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식업 성공스토리> 능수엄마

58회 뭐라구?

 

봐라! 춘수는 내 말을 잘 들은 덕에 버젓한 사장이 되었다. 춘수가 내 나이가 되면 나보다 몇 배 나은 사장이 될 것이다. 네놈들은 만날 친구 꾐에 빠지거나 연애하기에 바빠 진득이 붙어 있지 못하고 건들댔지? 봐라! 춘수의 의젓한 모습을!

 

“물론 규범을 무시한 게 잘한 짓은 아니지. 내가 잘했다는 건 자유의지를 말한 것뿐야. 미스 강이 공중도덕을 잘 지키는 여자니까 그런 반역을 인정하는 거라구. 요식업자에겐 그런 반역이 필요해. 신랑의 까만 예복에 하얀 나비넥타이의 반역, 얼마나 멋있어. 물론 남이 버린 휴지를 줍는 멋이야 더 멋지지만. 암튼 크게 성공하려면 사통팔달한 여자가 돼야 해.”
나는 미스 강의 정신연령이 높다는 게 놀라우면서도 반가웠다. 미스 강은 일류 사업가가 될 수 있는 여자였다. 춘천옥 직책도 다만 나이가 어린 탓에 공식적으로 마담직을 맡기지 못할 뿐이었다. 아내와 내가 일부러 마담이라고 불러주고 있었다. 그렇게 부르다 보면 모두 따라 부를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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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한가한 오후 시간을 틈타 다방에 나갔다. 바쁘게만 일에 매달리다보니 잠시나마 여가를 갖고 싶었다. 조용히 커피를 마시며 업소 일을 생각하는 것도 시간 낭비는 아닌 듯싶었다. 북적대는 업소 안에서 생각하는 것보다 다방 같은 데에 앉아 있으면 떠오르지 않던 생각도 슬며시 고개를 드는 경우가 있었다.
다방에 들어간 나는 손님이 떠들며 이야기하는 자리를 피해 한적한 구석 자리를 찾아가 앉았다. 등 뒤에는 공중전화가 놓여 있지만 중간에 기둥이 막고 있어 몸 하나를 숨기기에는 넉넉했다.
지그시 눈을 감았다. 이제는 김춘수를 주방장으로 진급시켜도 손색이 없을 것이었다, 춘수는 입사한 지 3년 차였다. 나이가 들면서 성격이 차분해지고 일도 야무지게 처리했다. 특히 영업 후의 마무리가 마음에 들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저 혼자 가스를 잠그고, 환풍기를 끄고, 쓰레기를 치우고, 냉장고 재고를 파악하고, 구석구석을 살피곤 했다.
심지어 휴일에도 외출을 삼간 채 직원 숙소가 있는 3층 제 방에 누워 잡지를 보거나 라디오를 들으며 몸을 쉬었다. 명절 때도 하루만 외출하고 들어와 혼자 업소에 남아 있곤 했다. 고향에 양아버지가 있긴 해도 어려서 뛰쳐나왔으니 정이 별로 없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혈육이 아닌 이름뿐인 아버지인데도 종종 안부도 전하고 옷이나 보약을 사서 보내기도 했다. 그런 춘수가 기특하면서도 가여웠다.
정말 춘수를 키워주고 싶었다. 10년만 함께 있어도 자립이 가능했다. 자립해서 돈을 벌면 그동안 철없이 굴었던 애들에게 내 마음을 확인시켜주고 싶었다.
봐라! 춘수는 내 말을 잘 들은 덕에 버젓한 사장이 되었다. 춘수가 내 나이가 되면 나보다 몇 배 나은 사장이 될 것이다. 네놈들은 만날 친구 꾐에 빠지거나 연애하기에 바빠 진득이 붙어 있지 못하고 건들댔지? 봐라! 춘수의 의젓한 모습을!
그렇게 떠들어대고 싶다.
“웬 생각을 골똘히 하세요?”
어느새 마담이 곁에 와 앉는다.
“재밌는 생각이지.”
“뭔지 제가 알면 안 돼요?”
“안 될 거야 없지. 직원을 생각하고 있었어.”
“사장님이나 저나 직원 땜에 속 썩긴 마찬가지네요.”
“그게 아니라, 아주 멋진 생각이라구.”
“멋진 일요? 먹는장사 하면서 멋진 일이 생길 수 있어요? 속 썩는 일 말고는.”
“속 썩는 걸 재미로 알면 되잖아?”
“어이구, 저 지겨운 도사 같은 말씀. 암튼 그 멋진 일이 뭐예요?”
“쓸만한 놈 하나가 있는데, 그놈을 출세시키려구. 다른 속 썩힌 놈들한테 보란 듯이 성공시키겠어. 그놈들이 인생을 후회하고 땅을 치며 통곡하도록 말야.”
“그러세요? 역시 춘천옥 사장님은 엉뚱한 일 가지고 낙을 삼으시거든.”
“그보다 더 존 낙이 세상에 어딨겠나.”
“근데, 어떻게 출세시키려구요?”
“간단하지. 십 년만 열심히 일하면 돼.”
“그거야 어렵잖죠. 그러면 어떻게 되는 거죠?”
“어지간히 심심한 모양이군. 손님 대접에나 신경 쓰지 그래.”
“역시 성공한 분들은 달라. 모든 게 달라. 어서 말씀해 주세요.”
그때다. 뒤쪽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춘수가 왜 다방에 와서 전화를 거는 거지? 영업시간이라 다방에 올 리도 없고, 평소 다방 출입도 안 하는 앤데, 더구나 전화할 곳이 있으면 업소 전화를 쓰면 될 텐데, 왜 작업복을 입은 채 다방까지 찾아와서 공중전화를 거는 걸까?
나는 들키지 않도록 조심스레 뒤로 고개를 돌린다. 춘수와 마주치면 서로 민망하다.
“뭐라구? 크게 말하라구?”
상대편에서 잘 들리지 않는 모양인지 춘수의 목소리가 높아진다.
“내 말 잘 들어. 네가 춘천옥으로 전화를 걸어서 우리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거짓말을 하란 말야. 알았지? 그래야 며칠 빠질 수 있다구. 내 말 알겠어? 그래그래. 그러란 말야. 아버지가 오늘 돌아가셨다고 해. 응 응 뭐라구? 이 자식 장난치긴. 임마 까불지 말고 십오 분쯤 후에 춘천옥으로 전화 걸란 말야. 알았지? 참 그리구 고향에서 건 것처럼 걸란 말야. 알았지?”
그제야 나는 감이 잡혔다. 하지만 화가 치밀었다.
춘수가 수화기를 놓고 몸을 돌리려 하자 나는 얼른 고개를 돌리고 몸을 사렸다. 얼굴을 마주치면 낭패였다. 그리고 춘수가 나간 뒤에 바로 다방을 나와 업소로 향했다. 춘수는 내가 업소에 있는 줄로 아는 모양이었다. 나쁜 놈! 내 믿음을 이런 식으로 깨다니!
다리가 후들거렸다. 아니지. 그럴 사정이 있겠지. 나는 자꾸 마음을 돌리려고 애썼다.
아닌 게 아니라 업소에 도착하고 십여 분이 지나자 카운터에서 전화벨이 울렸다. 나는 수화기를 들며 주방을 살폈다. 춘수가 이쪽을 살피다가 얼른 고개를 돌렸다.
“여보세요? 네, 여기 춘천옥 맞는데요. 네 기다리세요.”
나는 주방에 대고 춘수를 불었다. 춘수가 달려와 전화를 받았다.
“그래. 뭐라구? 응? 다시 말해 봐, 뭐라구? 우리 아버지가 뒈졌다구?”

김용만 소설가(잔아문학박물관 관장)

일시에 홀 안의 시선이 춘수에게 쏠렸다. 일이 이렇게 된 모양이었다. 춘수가 친구한테 춘천옥으로 전화를 걸어 이러이러한 핑계를 대라고 한 모양인데, 상대방은 거짓을 꾸며대는 말이라 “네 아버지가 돌아가셨어.” 대신 “네 아버지가 뒈졌어.”라고 장난친 모양이었다. 그걸 이쪽에서는 양심에 찔리는 통화다 보니 저도 모르게 “아버지가 뒈졌다구?” 그런 말이 튀어나왔던 것이다. 아무리 약속된 전화라 해도 양심에 찔리다 보니 얼떨결에 상대방의 어투대로 반복했던 거고, 저도 모르게 목소리조차 높아졌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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