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도했었나? 달력을 보니 12월 말. 어쩌자고 이렇게 빨리 한해가 갔지? 분명 난 눈을 번쩍 뜨고 있었는데. 얘들도 어느새 커버려서 수시로 내게 뭘 가르쳐 주려 든다. 기특한 마음도 잠시, 슬며시 나이 듦에 서글픔이 올라오는데 이파리 다 떨어진 마당 나무들이 날 더 처량 맞게 부추기고 있다.

어느 날 큰 애가 견공들 저녁밥을 주다가 부엌문을 열고 내게 큰 일 난 듯이 말했다. ‘엄마 은하 배에 혹 같은 게 있어!’ 워낙 은하에게 애정이 많은 큰 애가 털 뭉친 거나 뭉실뭉실한 뱃살을 그렇게 느낀 거려니 생각하며 설거지를 마저 하고 나중에 확인해 보겠다고 했다. 그리곤 까먹었다. 문어발처럼 많은 일을 해야 하는 나로서는 요즘 부쩍 일 하다가 돌아서서 보이는 일을 하고는 먼저 어떤 일을 했었는지 까먹기 일쑤다.

다음날 아침 작은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 주고 들어오는데 나를 반기던 은하가 오늘따라 발랑 누워 만져 달라 애교를 떨었다. 배를 쓰담쓰담 하는데 손에 덩어리가 만져졌다. 다시 자세히 더듬어보니 생각보다 큰 덩어리가 만져진다. 혹시나 하고 강도 있게 덩어리를 움켜주면서 은하의 반응을 보니 무덤덤하다. ‘통증은 없나?’ 별일 아닌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큰 덩어리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렇게 되도록 왜 몰랐을까? 하는 미안함으로 은하를 보니 그냥 사람과 함께 하면 좋다는 표정이 행복해 보이기만 하다.

병원에 가서 물어봤다. 12살 넘은 리트리버가 배에 혹 같은 것이 만져진다고. 의사는 얘기만 듣고는 모르지만 통증이 없으면 그냥 두는 게 낫다고 했다. 나도 그 말엔 동감한다. 나이도 그렇고, 수술로 인해 떨어져 지내야 하는 불안감이 생각보다 크기 때문이다. 아무데서나 잘 널브러져 자는 은하지만 요즘 진돌이를 위해 장만한 개용 바구니를 탐내는 것 같기에 큰 맘 먹고 특대형으로 하나 장만해 이불을 깔아 줬다. 그 안에서 행복하게 잠든 모습을 보며 아무 손도 못 쓰는 안타까움을 대신하고 있다. 은하도 나이든 모습이 역력하다.

진돌이가 갑자기 나이 드는 모습에 당황해 진돌이를 살피느라 다른 놈들 소홀했더니 바로 티가 난다. 그사이 용이도 알을 낳느라 털이 부스스 빠졌고, 빼꼼이는 귓병를 앓았고. 요비는 늘 치아에 문제가 있다. 달구도 한 쪽 눈이 안 좋아 2, 3일에 한번 씩 연고를 발라 주어야 한다. 냥이 보리는 신장이 안 좋아 사료를 신경 써야 하고 가끔 급하게 먹고 토하지 않게 먹는 양을 조절해 주어야 한다.

며칠 소홀하면 어디선가 두 배 세 배 힘든 일이 생기기 일쑤라 이 놈 저 놈 골고루 살펴야 한다. 이제는 두 아이가 커서 도움이 되지만 다들 등교한 후엔 내 얼굴만 쳐다보니 동물들에게 난 대통령인 셈이다. 올 한해도 우리 집 동물들을 이만하면 잘 통치했다. 무탈하고 나름 즐겁게, 혹시 불만이 있을 수도 있지만 말 못한다는 이유로 내가 알아서 즐겁게 하려고 최선을 다 했다.

어디선가 사람의 손길을 그리워하며 추위에 떨다 생을 마감하는 동물도 있을 것이다. 갑자기 도살장에서 생을 마감하거나 몇 개월 채 살지도 못하고 첫 외출을 매몰을 위한 자루 속으로 해야 하는 닭과 오리들도 있을 것이다. 세상은 참 공평하지 않다. 그나마 우리들은 행복한 한해를 보냈지만 마음은 편치 않다. 그렇게 한해를 다 보내버린 지금, 미련 맡게도 새로운 2017년도를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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