을 던지려다 말고 억지로 숙연한 표정을 지었다. 농담으로 혼내주려니 다른 직원 앞에서 그러면 춘수는 나가고 말 것이었다.
“너무 슬퍼 마라.”
나는 춘수의 어깨를 다독거려주며 휴게실로 따라오게 했다. 킥킥거리던 직원들도 내 엄숙한 태도에 눌려 표정을 가다듬었다.
“춘수야, 너 솔직히 말해봐라. 정말 아버지가 돌아가셨니?”
“네.”
“정말?”
“네. 정말 돌아가셨어요.”
“이놈! 아버지가 돌아가신 게 아니고 뒈졌겠지!”
나는 웃음을 쏟고 말았다. 아무리 참고 화난 표정을 지으려 해도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이놈아, 아버지가 뒈져?”
그러자 춘수도 따라 웃었다. 그제야 자기가 “뒈져?” 라고 한 실수가 떠올랐던 모양이다.
“이놈아, 네놈 얼굴에 써있는데도 끝내 속여? 눈칫밥만 먹어온 나를 속이겠다구? 네놈을 내가 잘못봤구나. 너를 자식처럼 아꼈는데, 죽일놈! 내가 숱한 배신을 당해봤지만 너한테 당한 배신처럼 분한 게 없어.”
“죄송합니다.”
“이놈새끼! 세상에 네가 그런 짓을 하다니. 딴놈 같으면 몰라도 하필 네가 그 따위 거짓말을 하다니!”
“죄송합니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너 다른 데로 갈려고 그러지?”
나는 그게 제일 걱정이었다.
“아녜요. 그건 절대 아녜요.”
춘수는 다른 업소에 마음을 둔 적이 없다고 했다.
“그럼 왜 그런 짓을 했지?”
“죄송해요. 실은 여자하고 약속한 게 있어서요.” “뭐라구? 애인이 생겼어? 우리 춘수한테 애인이 생겨? 그럼 애인과 어울릴 시간이 필요하겠군? 아암 시간을 내줘야지.”
나는 얼굴을 환히 열며 춘수의 말을 반겼다.
“사장님 감사합니다. 이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임마, 은혜가 뭐야. 축하할 일인데. 며칠 동안 쉬고 싶지?”
“아닙니다. 약속을 취소하겠습니다. 절대 그런 짓 않겠습니다.”
“그런 짓을 할 수밖에 없는 네 심정 이해한다. 하지만 나한테 솔직히 말하지 그랬어, 암튼 잘됐다. 네 애인 나한테 데려와. 그래 함께 어딜 가기로 했어?”
“해운대요. 난생 첨 해운대 해수욕장 구경하고 싶었어요. 이따 미스 윤을 불러서 사장님께 확인시켜드릴께요.”
“그럴 건 없다. 나는 항상 네 말을 믿으니까. 그래도 미스 윤을 보고 싶긴 하구나. 우리 춘수 애인인데 어떻게 생겼나 궁금하거든.”
“별로 잘생기진 못했어요.”
“그래? 그럼 얼마나 못생겼는지 봐야겠구나. 눈이 하나야? 코가 두 개니? 이빨도 없어?”
춘수가 킥킥거렸다.
“맘이 문제야, 맘 이쁜 게 젤 이쁜 거야. 얼굴이 못생기고 잘생긴 게 뭔 대수야. 암튼 해운대에 다녀오거라. 그동안 고생도 많았고. 명절에도 나다닌 적이 없는데, 모처럼 애인하고 바람을 쐬도록 해.”
“안 돼요. 약속을 취소하겠어요.”
“걱정 말고 닷새 휴가 내줄 테니 재밌게 놀다 와. 암튼 네 애인 어떻게 생겼는지 얼굴이나 보자.”
“오늘 밤에 데려오겠습니다.”
“나이는?” “저보다 두 살 위에요.”
“그래? 너한텐 연상의 여인이 더 좋아. 그리고 연상과 맺어지면 자식을 많이 낳는다구나.”
나는 들어본 적이 없는 말을 일부러 꾸며서 덕담으로 던져주었다.
“애는 하나만 낳을래요.”
“벌써 애 낳을 것도 의논했어?”
춘수의 얼굴이 붉어졌다.
“왜 하나만 낳고 싶은 거지?”
“키우기 힘들잖아요.”
“짜식. 사실은 나도 먹고 살기 힘들어서 둘만 낳았더니, 지금은 후회가 막심하다. 지금 같아서는 스무 명쯤 낳아서 하나는 너 같은 주방장 만들고, 하나는 미스 강 같은 마담 만들고, 나머지도 모두 춘천옥 직원 만들면 좋았을 텐데. 후회가 막심하구나. 그랬다면 사람 구하는 것 신경 안 쓰잖아.”
“그럼 제가 많이 낳을게요.”
“어이구, 춘수가 농담할 줄도 아네. 미스 윤이 대단한 여잔가보구나. 우리 춘수를 농담꾼으로 만든 걸 보니. 직장에 나가는 아가씨니?”
“은행에 다녀요.”
“은행원? 히야, 우리 춘수 대단하구나. 암튼 이따 미스 윤하고 셋이 술 한 잔 하자.”
휴게실을 나가는 춘수의 발걸음이 튀는 공처럼 가벼워 보였다. 애인과 지내고 싶어 겨우 그런 쇼를 하다니, 나는 춘수의 뒷모습을 한참동안 바라보았다. 그때 아내가 휴게실로 들어오며 퀭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게 뭔 소리에요? 쇼라뇨? 춘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데, 왜들 쇼라고 수군대는 거죠?”
“왜 수군대는지 이유를 물어보지 그랬어.”
“웃기만 하고 대답들을 통 안 해요.”
“아무것도 모르는 척해. 얘기는 집에 가서 해줄 테니. 그리고 직원들이 수군거려도 못들은 척 해. 잘못했다간 춘수를 놓친단 말야.”
“왜요?”

김용만 소설가(잔아문학박물관 관장)

“착한 놈인데, 미안해서 여기 있겠어?”
아내는 고개만 흔들었다. 무슨 일이 생기긴 했지만 나쁜 일은 아니구나, 하는 표정이었다. 나는 춘수한테 애인이 생겼다는 말도 꺼내지 않았다. 어서 춘수의 ‘사건’을 가라앉히고 싶었다. 그걸 재미있다고 자꾸 뒤적거리면 춘천옥이 웃음바다가 될 테고, 그럴수록 춘수의 마음속 구멍이 점점 더 커질 성싶었다.

저작권자 © 양평시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