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시소 초대석> 양평군민을 바라보는 젊은 지휘자 ‘안두현’

아무나 서기 힘든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두 차례 올라
“양평필하모닉, 대체 어떤 곳?”… 클래식음악계 주목

 

지휘자 정명훈(63)씨는 한 인터뷰에서 “60살이 넘었고 이제야 지휘자로 불려도 괜찮을 것 같다. 그 전에는 젊은 지휘자였다”고 말했다. 지휘자의 연륜을 중요시한 말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20대에 프로 무대에 데뷔하고, 30대에 교향악단에 자리 잡는 경우가 늘었다. 젊은 지휘자들이 포디엄에 과감히 오르고 있다.

양평문화원 앞에서 포즈를 취한 안두현씨. 국내 교향악단의 30대 지휘자 전성시대의 한 축으로서 양평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있다. 자기만족과 과시가 아닌 모두 함께할 수 있는 중심을 가지고 음악을 하기에 주변 사람들도 그의 음악을 사랑한다.

안두현(34)씨는 국내 30대 지휘자 전성시대를 이끄는 한 축이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우연히 차이콥스키의 ‘호두까기 인형’과 ‘백조의 호수’를 카세트테이프로 듣고 그는 온 몸에 닭살이 돋을 정도로 큰 감동을 받았다. 그 뒤로는 용돈이 생기면 클래식 음악 테이프와 음반을 사서 들었다. 그러다 고1 무렵 교보문고에 갔다가 ‘지휘자와 오케스트라’라는 책을 읽고는 자신의 진로를 결심했다. 연주자의 심경의 변화와 경험에 따라 10년 전과 후의 같은 음악이 바뀌고, 심지어는 연주시간도 몇 분 이상 차이가 날 수 있다는 대목을 읽는 순간 전율이 일었다.

 

한국 국적 첫 차이콥스키음악원 입학

안두현 상임지휘자가 양평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고 있다. 평소에는 재기발랄한 표정으로 신명나게 이야기하지만, 지휘봉을 잡는 순간 음악에 집중해 눈빛이 달라진다.

안두현씨가 고교를 졸업한 당시에는 국내에 음대 지휘과가 별로 없었고, 선생님을 찾기도 쉽지 않았다. 지휘과 모집 인원이 한정되다 보니 지금도 한국예술종합학교, 한양대 등 극히 일부 대학이 지휘 전공에 투자하는 정도다.

그는 2000년 러시아 유학길에 올랐다. 2년 동안 작곡 공부하면서 마스터 클래식에 참여하고 지휘 레슨을 받는 등 준비기간을 거친 후 모스크바 국립음악원(차이콥스키 음악원으로 유명)에 시험을 쳐서 입학했다.

놀라운 사실은 러시아 최고의 음악학교이면서 세계적인 명문 차이콥스키 음악원 지휘과에 안두현씨가 한국인 최초로 입학한 점이다. 1년에 고작 1∼2명만 뽑고, 적임자가 없으면 아예 선발하지 않는 시스템인데다 동양인에 대한 텃세가 심한 환경에서 일궈낸 성과다. 그가 입학한 2002년에는 지휘과 신입생이라곤 안두현씨 혼자였다.

차이콥스키 음악원 출신으로는 피아니스트 라흐마니노프, 리히터, 아쉬케나지, 스크랴빈, 볼로도스, 스타니슬라프 부닌 등이 있고, 현재 독일에 거주하는 피아니스트 임동혁씨와 바이올리니스트 고(故) 권혁주씨가 그와 동문이다.

안두현씨는 모스크바에 체류한 8년의 기간 중 군대를 가기 위해 2007∼2010년 휴학한 뒤 2011년 차이콥스키 음악원을 졸업했다. 그가 복무한 공군 군악대 시절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지휘는 장교가 하기에 유포니움(금관악기)으로 시험을 쳐서 군악대에 들어갔는데, 지휘를 하는 장교가 자리를 비우자 간부들이 입대 한 달 남짓한 안두현 이등병에게 지휘를 맡겼다. 지휘봉을 잡는 순간 음악에 집중한 그의 눈빛이 돌변했고, 이 모습에 긴장한 선임병들이 오히려 군기가 잡힌 듯 연주에 온 신경을 집중한 것이다.

 

새로운 감각·젊은 해설, 어려운 클래식 쉽게

안두현 지휘자와 양평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연주를 마치고 발코니(박스석)를 바라보며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안두현씨는 졸업 후 귀국해 ‘마제스틱 청소년 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로 활동했다. 20대1이 넘는 경쟁률을 뚫은 젊은 지휘자는 이 오케스트라를 최고의 반열에 올려놓았고, 아마추어 청소년 오케스트라로는 최초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 서게 만들었다. 이때부터 다른 오케스트라의 섭외가 몰려왔다.

클래식은 어렵다, 아는 사람들만 즐긴다는 인식이 여전히 있다. 그렇다고 공연만으로 클래식 대중화를 감내하기가 쉽지 않다. 그는 “클래식을 아는 사람들만의 울타리를 쳐내고 열려있는 사고가 확산될 때 비로소 대중화가 이뤄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가령 이 곡의 내용은 이렇다고 하는 식의 해설 공연은 지루하다. 젊은 해설을 해보고 싶다”고 했다. 양평필하모닉이 지난 7월3일 예술의전당에서 공연한 ‘하루키, 미야자키 하야오를 만나다’는 안두현만의 새로운 감각이 빛을 발한 무대였다. 예술과 인문학을 융합한 렉처 콘서트 방식으로 영상과 사진을 곁들여 클래식과 연관되는 영화의 멋진 장면을 같이 보여줬다. 관객은 호응으로 보답했다.

안두현씨는 현재 KBS 1라디오(97.3㎒) 김재원 아나운서가 진행하는 ‘문화공감’(연출 허보혜·작가 박나경, 오후 10:10∼10:58)에 매주 수요일 고정 출연해 ‘Falling in Classic’ 프로그램을 맡고 있다. 폭 넓고 재미있는 음악해설로 청취자들을 아름다운 클래식의 세계에 빠져들게 한다. 기본적인 대본을 자신이 직접 준비할 정도로 클래식의 대중화에 열정적이다.

 

‘음악’… 양평의 브랜드를 다시 묻다

지휘자는 더 이상 오케스트라의 제왕이 아니다. 협력하고 의견을 나누는 구성원 중 하나다. 안두현 지휘자의 음악대 대한 열정과 새로운 리더십이 주목받고 있다.

양평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안두현 상임지휘자가 온 뒤로 1년여 만에 클래식 음악계의 주목을 받을 정도로 급성장했다. 군 단위 지자체의 작은 홀(군민회관)에서 어떻게 많은 스타급 연주자들과 협연을 할 수 있었냐는 게 음악계의 질투어린 시선이다. 안두현씨의 ‘인맥’ 덕분이다. 외부의 높은 관심과 평가에 비하면 양평군내에서 오히려 인지도가 없는 형편이다.

안두현씨는 양평이 보유한 자산과 가치 브랜드에 주목하고 있다. 클래식뿐만 아니라 재즈, 뉴에이지 등 장르를 아울러 ‘음악’을 매개체로 한 축제가 그것이다. 평창대관령음악제는 매해 여름이면 세계 최고의 연주자들이 펼치는 천상의 연주회로 각광받고 있다. 지난해부터는 평창겨울음악제도 시작했다. 통영국제음악제도 마찬가지다.

두 음악제의 공통점은 지자체의 열정이 기반이 된 가운데 훌륭한 음악당 시설이 있기에 가능했다. 대관령음악축제가 열리는 알펜시아 콘서트홀은 대관령 700m 고지에 위치한 637석 규모의 클래식 전용 홀이다. 하늘에서 거대한 다이아몬드 운석이 떨어져 온 천지에 팡파르가 울려 퍼짐을 테마로 운석의 모양과 아름다운 보석의 이미지를 형상화한 설계로 유명하다. 통영국제음악제는 작곡가 윤이상을 기리기 위해 2002년부터 그의 고향인 통영시에 매년 봄, 가을 열리는 음악제다. 통영국제음악당은 예술의 바다 위에 떠있는 자유의 날개를 형상화한 건축물로, 품격과 즐거움이 공존하는 독창적인 음악당이다. 콘서트홀의 객석은 1309석에 달한다.

강원도 평창 대관령음악축제가 열리는 알펜시아 콘서트홀.

안두현씨는 “두 국제음악제가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데는 지자체의 규모나 재정여건보다는 강원도와 평창군, 통영시가 오랜 시간 투자한 결과”라며 “양평군에 당장 아트홀을 지을 순 없겠으나 양평의 문화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주민들이 자부심을 갖고 참여해 즐기는 축제를 고민해볼 시점이라면 장기적으로 검토할 만하다”고 진단했다.

열정이 그를 들썩이게 한다. 마제스틱 청소년 오케스트라를 지휘할 때처럼 양평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수준 높은 클래식 음악계의 반열에 올려놓았고, 양평을 ‘젊음의 클래식 문화 아이콘’ 브랜드로 성장시키려 하고 있다. 그는 “양평군이 수준 높은 오케스트라를 보유했다는 외부의 평가도 중요하지만, 많은 양평군민들이 공연장을 찾아주고, 군민의 사랑과 인정을 받는 오케스트라를 만드는 게 더욱 중요한 목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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