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마을, 왜 만들어야 하는가> 성종규 서종면 주민자치위원회 위원장

아름다운 마을을 찾아가는 여행 37

 

크고 현란한 간판이 거리의 경관을 지배하는 간판공화국의 불명예를 씻기 위해 행정관청에 의한 대대적인 간판정비사업이 적지 않게 진행되어 왔다. 그리고 그 방식은 대부분 아크릴과 LED를 이용한 획일적인 디자인이다. 디자인이나 색깔, 글씨체도 거의 동일하다. 단지 크기만 줄이고 불법간판을 정비하는 데 집중한 것 같다.

그러나 이러한 간판정비사업에 대한 평가는 좋지 않다. 벌써 2008년경부터 반성이 나오고 있다. 당시 서울의 도시경관 정책을 총괄하는 권영걸 서울시 디자인서울총괄본부장은 어느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걷고 싶은 거리의 간판정비 사업의 대부분이 통일된 규격의 표준화된 디자인에 의해 획일적인 간판으로 교체돼 왔고 이것이 정비사업인 양 잘못 인식되고 있다”면서 “옳지 않은 일”이라고 말했다. 권 본부장은 “간판은 사회문화적인 문제일 뿐 아니라 국민들의 기질적인 요인까지도 감안해 접근해야 하는 까다로운 문제”라면서 “획일화된 간판 정비는 시민들에게 개성 없는 전체주의적인 기질을 불러일으킨다”고 했다.

서울 삼청동 거리와 간판. 간판이 거리경관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물론 행정관청이 간판정비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는 개별 상인들의 욕구 하나하나를 모두 반영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것도 더군다나 대규모 정비사업을 일괄적으로 추진하는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말하자면 행정관청이 일괄적으로 추진하는 간판정비사업은 개성적이고 예술적인 간판 디자인을 추구하기보다는 불법 간판을 철거하는 데 중점이 두어져 있는 듯하다.

그러나 미용실의 간판과 순댓국집의 간판과 문방구의 간판이 똑 같아서는 안 된다. 미용실은 세련되어야 하고, 순댓국집은 입에 침이 돌아야 하며, 문방구는 귀여워야 한다.

간판개선 사업의 방향과 간판문화의 향상을 연구하는 한국옥외광고센터 신일기 박사는 간판사업은 지역의 가치와 문화적 상징성을 완성하는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획일화된 사업에서 탈피하려면 행정관청이 아닌 주민협의체에 의한 사업의 주도가 필요하다고 제안한다. NGO같은 시민단체가 나서고 주민협의체가 구성되어 그 지역의 환경가치와 문화적 특성을 반영하는 도시환경개선사업의 일환으로 간판정비가 행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행정은 예산과 제도의 측면지원을 담당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서종마을디지인운동본부는 양평군과 협력하여 주민협의체가 주도하는 간판정비사업을 시도해보려고 한다. 주민협의체가 주도하고, 지역의 문화예술가들이 함께하며, 역외의 간판전문가들도 결합하여 개성적이고 예술적인 간판이 있는 거리를 만들어 보고자 한다. 무엇보다 특이한 점은 지역의 주민과 예술가와 기술자들로 구성된 간판 제작 마을기업을 설립하여 간판을 디자인하고 제작하는 작업조차 스스로 추진해보고자 한다. 그러한 방식은 지역의 상인과의 의사의 소통이나 교류가 용이하다는 점과 더불어 간판정비사업의 예산이 외부로 유출되지 않고 마을 소득에 더해진다는 점에 큰 의미가 있다.

획일적으로 진행된 간판정비사업의 거리. 쌀국수와 세탁소와 복권방의 간판이 모두 동일하다.

아름다운 간판이 있는 거리는 그 자체로 하나의 문화예술교육의 장이 된다. 매일 마을길을 걸어 학교를 오가는 아이들이 장래 어떤 감성과 기질을 가질 것인가는 그 마을의 자연과 거리의 풍경이 결정하는 힘이 클 것이다.

신일기 박사는 “간판개선사업은 그 지역의 주민들이 주도하여, 그 지역의 문화와 사람의 기질을 상징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간판개선사업을 행정관청이 주도하는 수동적인 사업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 우리 마을의 거리경관을 가꾸어 나가는 마을만들기의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인식하여 우리 스스로 간판정비의 꿈을 꾸고 실행해 나가 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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