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6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한 지 6년2개월이 지난 15일 한·미 FTA가 발효됐다. 이 기간 동안 한국 정부는 미국 측이 요구한 대부분을 수용하는 치욕적인 모습으로 일관했다.

그 진행 과정을 살펴보면 우선 미국에서 FTA 협상에 앞서 주장한 4대 선결조건을 받아 들여 미국을 한·미 FTA 협상 테이블에 앉혔다. 4대 조건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 스크린쿼터 축소, 건강보험 약값 적정화 방안 추진 유보, 자동차 배기가스 기준 적용 유예 등이다.

그 후 2007년 4월 한·미 FTA는 타결됐지만 이후 미국은 ‘신 통상정책’을 내세워 재협상을 요구했고 한국은 이 또한 수용했다. 그리고 지난 2010년 12월 타결된 2차 재협상에서 자동차 관세 철폐시기를 늦춰달라는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였고, 지난해 11월 22일 당시 한나라당의 날치기 처리로 국회를 통과했고 15일 0시를 기해 정식으로 한국의 법률이 됐다.

이에 대해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은 122호 권두언에서 “한·미 FTA는 ‘국익’이라는 말로는 절대로 그 진실한 정체를 포착할 수 없다”며 “국가 간 조약이라는 형식에도 불구하고, 이 협정을 통해 실현될 이익은 대자본과 투자자, 기생적 정치가 등에게 국한된 이익일 뿐, 결코 국민 다수에게 돌아가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일반 국민에게 이익은커녕, 불이익만을 강요할 것으로 보이는 이번 한·미 FTA는 양평군 주민들에게 어떤 희생을 요구할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부분은 축산업이다.

국가의 잘못된 정책으로 인해 몇 년에 한 번씩 찾아오는 소 값, 돼지 값 파동은 한·미 FTA로 인해 완전히 무너질 위기에 처했다. 품질을 높이고 브랜드화를 통해 위기를 극복하자고는 하지만, 친환경 제품 대부분이 학교급식으로 들어가는 상황에서 한·미 FTA 발효로 그 판매루트가 막힌다면 어떤 대안도 없는 실정이다. 대부분의 축산농가가 영세한 실정인 양평에서 이 거대한 위협을 견딜 수 있는 준비된 농가는 과연 얼마나 될까?

열차를 이용해 서울로 출퇴근하는 경우가 많은 양평군민들은 한·미 FTA 이후 어쩌면 열차를 이용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지금 정부가 추진 중인 KTX 일부 민영화에 미국인 투자자가 끼어든다면 이 역시 한·미 FTA의 적용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전기, 철도, 가스, 우편, 수도 등의 민영화가 추진되면 미국 자본은 여기에도 들어올 것이다. 공공요금이 폭등하고 지방서비스가 끊어지고, 심지어 대형사고가 터진다 해도 우리는 공공시설의 재 국유화를 추진할 수 없게 된다. 투자자 국가소송제인 ISD가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벌어질 총선과 대선에서 후보들의 핵심공약은 복지에 맞춰질 전망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복지정책의 확대도 한·미 FTA 이후 어려워질 전망이다.

미래의 서비스는 모두 개방한다는 의미의 ‘네거티브 방식 개방’, 현재 유보 항목도 언젠간 모두 개방해야 한다는 의미의 ‘역진방지 장치’, 다른 나라에 더 많이 개방할 경우 자동적으로 미국에도 적용된다는 뜻의 ‘미래 최혜국대우’, 그리고 이 모든 독소조항을 합한 것보다 더 큰 위협이 될 ISD가 있는 한 복지 확대는 불가능하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15일 한·미 FTA 발효를 계기로 오전 6시부터 10분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전화통화를 하며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높은 수준의 협약으로 세계 자유무역의 좋은 모델이 될 것이며 성공적인 성과를 거두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고 박정하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또한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비대위 회의에서 “한·미 FTA가 갖고 있는 빛과 그림자를 균형있게 살피면서 그 효과가 극대화될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야 한다”면서 “한·미 FTA를 둘러싸고 (야당이) ‘이번 총선에서 승리하면 폐기하겠다’고 공언하는데 정치권의 분열과 갈등은 더 이상 없어야 할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이에 반해 민주통합당 김현 수석부대변인은 지난 14일 서면논평을 통해 “대한민국의 경제 체제를 송두리째 바꿀 한․미 FTA가 결국 우려한 대로 국민의 반대 속에 시작됐다”며 “이제 그 결과를 고스란히 감수해야 하는 것은 무능한 이명박 정부가 아니라 대한민국 모든 국민”이라고 지적했다.

한·미 FTA 폐기를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는 통합진보당은 보다 구체적으로 3단계 폐기 계획을 지난 15일 총선공약으로 발표했다. 19대 국회가 구성되자마자 국회 공동 합의문을 통해 폐기를 결의하고, 해외 조약법에 근거해 합법적으로 미국 측과 폐기 절차를 밟겠다는 계획이다.

1단계에서는 19대 국회가 ‘한·미 FTA 폐기 공동 합의문’을 마련해 통과시킴으로써 폐기를 결의하는 의지를 보이고, 다음 단계에서 한·미 FTA 협정문 조항에 근거해 미국 측에 협정 폐기를 공식 통보한다는 계획이다. 협정문 24.5조 2항에는 ‘어느 한 쪽의 당사국이 다른 쪽 당사국에 이 협정의 종료를 희망함을 서면으로 통보한 날부터 180일 후 종료된다’고 명시돼 있다. 이 때 폐기 통보를 하더라도 세계무역기구(WTO)의 ‘무역보복 불가 판단 기준’이 한·미 FTA 협정에 들어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는 절차라는 것을 확인시킬 방침이다. 이어 마지막 3단계에서 한·미 FTA 폐기 통보 180일 후 폐기를 완료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시민사회도 한·미 FTA 폐기 움직임에 힘을 더했다.

‘한·미 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는 지난 15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한·미 FTA 폐기 투쟁 돌입 선포’ 기자회견을 열고 “날치기로 강행 처리된 한·미 FTA 발효를 강력히 규탄하고, 원천 무효임을 선언한다”며 “4월 총선에서 한·미 FTA를 날치기하고 이를 방조한 의원들에 대한 심판 투쟁을 전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미 FTA는 다가오는 4․11 총선의 핵심 이슈가 될 수밖에 없다. 지금 그대로 진행해야 한다는 측과 협상을 폐기하고 전면 재협상을 벌여야 한다는 측으로 양분된 상황에서 과연 국민들은 누구의 손을 들어줄 지 4월 11일이 기다려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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