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식업 성공스토리> 능수엄마

56회 우리 새로 출발합시다

 

대승옥 손님이 늘어난 이유가 춘천옥 손님을 끌어와서가 아니라 다른 업소들의 손님이 찢어졌기 때문인데 그 중에는 모금정 손님이 가장 많았던 것이다. 자기네 음식 맛이나 서비스에는 소홀하고 춘천옥 망하는 데만 관심을 집중한 탓이었다. 다시 박 사장의 얼굴에 근심이 짙어졌다.

 

 

범도의 어깨에 힘이 꽂혔다. 그는 노래 부를 차례가 되자 ‘돌아와요 부산항’을 신나게 뽑았다. 박수가 요란하다.
“우리 대승옥에 가수 한분이 오셨군.”
범도를 한껏 추켜세운 황 사장은 술잔을 부딪쳐주고 능수엄마에게 다가갔다.
“정말 고맙소. 내가 능수엄마를 모셔오려고 얼마나 속이 탄 줄 아오? 박 사장은 맘이 느린 사람이라 아무리 재촉해도 서둘지를 않아요. 우리 식구가 된 이상 춘천옥에서보다 열배 백배로 뛰어줘요. 그래서 한국의 최고 인물로 성공해 봐요. 내가 죽을힘을 다해서 뒷바라지 할 테니.”
황 사장은 능수엄마의 손을 덥석 잡았다. 그의 손이 능수엄마의 손을 어루만졌다.
“능수엄마는 이름이 뭐요?”
“이름은 쓰기 싫어예.”
“애엄마라고 부르기가 뭐해서…”
“지는 능수엄마가 좋으니까네 그리 불러주이소.”
“그건 그렇고, 어찌 그런 재능을 타고 났소? 손님을 끄는 데는 한국 최고의 천재로 알고 있는데 곁에서 보니 그걸 확인했소. 나 지금 너무 행복해요. 능수엄마가 오니까 세상을 얻은 거나 진배없소.”
“면목이 없읍니더. 지가 머가 그리 대단타고 이러십니꺼. 분위기 좋은 춘천옥에서 일하다보니까네 지도 모르게 그리 된 거라예.”
“겸손하시긴. 앞으로 대승옥에서는 더 멋진 분위기를 연출할 겁니다. 나하고 나란히 서서 손님을 받도록 해요.”
“이 집은 자리가 넉넉하니까네 저 같은 역할이 필요없을 텐데예.”
“뭔 소리요? 앞으론 춘천옥보다 더 북적대야 하는데.”
“지가 우째 그럽니꺼. 춘천옥에서는 첨에 사장님이 손님을 마캉 끌었심더. 지는 그분한테 배웠지라예.”
“두고 보시오. 나는 그 사람보다 한 수 위요.”
황 사장은 능수엄마의 잔에 자기 잔을 부딪쳐주고 나서 벌떡 일어나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직원들을 모두 홀 중앙으로 나오게 하여 함께 디스코를 추었다.

회식은 밤이 늦어서야 끝났다. 범도가 능수엄마에게 다가서며 물었다.
“언제 미스 강을 데려올래유?”
“이제 시작이니까네 너무 서두르지 말거레이. 우리부터 자리를 잡으모 데려올기다. 그나저나 늬는 와 미스 강캉 내통 못 하노.”
“떠날 무렵에 의논은 했는디…”
“머라 카드노.”
“생각 좀 해본다고 했슈.”
“아무래도 미스 강은 늬가 데려와야 할란갑다.”
“책임진다고 했잖유?”
“하여튼 사장캉 의논부터하고 생각해보자이.”
능수엄마는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렸다. 그년을 내가 미쳤다고 데려오겠나, 이 빙신아. 여기서도 황 사장캉 히히대는 꼴을 우째 보라꼬. 이 빙신아.
“범도.”
“왜유?”
“늬 그리도 미스 강이 좋나?”
“그럼유.”
“그아 머가 그리 좋노?”
“그걸 워떻게 말로 한데유. 그냥 환장하게 좋을 뿐인디유.”
“늬 그아 몸에 손 대봤나?”
“왜 그런 흉한 말을 한데유?”
“야, 남녀가 껴안는 건 보통이제, 머가 흉하노? 촌놈!”
범도는 화내는 대신 헤벌쭉 웃었다. 미스 강에 대한 말만 꺼내도 신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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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팔을 걷고 대들자 주방에 활기가 넘쳤다. 김춘수의 몸이 훨훨 날았다. 막국수를 뽑아내는 솜씨가 기계 같았다. 아내가 보쌈을 처리하면서 틈틈이 막국수 양념 치는 걸 지도해주니 신기에 가까운 솜씨를 드러냈다.
참기름을 칠 때도 검지로 기름병 입을 쾌속으로 여닫으며 0.5초 사이에 막국수 5그릇을 쳐버렸다. 무척 연습한 모양인데 그전에 범도가 한 그릇을 치는 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처럼 민첩하면서도 기름 칠 때의 손놀림이 아주 유연하고 섬세했다. 뛰어난 감각이었다.
보쌈 보조로 뛰던 오만기도 아내 밑에서 일을 하고부터 표정이 밝아지고 손이 빨라졌다. 범도가 진작 그만뒀더라면, 그런 생각이 들 정도였다. 보쌈 막국수에 대한 정보가 유출되겠지만 아내가 머리를 써서 맛을 한 단계 높인 데다 그동안 핵심적인 비밀 한두 가지는 숨겨왔기에 걱정할 단계는 아니었다.
오후 한가한 시간에는 아내가 직접 만기를 지도해주었다. 그동안에는 주방장 범도에게 맡길 수밖에 없었는데, 보조에게 기술을 전수시키긴커녕 성질을 부리기 일쑤였다. 모든 기술을 저 혼자 독점해야 춘천옥을 휘어잡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개업 초기 범도는 아내에게서 전수받았기에 아내의 감독을 받아야 기술이 향상되겠지만 아내의 간섭을 꺼려했다. 언젠가는 아내가 범도의 부족한 점을 지적해주자 칼을 놓고 주방을 나간 적이 있었다. 하지만 김춘수는 오히려 아내의 지도를 받고 싶어 하는데다 틈틈이 아내에게 묻고 확인할 정도여서 쾌속으로 발전했던 것이다.

 

능수엄마와 주방장이 대승옥으로 빠진 후 춘천옥에는 눈에 띌 만큼 빈자리가 늘어났다. 겉으로는 아무리 태연한 척해도 속은 탈 수밖에 없었다. 재료상들에게 물어보면 대승옥의 재료 차입이 차츰 늘어난다고 했다.
대승옥에 손님이 늘어나자 모금정 박 사장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하지만 날자가 지나면서 박 사장의 얼굴에 차츰 그늘이 짙어갔다. 대승옥 손님이 늘어난 이유가 춘천옥 손님을 끌어와서가 아니라 다른 업소들의 손님이 찢어졌기 때문인데 그 중에는 모금정 손님이 가장 많았던 것이다. 자기네 음식 맛이나 서비스에는 소홀하고 춘천옥 망하는 데만 관심을 집중한 탓이었다.
“안녕하세요?”

김용만 소설가(잔아문학박물관 관장)

낯익은 손님이 홀로 들어서며 내게 밝은 인사를 던졌다. 담배꽁초 사건을 일으켰던 박 사장 친구였다. 나도 “오랜만입니다.” 하고 그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바쁜 시간을 피해 왔습니다만…”
그는 나와 대화하고 싶어 하는 눈치를 보였다. 그의 자리로 가서 마주 앉자 거침없이 비밀스런 말을 털어놓았다.
“장사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더군요. 박 사장을 너무 과신한 게 화근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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